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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Jul 14. 2024

열정과 사명감만으로 비즈니스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109

01 . 

이번 달은 2년 반 가까이 운영해온 독서모임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는 시작되는 달이기도 합니다. (이번 시즌이 여섯 번째 시즌이고, 그동안 25권의 책을 다뤘으니 문득 이 또한 적지 않은 기록이자 경험이란 생각이 드네요.)

이번 시즌 6는 '내가 회사를 만든다면'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비즈니스 4부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뭐 진짜로 우리 각자가 회사를 만들게 되는 순간이 올지는 몰라도 무엇보다 적어도 내가 속한 비즈니스와 앞으로 내가 더 관심을 가지게 될 비즈니스 영역의 기회들을 한 번 잘 이해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02 . 

첫 책은 비즈니스 씬에서 아주 큰 화제를 모았던 '알베르토 사보이아'가 쓴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을 골랐습니다. 4년 전쯤 처음 이 책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데요, 구글 초창기 엔지니어링 디렉터로 시작해 지금은 스타트업 분야의 혁신 전문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왜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를 지적하며 자신이 걸어온 길 속에서 맛봤던 처절한 실패의 순간들을 회고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이른바 '될 놈(The Right It)'을 찾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들을 소개하죠. 무수히 많은 비즈니스 관련 서적, 경영/경제서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실패 모델에 집중한 이 책을 고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03 . 

첫 모임을 가졌던 지난 주말, 또 한 번 멤버분들의 탁월한 인사이트가 넘쳐나는 대화가 이어졌고 그 안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와 정보들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설정한 첫 모임의 목표는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그저 '비즈니스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때문에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선 어떤 마인드셋을 장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전부였거든요. 비즈니스 세계를 탐구하는 것도 너무너무 중요하지만 적어도 비즈니스를 시작한다는 가정 하에서는 비즈니스를 움직이는 그 세계의 언어와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04 . 

그런 의미에서 제가 들려드린 이야기 중 하나는 영국의 법의학자이자 정신의학전문가이기도 한 '리처드 테일러'박사의 일화였습니다. 오랫동안 살인자의 심리를 연구한 분이자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과거 흥미로운 연구 한 가지를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테일러 박사 본인이 보기에 형사는 크게 두 부류로 구분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아주 큰 사명감과 공감 능력, 열정을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형사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저 '사건 해결을 마치 게임처럼 다루며 접근하는 형사들'이라는 거죠.


05 . 

전자는 늘 피해자의 심리에 공감하고 가해자에겐 분노를 표출하며 누구보다 사건 해결에 진심인 사람들이었고, 후자는 그 정도의 사명감이나 열정은 없지만 (그의 표현에 따르지만) 마치 '스도쿠 게임'을 풀듯 사건 자체에 엄청난 집중력과 승부욕을 발휘하는 케이스인 겁니다. 이 두 부류 중에서 과연 어떤 부류가 사건 해결 능률이 높았을까요? 바로 후자입니다. 물론 직업적 효율을 논하는데 윤리의식을 배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사건 해결 역량으로만 연결 지으면 사실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는 거죠. 


06 . 

그리고 테일러 박사는 이런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열정, 사명감, 공감 능력, 의미 부여 행위 모두 중요한 자질이며 행동 양식입니다. 하지만 그게 뭔가를 작동(working) 시키는 본질이 될 수는 없어요. 오히려 사명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사명감을 가진 것만으로 마치 뭔가 해결해 가고 있다는 착각을 합니다.”

저는 이 말에 정말 크게 공감했습니다. 제가 뭐 전문 투자자도 아니고 창업 경험이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적어도 제 주위에서 겪은 사례만 보아도, 늘 본인이 뭔가에 큰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뭔가 일을 풀어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07 . 

더불어 그 사람들은 주위의 사람들이 데이터를 비롯한 객관적 근거들로 본인을 공격해 올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큰 꿈과 대단한 열정과 남다른 사명감과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가진 지에 대해서 설파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진심 어린 조언이나 현명한 비판도 자신을 깎아내리려는 네거티브 전략이라고 치부하기 일쑤였죠. 당연히 특정한 대상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저는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그 목표를 위해 여러 사람을 운명 공동체로 끌어들이는 것이 무척 위태위태해 보였습니다. 


08 . 

저는 (냉정하게 얘기해서) 데이터화할 수 없거나 비교 우위를 논할 수 없는 것은 비즈니스 경쟁력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앞서 말한 그 정성적인 역량들이 여러분이 비즈니스 경쟁력을 갖추는 데 있어 큰 원동력이 될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비즈니스 세계에서 특정한 우위를 점하도록 해줄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나에게 있어 지표화하거나 객관적 비교를 할 수 없는 모든 요소들을 다 떼어낸 다음 나에게 남은 게 진짜 내 비즈니스 경쟁력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내 사업을 시작하는 데 있어 실패 확률을 줄이는 가장 첫걸음이라는 생각이고요. 


09 . 

다시 책 얘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 도입부에서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대부분의 신제품은 시장에서 실패한다. 유능하게 실행해도 마찬가지다.' 

이는 마치 아무리 큰 수들을 곱하더라도 마지막에 0을 곱하는 순간 답은 0이 되는 것처럼, 수많은 비즈니스 실행 요소 중 단 한 가지라도 어긋나면 실패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말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공식이 통용되기 때문에 더 빨리, 더 냉정하게 실패해 봐야 한다고 말하죠. 


10 . 

저자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저 역시 같은 마음입니다. 세상에는 실패할 확률이 높은 일이 그렇지 않은 일보다 훨씬 많고,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해내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객관적인 경쟁력이 자리해야 할 곳에 정성적인 포부만 한가득 담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이런 말을 하면 (뜬금없지만...) '도영님 .. T세요?'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저는 무려 한쪽으로 확 치우친 F입니다... 그런 제가, 하물며 누구보다 감성적인 말들을 좋아하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뭔가 조금이라도 더 신뢰가 가지 않으신가요? 우스갯소리로 좀 포장을 해봤지만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비즈니스에 '적당함'이란 없고, 그 적당함에서 벗어나는 일은 실패의 확률을 인정하고 그 확률을 낮추기 위해 객관적인 비즈니스 경쟁력을 갖추는 길뿐이라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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