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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희철 Sep 14. 2018

돈이 필요해서 썼던 글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구했다

많은 깨달음을 남긴 성공하지 못한(혹은 실패한) 창업.

사무실 한 켠에 붙여둔 글귀였다.

이 글이 공표되는 시점부터, 청년교육벤처 비유는 브랜드 ‘꿈소서’ 활용을 포함한 모든 사업적 활동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비유는 영리 사업체로서의 기능을 해체하고, V 네트워크만을 남깁니다. 본 결정의 이유는 8년간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유가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비유 구성원들의 새로운 꿈을 위한 길을 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결정은 이사회가 다시 소집되어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한 무기한 유효합니다.

비유는 2010 7 창업자 3인의 도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1 어린 청년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이 되고자 업을 시작하였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저 우리 앞에는 기회가 있었고, 우리는 기꺼이 우리를 던져보기로 마음먹었었지요.

지난 8년간 우리 스스로도 우리의 행보가 무엇을 향해 가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것이 우리에게 결코 작지않은 무언가를 남겼었다는 것, 그리고 너무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가치있는 여정이었다는 것은 확신합니다.  

얼마전 작고한 가수 신해철은 오래전 자신이 몸담은 밴드 넥스트의 해체와 은퇴를 선언하는 공연에서 마지막으로 ‘불멸에 관하여’라는 곡을 노래했습니다. 그 노래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습니다.


“사라져가야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그들은 최고의 자리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기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그들은 더 나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기위해 과감히 멈추는 선택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 모습을 최고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오늘 우리는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더 나은 모습으로 남기 위해, 더 나은 모습으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오늘 우리는 멈추려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끝이 정말 끝은 아니겠지요.
한 번 단 한번뿐인 20대를 여러분과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여러분께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이제 우리 각자는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내려 합니다. 우리의 새로운 시작에 행운을 빌어 주세요. 이따금씩 함께 만납시다.


언제 어디서라도 스트러글입니다!
우리와 함께해주셨던 모든 이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청년교육벤처 비유 창업자 일동 올림.


그리고 다들 각자의 길에서 정말 잘해내고 있다.

이 글을 우리를 거쳐간 '졸업생'들이 있는 그룹에 올리고 나와 친구들의 20대를 함께한, 창업의 마침표를 찍었다. 모두를 위해 우리는 배에서 내려야했다. 스물 아홉 3월 1일. 전역 4달 전이었다. 시간이 지나, 2018년 7월 5일 스물아홉 전역했던 나에게는 잔고가 30만원 뿐이었고, 회사를 정리한 터라 내게는 일이 없었다.


2년만에 다시 사회에 던져지고 2주간 두문불출하며 어떻게 미래를 설계할지 고민할 때 나는 문득 아래와 같은 글을 페이스북에 적었다. 왜 적었을까 나는? 음..일이 필요해서 적었다. 그리고 그냥 쓰고 싶어서 적었다. 나는 무어라도 쓰고 싶었다.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 교육 장사치였던 나의 미래

“-“은 어릴 적 즐겨보던 드라마 상도에서 거상 임상옥이 말한 대사다. 그래도 "이익도 남겨야하는데" 라고 100번쯤 생각을 하긴했다.

..오늘로 전역한 지 딱 2주가 됐다. 우리나라 남성 대다수가 다녀오는 군대지만 사회인으로서의 적응은 아직 어렵기만 하다. 군대에서 있는 시간을 '성찰의 시간'이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달력을 보며 존버하는 시간이다. 일어나는 사건들은 매일 매일이 매우 비슷하다. 큰 의미가 없기에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게 되고, 각자는 저마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찾는다. 의경들은 기동 버스에서 승차해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PMP를 보기도 하고(나중에는 예능박사됨. 서주원 너 그러는 거 아니야 임마.) 책을 읽거나 개인공부를 하기도 한다.


그러다 제법 오래 밖에 서있어야 할 때가 있다. 광장에 서있는다거나 차고지를 지킨다거나. 이때 그냥 서있으면 시간이 정말 안가기 때문에 나중에는 2시간 동안 서있어야 하면 2시간짜리 '고민거리'를 미리 생각해두는 요령이 생긴다. (결국엔 성찰의 시간이 맞는 건가..)


주제는 매번 다른데, 밖에서 지나보낸 시간과 나가서 보낼 시간을 생각하다 결국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방향이 흘러간다. 그때쯤 되면 버스든 생활실에든 들어올 때가 된다. 자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한 것을 써두고, 가끔 편지에도 쓴다. 어쩌다 휴가를 나오면 생각한 '그럴듯한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레전드 복서 타이슨 씨의 말처럼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흠씬 ㅊ맞기 전에는.."


그렇다. 안해본 계획은 보통 공상이기 마련이다. 거의 2년만에 세상에 다시 던져진 나는 지난 2주 간 꽤나 방황 같은 당황 중이었고 앞으로는 안에서의 생각들이 공상인지 가능한 계획인지는 직접 마주하면서 알아보는 수 밖에는 없다.


지금 나는 길의 시작점을 찾고 있다. 어렴풋한 방향은 '말과 글로 정보격차를 줄이고 생각할 계기를 주는 사람'으로 알려지고 싶다는 정도다. 허지웅 씨는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기전 10년 넘게 영화 평론과 각종 기고를 했다. TBS 교통방송에 청취율 1위 프로그램을 만든 김어준 씨는 '딴지 그룹'의 종신총수로 2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켰다. 변희재 씨는 (...)의경시절 집회현장에서 발언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이렇듯 한 길에서 존버를 하다보면 무어가 되어도 될 수도(안될 수도)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전문성이고 다른 하나는 '생존이 아닌 생활을 해낼만한 돈'이다. 뜻을 지키려면 돈이 필요하다. 어떤 은퇴한 대법관은 퇴임후 몇 달 동안 부인의 편의점에서 일했다고 한다. 물론 그는 얼마 후 대형 로펌으로 갔다. 그때 그가 남긴 말이 있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3번 정도 의역하면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마음을 지키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는 지킬 마음이 어찌나 컸는지 무지 큰 돈을 주는(정말.. 큰 돈입니다) 로펌으로 갔다. 결국 그는 평생의 업이었던 법을 다시 하게 됐다. 그래 '큰 마음을 지키려고.'


스물 한살부터 스물 일곱까지 지난 날동안 나는 ‘교육장사치’로 살았다. 나는 '교사'도, 일반적인 의미의 '학원 강사'도 아니었고 '교육 사업가'가 되고 싶은 '교육 자영업자'였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사람만은 꼭 남기고 싶었기에 나쁜 말도 아닌 것 같았다.


21살 나는 우연한 계기로 친구들과 교육을 하게 됐다. 2010년부터 우리는 '문멘'(문희철 멘토')과 같은 호칭을 썼지만 어린 녀석들이 더 어린 친구들을 만났으니 참 막막했다. '가르친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가 배운 것이 더 많았다. 21살 어린 어른이 29살이 되는 사이 우리는 '청년교육벤처 비유'를 만들었고, 그 서비스인 '꿈소서' 브랜드를 만들었고 교육에서 처음 삽을 뜬지 8년만인 올 3월 '교육 사업'을 중단했다. 각 구성원들의 새로운 길을 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꿈소서'와 '비유'의 이름으로 교육을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다.

한편 나도 나의 길을 가야하고, 나는 그 뜻을 지켜야한다. 그 뜻이 대법관님만큼 크지는 않기에 나는 큰 돈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길을 계속 걸을 정도로 항산할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교육사업'을 그만두었어도 교육은 계속 해내고 싶다. 나는 교육장사치로 20대를 보내왔고 그것을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사람을 남기며 돈을 벌고 싶다. 물론 나는 항산을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기에 오늘 알바몬에도 나를 등록했다.(예비역은 할 수 있다! 충!성!)


이상 두서없는 글이 길었습니다. 블리자드 게임 히오스 유입을 유도하는 레스토랑스 같은 이 글의 결론은 제게 일을 맡기시면 저는 반드시 완수해낸다는 것입니다.


스물아홉 문희철은 다음의 일을 잘합니다. 나는 준비되어있습니다.
작가가 되려는 문희철은 열심히 씁니다. 여러분은 문희철을 잘 써주십시오.




이 글 다음에는 간단한 포트폴리오를 덧붙였다.  참 신기하고 또 감사하게도 함께 연구과제를 진행했던 팀에서 이 글을 보고 바로 연락을 주었고, 만족할만한 좋은 조건으로 다시 일하게 되었다. 게다가 정말 재밌고, 흥미로운 일이다. 더불어 여름 2달 동안 고3 에세이 클래스까지 맡게 되어 나는 이번 여름을 정말 부족함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이래 저래 기억에 남을 20대 마지막 여름이었다. 내가 남긴 것은 정말 사람이었을까. 시간이 다시 말해줄 일이다. 물론 그게 언제든 나는 다시 뚜벅 뚜벅 걸어갈 것이다. 스트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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