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 #2
딱 한 번이라도 널 다시 볼 수 있다면
지호는 매일 아침 일기예보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세상을 떠난 엄마가 비 오는 날 돌아온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아내 수아를 너무 사랑했던 우진은 아들인 지호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차마 말하지 못한다. 아마 지호만큼, 아니 지호보다 더 간절히 아내가 보고 싶을 우진이지만, 그래서 수아가 남기고 간 약속을 간절히 믿고 싶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우진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여름이 왔고, 장마가 시작됐다. 장마의 첫 빗속에서 우진과 지호는 수아를 기다리지만, 수아는 나타나지 않는다. 실망한 지호를 달래며 집으로 돌아가는 우진의 발걸음이 무겁다. 지호에겐 티 낼 수 없었지만, 우진도 아마 지호만큼 비가 오기를, 그래서 수아를 단 한 번이라도 다시 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고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비가 막 그친 그때, 우진의 눈앞에 수아가 나타난 것이다. 수아가 정말로 돌아왔다. 단, 모든 기억을 잊은 채로.
모든 게 낯설었고
모든 게 어설펐지만
난 너와 다시 사랑에 빠졌고
수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이 누구인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진이 낯설지 않다고 느낀 수아는 우진과 다시 사랑에 빠진다. 여름을 시원하게 물들이는 빗줄기의 수만큼, 아니 그보다 더 우진과 수아와 지호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간절하다는 건 어떤 걸까. 쉽게 쓰일 수 있는 말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간절하다는 말이 가진 힘이 정말 기적을 불러올 수도 있는 걸까. 어쩌면 수아는 남겨진 사람들의 간절함이 만든 환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환상 하나쯤은 품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비록 사실이 아니고 덧없는 것일지라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환상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 힘든 하루를 견디고 버티면서, 그리고 때때로 행복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과거의 그리움이 만들어낸 환상이든, 미래의 꿈을 만들어내는 환상이든, 그런 환상 하나 없이 사는 삶은 너무 슬프고 또 외롭게 느껴진다.
드디어 우진이의 손을 잡았다
너무 따뜻했다
그리고 만약, 수아가 환상이 아니라 정말 다시 돌아온 것이라면, 어쩌면 가장 간절했던 건 지호나 우진이 아니라 수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우진을 다시 만나러 가지 않았다면 자신이 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우진을 너무 사랑해서, 또 지호를 너무 사랑해서 다시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낸 기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 간절함이 만들어낸 기적 덕분에 수아가 다시 떠난 뒤에도 우진과 지호는 수아가 있었을 때처럼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거라고.
아무 걱정하지마
우린 잘 할 거야
그렇게 정해져 있어
나에게도 간절히 그립고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들이 있고, 그런 기억들로 오늘의 부족한 행복분을 채우며 살고 있다. 그래서 그리움이라고 해서 꼭 나쁘고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켜켜이 쌓인 그리움은 때때로 지금을 더 열심히 살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우진과 지호처럼.
영화를 보면서, 솔직히 일본에서 먼저 만들어진 영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손예진, 소지섭 주연의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원작에 충실히 만들어진 만큼, 10여년 쯤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원작의 내용을 상기키셨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는 비가 오기를 바라며 클로버 대신 테루테루보즈(てるてるぼうず:다음 날이 맑기를 바라며 창문에 걸어놓는 천으로 만든 인형)를 거꾸로 걸어놓았었는데, 여자 주인공이 돌아온 건 사고 때문이었지, 참. 기차역 대신 해바라기 밭이 있었는데...'와 같은.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원작에 충실했지만, 한국 정서에 맞게 여러 상징물과 대사가 바뀌었고,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함 대신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코믹한 요소들이 추가됐다. 배경 사운드 또한, 일본 영화보다 좀 더 스펙터클하게 들어가 있다. 일본 영화의 잔잔함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실망을 안겨 줬을지도 모르지만, 원작을 생각하지 않고 본다면 적절한 요소에 배치된 유머와 음향이 영화를 웃으며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웃음을 주었다고 감동을 뺀 것은 아니었다. 원작을 봐서 내용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눈물을 흘려야 했으니까. 수아가 우진과 지호를 다시 사랑하게 되는 순간을 좀 더 분명하게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원작이 가진 스토리의 힘이 워낙 커서 영화에 몰입하는데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원작을 보았어도, 보지 않았어도 감동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기다려 주세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한여름, 비가 오는 계절에 만났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 만나러 가도 충분히 좋은 영화. 겨우내 얼어붙어 있는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고 싶다면, 지금 만나러 가기를.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시사회 관람 후 적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담은 리뷰.
이미지 출처: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