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대하여
“나는 오늘 죽습니다.
결국 증오하던 아버지 곁에 가겠군요.
그러면 나는 다시 한번 그를 죽이겠습니다.
서슬 퍼런 도끼가 두렵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1599년 9월 11일 새벽, 바티칸 옆 산탄젤로 다리 위에서 한 소녀가 사형을 당했다.
그녀의 이름은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
이름은 ‘축복받은 자’를 뜻했지만, 그녀의 삶은 축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목: The Execution of Beatrice Cenci
작가: Guido Reni(귀도 레니, 1575–1642)로 오랫동안 전해졌으나, 일부 연구에서는 Domenico Tintoretto 또는 M. Leopoldo Cicognara 등의 추정도 존재(정확한 작가 확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음)
제작 연도: 1870년경
기법: 유화 (Oil on canvas)
크기: 약 151 × 120 cm
소장처: Galleria Nazionale d’Arte Moderna e Contemporanea, Rome (로마 국립근현대미술관)
주제: 베아트리체 첸치의 사형 직전 장면. 부조리한 권력 앞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킨 여성으로 형상화
1577년.
베아트리체는 귀족 프란체스코 첸치의 딸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폭력적이었고, 아내를 잃은 후 딸에게 폭력을 넘어선 학대를 가했다.
그녀는 여러 차례 관청에 신고했지만, 아버지의 신분과 권력은 언제나 그를 보호했다.
교황청조차 외면했고, 세상은 여전히 프란체스코 중심으로 돌아갔다.
결국 그녀는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1598년, 베아트리체와 가족들은 아버지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한 차례 독살은 실패했고, 결국 망치로 그의 머리를 쳐 죽인 뒤 추락사로 위장했다.
하지만 진실은 오래 숨겨지지 않았다. 교황청은 이번엔 신속히 움직였다.
베아트리체는 고문 끝에 자백했고, 결국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녀의 처형은 잔인했다.
오빠 자코모는 사지가 절단되고, 어머니 루크레치아와 베아트리체는 참수를 당했다.
막내 동생은 단지 열두 살이었지만, 자매의 처형을 눈앞에서 보아야 했고 갤리선 노예로 끌려갔다.
그날 이후, 베아트리체의 얼굴은 로마 시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남았다.
그녀는 ‘아버지를 죽인 죄인’이 아니라, 권력의 정의 앞에 무너진 인간의 얼굴이었다.
귀도 레니의 그림 속 베아트리체는 슬프면서도 고요하다. 마치 “정의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는 듯하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또 다른 베아트리체들을 보고 있다.
2022년, 신당역 화장실에서 법에 방치된 한 여성이 살해됐다.
그녀는 수차례 경찰에 신고했고 스토킹 처벌법이 있었지만, 그 안의 ‘반의사불벌 조항’은 가해자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었다.
그는 합의를 핑계로 접근했고 그 속에서 2차 가해는 이어졌다.
결국 법의 그늘 속에서 그녀는 숨지고 말았다.
또 다른 사건도 있다.
아내에 대한 폭력으로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던 60대 남성.
그는 접근금지 명령이 끝난 지 단 일주일 만에 전 아내를 찾아가 살해한다.
피해자인 아내는 남편이 주변에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경찰에 상담을 예약했지만, 제도는 너무 느렸다.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그녀는 세상에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남게 됐다.
접근금지라는 명령이 끝난 그날, 법의 보호도 끝이 났다.
“접근금지의 끝은 다른 위험의 시작이었다.”
그 밖에도 반복되는 아동학대, 재범, 고령층 학대 사건들.
오늘의 사회 역시 여전히 “힘 있는 자의 법”과 “보호받지 못한 인간” 사이를 오가고 있다.
로마 시대와 달라진 것은 시간뿐이다.
어쩌면 인간의 세계는 여전히 약육강식의 구조 안에 있다.
힘없는 자는 피해를 입고, 정의는 늘 뒤늦게 도착한다.
그러나 완전히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로마 시민들이 베아트리체의 선처를 청원했듯
오늘날의 시민들도 다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의사불벌 조항 삭제의 논의가 이어지며,
피해자들의 여러 보호조치에 대한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더 나아질 내일을 꿈꾼다.
우리는 그저 조금씩 더 나아지길 원하는 것이다.
완전무결한 것은 없다.
나도 그렇고, 정의도 그렇다.
우리는 올바른 정의를 만들기 위해 한 발씩 내딛는 중일 것이라 믿어본다.
제목: Portrait of Beatrice Cenci
작가: 전통적으로 Guido Reni (1575-1642)에게 귀속되어 왔으나, 최근 연구에서는 Ginevra Cantofoli (17세기 볼로냐 여류화가)로 재귀속되고 있음
제작 연도: 약 1600년경(17세기 초반)으로 추정
기법: 유화(캔버스) 작품
현재 소장처: 이탈리아 로마의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팔라초 바르베리니) 등으로 알려짐
설명: 처형 직전의 순간이라거나, 아버지를 살해한 현장을 직접 묘사한 작품이라는 전통적 설명도 존재하지만 이는 문헌상 확정된 바 없음
베아트리체가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가녀린 베아트리체의 그 눈빛은 두려움의 눈빛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마지막 저항의 눈빛이다.
우리는 그녀의 메시지를 기억해야 한다.
정의는 언제나 늦게 도착하지만,
우리가 그 길을 멈추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