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가 림프종 진단을 받은 후, 나는 바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길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아픈 반려견을 집에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림프종이 무엇인지 제대로 공부하고 치료 방향을 잘 세우고자 했다. 우리 구름이 몸에 생긴 종양들이 사라지고 다시 건강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랐다.
항암 치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암과 대체 의학에 관련된 책을 찾아 읽었다. 그 당시에는 반려동물 암 치료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림프종은 사람의 자료를 많이 참고했다. 항암 치료에 대해 정말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은 받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구름이는 건강 검진을 받을 때 투여하는 마취제에도 발작 반응을 일으킨 적이 있고, 병원에서 받는 물리적인 치료 행위 자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암 치료 대신 대체 의학인 동종 요법*을 선택했다.
*동종 요법: 건강한 사람에게서 어떤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의학 물질은 비슷한 증상이 있는 환자에게 매우 적은 양을 주어도 효과가 있다는 원리를 이용하여 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방법–네이버 국어사전
동종 요법의 특징은 개체별로 각기 다른 치료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같은 병을 앓고 있더라도 치료제는 각각의 개체별 특성에 따라 선택되며, 병을 직접적으로 고친다는 개념보다는 몸이 스스로 병을 이겨내도록 도와주는 의미이다. 약은 장기별 적용 약제와 체질 약제가 처방되는데, 복용 방법이 까다롭고 지켜야 할 사항도 많다. 가장 큰 장점은 익숙한 집에서 보호자가 직접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행히 구름이도 별 거부감 없이 치료에 잘 협조해 주어서 약을 먹이는 것이 크게 힘들지 않았다.
특별한 것 없는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밥 만들어 먹이기, 시간에 맞춰 약 먹이기, 서너 번의 산책, 투병 일기 작성. 병원은 2주에 한 번씩 갔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가족이나 친구가 우리를 보러 집으로 놀러 왔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떨치는 시기였기에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사서 구름이를 태우고 다니기도 했다. 구름이는 힘든 기색 없이 잘 버티어 주었고, 시간이 지나며 종양들의 크기도 점점 줄어들었다.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질 순간을 기다리며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구름이의 얼굴을 보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구름이는 한쪽 귀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한쪽 눈을 제대로 감지 못했다. 얼굴 한쪽이 미세하게 처져 있었고, 물을 마실 때도 그쪽으로 많이 흘리며 먹었다. 병원을 예약했다. 가만히 있어도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하늘이 원망스럽다 못해 분노가 치솟았다.
CT 촬영 결과 구름이는 이미 많은 장기로 암이 전이된 상태였다. 동종 요법으로 진료를 해 주시던 선생님과 상의한 결과, 이 정도의 상태라면 더 이상의 동종 요법 치료는 의미가 없다고 하셨다. 나는 동종 요법 치료를 중단하고 한방 치료를 시작했다. 한방 치료는 남은 삶의 질을 관리하고 고통을 덜어 주는 의미의 치료였다. 아무 치료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종 요법 약과 달리 한약은 향이 강해서인지 먹이기가 쉽지 않았다. 약을 계속 뱉어 내는 통에 결국은 주사기에 약을 넣어 목 안쪽으로 강제로 밀어 넣어야 했다. 한약을 먹으며 정기적으로 침을 맞으러 다녔는데 신기하게도 침을 맞은 날엔 반짝 기운이 돌았다.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었다. 그 무렵 구름이는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에는 품에 안고 산책을 했고, 비가 내리거나 찬바람이 불어오는 날에는 담요로 싸매고 산책을 했다. 화장할 때 넣어 줄 가족사진도 찍었고, 열 번째 생일도 축하해 주었으며, 구름이와 보낼 마지막 명절일 추석에는 가족이 모두 우리 집으로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나는 평온하고 차분하게 우리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싶었다.
어쩌면 오늘이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 날일지 모르기에 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구름이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이번 생에 나의 개로 와 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힘들면 언제든 떠나도 된다고, 혼자 남겨질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사는 게 너무 힘들 때마다 나는 너를 생각하며 버틸 거라고 말이다. 아주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말도 물론 빼놓지 않았다.
목에도 종양이 생기며 음식을 삼키기 힘들어하는 구름이를 위해 나는 죽을 만들었다.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먹었는데, 어느 날부터는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죽을 믹서기에 곱게 갈아 주사기로 조금씩 먹였지만, 결국 다 토해 냈고 물조차 편히 먹지 못했다. 나는 이별의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차분하게 보내 주려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흘 뒤 새벽 3시, 나의 개는 찬란한 생을 뒤로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4개월 때 우리 가족이 되어 가족과 함께 4년을 살았고, 나와 함께 6년을 살았다. 나와 함께한 6년 중 4개월은 림프종으로 투병 생활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