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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여름

영원의 교환일기 제9편 _ 영에게

by 무늬

안녕, 영.

무더운 여름, 잘 지냈어?


이 일기를 쓰는 지금, 베란다 밖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고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와. 밤이 되니 비로소 가을이 온 게 실감이 나.


지난 일기에서 영은 성장하려는 사람들은 교집합이 있다고 말했어. 모두 용기와 끈기를 가지고 있다고. 바닥을 딛고 올려다보는 하늘과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는 하늘이 다르듯이, 영이 노력한 만큼 성장하려는 사람들의 열정과 마음을 더 가까이서 보게 된 것 아닐까 싶어. 그 열정이 서로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불을 지펴주기도 하고.


영이 얘기했던 자의식 과잉이라는 건 결국 자신을 실제보다 크게 인식하는 거잖아. 하지만 자기 모습을 정확히 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어떤 이는 쪼그라들고, 어떤 이는 부풀려져 있을 거야. 어느 쪽이 됐던 그 간극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게 결국 자기다움을 획득하는 길이 아닐까?


요컨대 자신의 모습을 더 부풀려 생각하는 건 부푼 만큼 내가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 그 크기에 맞게 자라나기도 할 테니까.


영. 나는 이 찐득하고 무더운 여름 내내 결혼에 대해 골몰했어. 평생을 함께하기로 결심한 J와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여러 식장을 보러 다녔어. 영에게 이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나는 야외예식에 대한 로망이 있어.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하늘을 바라보며 초록이 무성한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야외 결혼은 여러 변수를 감내할 만큼의 용기를 요구했고, 동시에 초대받을 이들의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지. 결혼은 결코 둘 만의 사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내가 살아오며 맺은 인연들, 그리고 가족들의 인연까지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결혼이라는 걸. 그래서 나만의 색깔을 온전히 담기란 쉽지 않다는 것도. 그럼에도 야외 예식은 내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어.


어제는 내가 내년 예약한 날짜와 같은 날이었어. 과연, 이 날의 야외 예식은 어떤 느낌일까 기대하며 그곳을 찾아갔지. 그리고… 예상치 못한 충격이 밀려들었어.


일단… 기후위기로 9월 초는 더 이상 늦여름이 아니었어. 한여름에 가까웠지. 심지어 폭염주의경보도 받았어. 34도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하객들은 저마다 등에 물웅덩이를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고 너도나도 손부채질을 하며 신랑신부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어. 이게 과연 맞는 선택일까, 순전한 내 욕심은 아니었을까? 내 관자놀이에 흐르는 땀방울과 함께 고민에 잠겼어.


어떤 것은 포기하고, 또 어떤 것은 포기하지 말아야 할지, 사실 난 아직 잘 모르겠어. 무엇을 타협하고 무엇을 고집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나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아마 이 문제가 내가 식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겪을 제일 큰 화두이자 고민이 될 것 같아.


J에게 정말 고마운 건 나에게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정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같이 고민해 준다는 거야. 어떻게 보면 결혼이란 크고 작은 갈등을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해결해 나가는 법을 배우는 첫 번째 관문인 것 같기도 해. 그래서 다름 아닌 J와 이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해.


영과 함께 20대를 통과하며 비슷한 지점을 함께 고민해 왔는데 둘 다 30대가 된 지금 ,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고민들을 털어놓을 수 있는 교환일기가 있어서 행운이야.


치열하게 고민하며 때로는 쪼그라들고, 때로는 부풀면서도 결국 나와 영이 조금 더 ‘나다움’에 가까워질 수 있기를.


결혼에 대해 수많은 선택을 하며 어떤 것은 결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어. 하나를 선택하면 또 다른 하나는 희생하거나 포기해야만 한다고. 영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을 위해 포기한 무언가가 있어?


답장 기다릴게.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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