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환생한다

나에게 거는 작은 주문

by 달박상

낯선 곳에서 익숙함을 발견할 때면, 나도 모르게 멈춰 선다.


"혹시 전생에, 여기에 왔던 걸까?"


전생에 관해—

틱낫한은 생명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고 했다.

"탄생과 죽음은 문만 열고 닫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어디서 온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 잎사귀가 지는 것을 슬퍼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테니까 — No Death, No Fear"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는 죽은 영혼이 거치는 중간 상태인 ‘바르도(bardo)’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혼은 바르도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깨달음에 이르기도 한다. 그때 의식이 머무는 방향, 품은 감정, 그리고 떠올리는 이미지가 다음 생을 결정짓는다.

"죽은 이여, 지금 너는 경계에 서 있다. 집착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죽음은 말한다.

“이전 생은 놓아라, 그리고 다음 생을 준비하라.”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 영혼은 떠나기 직전, 무엇을 바라보며, 어떤 소망을 담아 이 삶을 선택했을까.

어떤 상처를, 어떤 기쁨을, 무엇을 배우기를 원했고, 또 어디를 향했을까.


일단 이생은 달라질 게 없을 것 같고...

영적 스승들의 말을 요약하면,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떠올린 이미지가 다음 생을 프레이밍 한다는 거지?

그래?


환생이라는 것이 한 번의 끝과, 한 번의 시작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매일 환생하겠다.

어제의 나를 조용히 끝내고, 오늘의 나를 새롭게 프레이밍 하는 거지.

어제 품었던 슬픔, 내려놓지 못한 미련, 자각조차 하지 못한 오만을 조용히 놓아주고,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새벽을 맞이하리라.


‘나는 매일 죽고, 나는 매일 다시 태어난다.’

이 단순한 생각 하나가 삶을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환생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니더라도 좋다.

이건 단지 나에게 거는 작은 주문,

‘나는 새로이 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믿게 하는 은밀한 프레이밍이다.


나에게 '0시'는 언제나 새로운 생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아마도 전생을 기억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손댈 수 없는 영역이다.

내게 주어진 것은 오직 오늘, 아니 이번 생!

조금 더 가벼운 영혼으로, 더 빛나는 눈으로, 더 사랑하는 심장으로 다시 태어난다.

2025. 4


Reptiles, M.C.Escher, 1943, litho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