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일기 #5
구제주 가는 길,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는데 그곳에서 주황색 조끼를 입고 있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너무 자연스럽게 나에게 먼저 학생이냐고 툭 하고 말을 건네오시더니 지금 오고 있는 버스가 몇 번인지, 201번 버스가 오려면 몇 분 남았는지 물어오셨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눈이 안 좋으셔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답해드렸는데, 할아버지는 그 이후에도 내가 제주 사람인지 육지 사람인지, 어디에서 지내는지 어디 가는지, 제주가 좋은지 등 이것저것 물어오셨다. 그 질문들 사이사이에는 월정리가 너무 비싸다며 햄버거 하나에 4만 원이나 받는다고도 하시고, 경찰서에서 교통 담당하고 있는 두 번째 아들과 국영수를 뛰어나게 잘한다는 딸 자랑을 늘어놓기도 하셨다. 주변 사람들의 말과는 다르게 의외로 낯을 가리는 나는 평소였다면 조금 불편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부담스러운 관심이 아니라 무심하게 툭, 툭, 말씀하셔서 그런지 이상하게 불편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할아버지가 귀여워 보였다. 그렇게 얼마간 나와 할아버지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옆 버스정류장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내에 살 게 있어서 잠깐 갔다가 다시 구좌로 돌아가야 한다는 할아버지는 아마 조금 심심하셨고, 그래서 말동무가 필요했었으리라. 술담배와 커피는 안 하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일은 아마 없겠지만, 그래도 제주에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언제 어디서나 당연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 특별했던 제주에서의 추억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