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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돌이 Feb 18. 2016

비 내리는 도서관의 예비 백수

#문돌이 #퇴사결심 #100일

 회사를 다니며 영어 실력이 얼마나 줄었나 확인하기 위해 토익 시험을 봤다. 출퇴근 시간을 이용한 미국드라마 시청으로 듣기는 수월했는데 문법과 읽기가 발목을 잡았다. 분명 실력 탓이 아니라 문제가 어려웠을거라 믿고 싶다.

  

 시험을 보고 서점으로 향했다. 인적성 책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다른 기업 원서를 몇 군데 넣었는데 서류를 통과한 회사가 있어 유형을 파악하러 갔다. 다른 회사에 가면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올챙이배 아저씨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다. 삶의 중압감을 집에서 반겨주는 아이의 웃음을 보고 참아내야만 하는 걸까? 

  

 책을 골라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에는 역시 로비에 자리를 잡아야 제 맛이다. 이용객이 많아 자리가 부족하다는 민원이 들어오자 도서관은 로비에 책상을 깔았다. 빈 공간을 책상으로 가득 채우니 수백 명은 더 공부할 자리가 생겼다.

  

 로비는 조금 쌀쌀하지만 가디건을 챙겼기에 걱정 없다. 창 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은근히 집중하는 데 도움을 준다. 궁상맞지만 나름 운치도 있다. 

 한참 문제를 풀다 보니 비가 그쳤다. 뻐근한 몸을 이끌고 밖에 나가 스트레칭을 했다. 한 자리 수 체지방을 유지하던 몸은 회사 생활의 풍파를 겪으며 비루해졌다. 퇴사 후 1순위는 옛날 몸 회복으로 정했다. 


 퇴사를 하루 앞두고 있는 별 생각이 없다. 생각을 하지 않는 건지 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 플랜 B가 명확했다면 좀 더 즐거운 퇴사 D-1을 보냈을지 모른다. 스트레칭을 하고 간단히 몸을 풀 겸 공원으로 향했다.  


 학창시절부터 이용하던 운동기구가 아직도 있다. 공부하다 잠이 오면 꼭 들러서 운동을 하던 공간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 해서 죽도록 했다. 스펙을 미리 쌓아야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대서 이력서를 한 줄씩 채웠다. 무언가 2%정도 부족하다 생각했지만 언젠가는 메워지리라 믿었는데 그 약간의 틈이 퇴사를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다시 돌아온 도서관의 옆 자리에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가 엄마에게 혼나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은 고학년을 대비하는 중요한 시기야. 기본은 다 떼고 심화 공부를 해야 하는데 평균 90점도 못 넘으면 어떻게 해 

 옆 동 준희는 나보다 훨씬 못 봤어 

 준희는 원래 공부 못하는 애잖아. 수진이는 이번에도 1등이라는데 아들도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가지 


 내일이면 백수가 되는 예비 백수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입이 근질거렸다. 아이에게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공부는 큰 도움이 안 돼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화가 난 아이엄마에게 뺨이라도 맞을 까봐 가만히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다. 초등학교 공부 정도는 동기만 있다면 언제든 따라잡을 수 있다(필자는 바둑특기생 출신으로 중학교까지 공부에 손을 놨었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주는 게 초등학생에게는 더 중요하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 몰입하는 방향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      


 아이가 희망하는 진로를 찾아주고 그 방향에 맞게 지원을 해주면 무작정 공부를 시키는 것보다 시간적, 금전적 효율이 좋다. 동기부여만 제대로 된다면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새벽까지 공부하는 아이를 말리는 꿈과 같은 경험도 가능하다. 


  자녀 교육에 있어 정답은 없으니 멀쩡히 다니던 대기업을 꿈을 찾겠다는 이유로 그만둔 어른아이의 의견은 참고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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