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을 떠나보내고 나는 한동안 침묵했다. 얽히고설킨 감정들이 속을 뒤집어 놓아도 혼자 속앓이를 할 뿐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가까운 이들이 괜찮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하며 말을 돌렸다. 말을 하기 싫었다기보다는 말을 하기 힘들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그때의 심정이었다. 떠난 반려견을 떠올리며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가끔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기는 했다.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삶보다 죽음으로 가까워지는 반려견을 돌보며 느꼈던 두려움과 무력감을 말하고 싶었다. 상대방은 아는 사람 말고 모르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아무 말 없이 그저 내 얘기를 경청해 주었으면 했다. 어설픈 위로의 말보다 따듯한 침묵을 원했다.
누가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인터넷에 ‘펫로스 증후군’을 검색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 보았다. 내용은 각기 달랐지만 그들의 마음이 너무 공감되어 읽기가 힘들었다. 모든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지만, 특히 사고로 반려동물을 잃은 보호자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갑작스레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그 심정을 차마 헤아릴 수 없었다. 그들이 느낄 후회와 죄책감의 무게가 가늠되지 않았다.
동물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가끔 시청한다.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강아지들이 움직일 때마다 사고를 친다. 보호자는 한숨을 쉬며 강아지들을 혼내지만, 강아지들은 순진무구한 눈으로 돌아서자마자 또 사고를 친다. 먹을 때와 잘 때는 세상 사랑스러운 천사가 된다. 나는 장면들을 느긋하게 지켜보며 생각한다. 무적의 강아지 시절은 인간이 무조건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구조하는 장면은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인간에 의해 학대받고, 버려지고, 이용당하는 동물이 너무 많다.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TV는 부지런히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죽음을 앞둔 반려동물이 있다. 머지않아 무지개다리를 건널 것이다. 보호자가 정성껏 반려동물을 보살핀다. 나는 순식간에 과거로 빨려 들어간다. 그때의 감정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막을 새도 없이 눈물이 흐른다. 반려동물의 죽음 이후 나는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심장이 옥죄어 든다. 우리의 마지막 장면이 자꾸 떠올라 애틋하고 서글펐다.
인간은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인연을 맺는다. 스치고 지나가는 수준의 의미 없는 만남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만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지긋지긋한 인연도 생각보다 많다. 가벼운 인연을 털어 내고 지겹게 이어지던 악연까지 덜어 내면 남은 인연은 몇 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근원적인 힘이 바로 이들과의 인연에서 나온다. 보호자와 반려동물의 인연도 물론 포함된다. 삶의 중심을 잡아 주는 귀중한 인연은 누구에게나 있다.
반려동물이 중병에 걸려 언제 떠날지 모르는 보호자들과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사고로 반려동물을 잃은 보호자들,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동물의 보호자들까지. 정확한 수치를 제시할 순 없지만 무수히 많은 이들이 같은 아픔을 겪었고 상처를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반려동물 상실 증후군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에게는 한평생 당신만을 바라보고 사랑했던 당신의 반려동물이 있다. 물리적 이별이 인연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당신의 아픔에 공감하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비록 우리는 서로의 얼굴도 모르고 연락처도 모르지만,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방식으로, 누군가는 책으로, 누군가는 음악으로, 누군가는 영상으로 그렇게 마음을 나누고 응원을 보낸다. 죽음까지 가져갈 묵직한 인연만이 전부가 아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인연의 힘을 믿는다. 나의 글이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