단상 다섯
며칠 전에 가방을 떨궜는데, 그 안에 들어 있던 필름카메라가 고장나버리고 말았다. 사실은 전부터 상태가 안 좋았는데, 나는 그 카메라의 빛샘 현상이 그런대로 좋아서, 고치지 않고 그냥 들고 다니고 있었다. 혹시 카메라를 고치면, 빛샘 현상이 없어질까봐 걱정됐지만, 이대로는 빛샘이고 뭐고 아주 못 쓸 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져 맥가이버 카메라 수리 아저씨가 있다는 종로에 갔다. 맥가이버 아저씨는 너무 친절했고, 또 쿨하셨다. 다행히 생각보다 싼 가격에 카메라를 고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카메라를 맡겨 놓고, 종각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보고 싶었던 사진집이 있어서 서점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엄청 심한 날이었지만, 마침 걸어가야 하는 쪽으로 그 반대편과는 다르게 하늘이 붉은 노을을 머금고 있어서 걸어가기에 아주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스크도 있고, 또 오랜만에 혼자 걷고 싶었으니까. 오랜만에 찾은 종각에 반디는 어느새 없어지고, 종로서적이 생겼는데, 내가 보고 싶었던 책은 거기 없어서, 나는 다시 영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풍문고에만 가면 대학 졸업 후가 생각난다. 거기서 알바 아닌 알바를 꽤 오래 했었는데, 어느새 서점엔 아는 얼굴 하나 없게 되었다. 아무튼, 보고 싶었던 책을 찾아 보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어떤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핸드폰 화면과 책을 번갈아 가리키며 어눌한 한국어로 이 책에 나온 '퇴비'가 핸드폰에 나온 여러 개의 뜻 중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 중 첫 번째라고 알려주었는데, 이해를 잘 못한 것 같아, 쌀이나 식물을 자라게 하는 흙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하곤, 질문이 하나 더 있다며, 같은 책의 다른 페이지를 가리켰다. 이번엔 '마음의 새'라는 말이었다. 퍽 난감했다. 새가 그 새가 아닌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다가, 핸드폰 사전 어플에서 비유법을 검색해 나온 한자를 보여주었다. 이건 비유인데,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는데, 그녀는 정말 이 문장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너무 알고 싶어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그 문장이 들어있는 문단을 통째로 읽고, 최대한 그녀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사실, 그 문단만 읽어서는 나도 마음의 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녀에게 우리 안에 있는 힘듦과 고민 같은 것들을 우리 안에만 두지 말고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그건 우리 소울 같은 것인데, 아무튼 그것들을 날려보내면 그것들이 다시 우리에게 좋게 돌아올거라고 무슨 이런 말도 안되는 설명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마음의 새라는 게 내면의 자아와 자유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냥 소울과 프리, 이 두 단어로만 설명하는게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하며, 자기는 중국인이고, 한국이 좋다며,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중국어 강사도 하고 있다고 자신이 다니는 중국어 학원 이름을 말하며 아느냐고도 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중국어는 잘 모른다고 했다. 나는 원래 낯섦에 벽이 많아서, 어쩌면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몰랐을 그녀에게 더이상 별 말은 하지 않고, 이 책은 너무 어려우니 다른 책이 좋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한국을 좋아해줘서 고맙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건네곤 다른 책을 보러 갔다. 어쩌면 그저 그런 평범하고 언제나 그러한 힘든 월요일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맥가이버 아저씨와 서점에서 만난 그녀 덕분에 하루가 풍부해진 느낌이다.
2017년 4월 3일
종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