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열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대사 톤도 그랬지만, 배경, 소품, 음악 모두 군더더기 없이 딱 필요한 만큼, 아니 어쩌면 조금 모자라게 들어가 있었다. 모자란다는 의미는 그만큼 영화에 은유나 비유, 함축적 의미를 가진 장면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순수한 건 오염되기 쉽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숲이다. 숲의 근간은 흙이고, 흙은 생명이 태어나기도, 죽기도 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재연이 태어났다고 말하는 나무가. 그리고 그 숲 안에 유리정원이 있다. 재연이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곳. 그러나 재연이 다시 찾았을 때 유리정원 곳곳이 깨져 있었던 것처럼, 재연의 신념엔 금이 가 있었다. 그녀는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믿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다칠 걸 알면서도 깨진 유리 조각을 억지로 잇거나 혹은 그대로 둔 채 그냥 그렇게 믿어야 했던 걸지도. 그리고 지훈은 그런 재연에게 깨진 틈을 채워줄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지훈이 자신을 따라오고, 무너진 담을 쌓아 주고, 자신의 소설을 써도 그냥 내버려 둔 것이었을 것이다. 자기가 맞다는 걸 지훈이 증명해줄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러나 한 번 깨진 유리는 깨지기 전과 같은 모습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재연은 믿지 않았다.
나무들은 가지를 뻗을 때 서로 상처 주지 않으려고
다른 방향으로 자라나지만, 사람은 안 그래요
신이 아담과 이브를 만들었을 때, 그들이 그렇게까지 악해질 줄 신이 알았겠냐는 대사가 나온다.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중 그 누구도 절대 선과 절대 악은 없다. 순수해서 오염되기 쉬운 재연도 절대 선은 아니며, 재연의 연구를 가로챈 정교수도, 재연의 삶을 훔쳐 소설을 쓴 지훈도 절대 악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사람이었던 거다. 재연의 말처럼 나무들은 가지를 뻗을 때 서로 상처 주지 않으려고 다른 방향으로 자라나지만 사람은 안 그러니까. 정교수도, 재연도, 그리고 지훈도 각자 지키고 싶은 게 있었고, 그래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다.
영화의 끝. 재연은 숲으로 돌아가고 나무가 된다. 재연이 정말 나무가 됐을까?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우리는 짐작하기만 할 뿐이지만, 그래도 숲에서 태어난 재연이 숲으로 돌아가 나무가 된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말고,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말고, 평온하게 숲에서 살기를 바라고 싶다.
그리고 나무가 될 수 없는 우리는 조금이라도 나무와 같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
이미지 출처: 영화 <유리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