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말 2 아웃까지 역전의 기회가 남아 있는 것은 인생이기도 했다
일상이 바쁘기도 했고 아쉬워서 아껴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매주 방송을 챙겨보지 못해 얼마 전에서야 성남고 경기 방송을 봤다.
영상은 많이 밀려 있으나 직관은 몇 번 챙겨서 갔기에
얼마 전 다녀온 서울고 직관의 기억과 뒤늦게 챙겨본 성남고의 경기 내용이 겹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던 새벽이었다.
두 경기 모두 승부차기까지 이어질 만큼 끈질겼다.
나는 개인적으로 서울고 경기를 직관으로 먼저 봤고 성남고 경기는 방송으로 나중에 봤는데
승부치기까지 가서 역전에 역전에 역전을 이루고 이긴 성남고의 경기와
승부치기까지 가서 역전에 역전에 역전을 맞고 진 서울고의 경기에서
승패를 결정 지은 그 말과 수가 같은 경우일 때가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문교원 선수가 성남고 경기에서는 역전타를 쳤지만
서울고 경기에서는 8회 말 기회를 날렸고,
상대팀 선수 중 5타수 4안타를 쳐 승리에 제일 많이 기여했던 김민석 선수는
마지막 10회 말에서 번트가 너무 허무하게 아웃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성남고 경기에서 정성훈 선수가 10회 말 3루에서 태그아웃을 시킴으로
말도 안 되는 역전을 이뤄내기도 했지만,
서울고 경기에서 정성훈 선수는 그 똑같은 10회 말 3루에서 득점을 눈앞에 두고
두 발 자국 떨어져 있던 그 간격 때문에 견제로 아웃되며 너무 허무하게 지기도 했다
분명 지난주 경기에선 누구 때문에 너무 결정적인 실책을 범해 황당하기도 했는데
이번 주 방송에서는 그 같은 사람의 그 송구, 그 수비, 그 타석으로 인해
떠내려 가던 팀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그 같은 3루에서 그 같은 선수가 승리를 이뤄내기도 하고 패배로 무너지기도 하고,
그 같은 8회 말에서 그 같은 선수가 역전을 이뤄내기도 하고 기회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에이스가 무너지기도 하고 대타가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영원한 주전도, 영원한 더그아웃도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너그러워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팀을 일으킨 사람이 내일 처참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고,
오늘 팀에서 무너져 내린 사람이 내일 바닥부터 팀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한화의 김서현 선수가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9회 초 선두타자한테 볼넷을 허용한 것이
결국 틈을 벌려 패배로 끝나기도 했지만,
어느 댓글처럼 김서현이 없었더라면 그 4차전까지 가기 위한 한화의 33승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같은 경기 안에서도 호수비와 실책이 있을 수 있는데
하물며 어제의 경기는 승리였지만 오늘의 경기는 패배일 수도 있고
그 한 끗 차이의 수많은 작전과 그 작전들의 실행 속에서 매번 서로를 너무 혹독하게 몰아친다면
영원한 주전도 영원한 더그아웃도 없다는 이치를 배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내가 갔던 서울고와의 직관 경기에서 계속 찬스를 놓친 문교원 선수가
아직은 부족한가 보다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 이후 보게 된 성남고와의 경기에선 그 같은 문교원 선수가
혈을 뚫어줘 역전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을 뒤늦게 보며 적어도 내 마음속 MVP로 자리잡은 것처럼
야구에는 영원한 주전도, 영원한 더그아웃도 없었다.
폭투로 빠진 공을 보고 2루에서 뛰다
그 선수가 결국 3루에서 아웃이 되기도 한다.
하물며 당연히 홈런을 친 선수가 다음 타석에선 삼진이 되기도 하고
벤치에만 앉아있던 선수가 마무리 투수의 역할로 올라오기도 한다.
다르게 말하면 진 게임에도 잘 해냈던 것이 있고,
이긴 게임에도 부족했던 것이 있다.
또 다르게 말하면 진 게임에도 이기고 있었던, 그리고 이길 뻔한 순간이 있고,
이긴 게임에서도 지고 있었던, 그리고 질 뻔했던 순간이 있다.
이기고 지고 잘하고 못하는 것은 모두 정말 종이 한 장의 차이일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대다수의 경우는 그 종이 한 장 또한 운의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단 하나의 수가 팀에게 기회를 쥐어주기도 하고
그 단 하나의 수가 결국 팀을 살리기도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단 하나의 실책이 팀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하고
그 단 하나의 실책이 결국 팀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경기를 복기해 보면 승리 앞에 수많은 수와 말이 있듯
패배 앞에도 수많은 수와 말이 있다.
어느 하나의 결정적인 요인이 있을 때도 있지만
또 뒤집어 보면 결코 하나의 요인이 아닌 여러 가지 누적된 요인들로 인한 패배일 수밖에 없다.
경기 후 잡힌 카메라에선 유독 서럽게 울고 있는 한 명의 선수가 보일지 몰라도
라커룸을 돌아가는 복도에서 내가 그 공을, 그 타석을, 그 실책을 하지 않았더라면
되뇌고 있는 선수들은 많다.
그렇듯 역전되고 또 역전되고 다시 역전되다 9회 말 2 아웃의 상황에서까지 역전의 기회가 남아 있는 것은
야구뿐만이 아니라 인생이기도 했다.
야구는 막으면 기회가 온다, 가장 자주 들렸던 선수들의 대사 중 하나였다.
아주 통찰력 있는 명언으로 들렸는데 어느 날 문득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비를 하는 동안 어떻게 해서든 아웃 카운트 3개를 잡고 교대를 하면
그다음 공격에서 3번의 기회가 우리에게도 오는 것은
밤이 지나고 나면 아침이 온다는 말과 같이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선수들이 되뇌었을 때
단순한 현실이 아닌 정말 삶의 깊은 곳을 관통하는 지혜로 들렸던 것은
어쩌면 너무 많은 순간 속에서 내가 지금 이 문제를 막지 못하고 있다는 버거움에,
그래서 계속 막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에 고뇌와 번뇌로 범벅이 되어 있을 때는
그 어떤 진리도 기억나지 않아서였을까.
그 이후로 나는 '야구는 막으면 기회가 온다' 그 문장을 책상 한 구석에 적고
아침에 일을 시작하기 전 항상 마음속에 다시 새기려 했다.
그래서 이번 주 대학야구 올스타전에서도 패색이 짙었던 경기 내내
희망이 낙망이라고 들려오던 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분명 우리에게는 약속의 5회가, 약속의 6회가, 약속의 7회가, 약속의 8회가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어제의 부족했던 선수들이 오늘 직접 이뤄내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너그러워야 하는 걸까, 다시 한번 떠올렸다.
계속 부진했던 선수가 끝끝내 경기를 뒤집어 내고
그 부진했던 선수 앞에 많은 선수들의 작은 수 들이 쌓여 있었기에 결과로 이어졌던 것이다.
요기 베라의 "야구는 9회 말 2 아웃부터"라는 말을 오늘만큼 되뇌었던 적은 없다.
6:2에서도 왜 한 번도 분명 우리는 이길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
야구는 막으면 기회가 온다.
그 송구, 그 수비, 그 타석, 그 공, 그 삼진, 그 안타, 그 도루,
그 수많은 야구들이 모여 하나의 팀이 된 것이기에
누구 하나 나무랄 것 없고 누구 하나 버릴 것 없는
이 팀에 대한 신뢰는 아주 단단히 깊이 뿌리내린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
오늘도 또 한 번 꺼지지 않는 우리의 불꽃이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