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아홉
행복한지 따져 보는 건 우울해지는 지름길이야.
-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오는 저 대사가 가슴에 팍, 하고 꽂혔다. 요즘 나는 나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만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한지 자주 묻고 다니던 참이었다. 만약 물을 수 없다면, ‘저 사람이 지금 행복할까?’, ‘행복해 보이나?’ 그런 생각들을 나도 모르게 해버리고는 내가 가지고 싶은 행복과 견주어보곤 했다. 그게 우울해지는 지름길인 줄도 모르고.
- 1979년과 지금은 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과거는 언제나 오래됐고, 미래는 언제나 새것이니까.
타고 다니는 것, 사는 집, 듣는 음악 같은 건 바뀌었을 지 몰라도 과거에서 과거는 그리고 현재에서 지금은 또 미래는 그냥 시간일 뿐이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린 음악을 듣고, 사랑을 말하고, 행복해지길 원한다. 삶을 사는 건 어느 때나 어디서건 참 비슷하다.
나는 남자들이 아니라 그냥 나야.
-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페미니스트 문제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나도 잘 안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냥 남자, 여자 편 가르지 말고 그냥 나는 나로 있을 수 있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 우리 모두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텐데.
- 도로시아, 제이미, 줄리, 애비, 윌리엄. 영화에서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있는 그대로 서로를 봐주려고 했다. 그게 때론 무관심으로 비치고, 무시로 여겨지고, 상처가 되더라도. 우리는 참 약해서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줄 때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감당할 만큼만인 것 같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상처들을 마주할 때 우린 그 상처를 되도록 보지 않으려 멀리 도망가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의 20세기> 주인공들처럼만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다른 사람의 상처뿐만 아니라 나의 상처까지도 제대로 마주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상대방을 이해하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강한 게 최고의 자질 같아.
예민함도 섬세함도 아니고 심지어 행복함보다도 나은 것 같아.
다른 감정들을 견뎌낼 힘이 있다는 거잖아.
- 행복이 시시해져 따져 볼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때 그런 때가 진짜 행복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인생은 시시한 거라는 (꿈의 제인 속) 제인도 생각이 났다. 행복한 것 같다고 느끼는 것 말고,
그냥 정말 행복하고 싶다. 여전히 나는 행복을 따지지만 강한 사람이고, 그래서 참 다행이다. 다른 감정들을 견딜 수 있을 테니까.
- 해보면 절반은 후회해.
- 그럼 왜 해?
- 절반은 후회를 안 하니까.
- 알 것 같다가도 모르겠고, 모르겠다가도 알 것 같은. 이상하게 먹먹해지고 자꾸자꾸 생각나는 묘한 영화. 다른 사람들도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절반은 후회하더라도 절반은 후회 안 할 테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
이미지 출처: 영화 <우리의 20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