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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밤토끼 Sep 13. 2022

다시 만난 개미지옥

나의 과잉소비에 대하여

배송비 절약을 위해 지인으로부터 사이트 하나를 소개받았다. 소개받은 사이트에 접속하자마자 나의 눈은 휘둥그레졌고 궁금증에 못 이겨 여러 개의 카테고리를 넘나들며 페이지를 쉴 새 없이 넘겨댔다. 그리곤 구입할 제품 리스트를 쓰기 시작했다. 2012년 그렇게 '아이허브'를 접했다.


그 전에는 해외직구를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허브에 접속하는 순간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국내에 서 보기 쉽지 않은 다양한 유기농 제품을 보니 장바구니가 순식간에 채워졌다(특히나 유기농 세안제와 립밤, 스킨, 향신료 등을 그렇게 장바구니에 담아댔다).


아이허브를 알려준 지인은 아이허브를 '개미지옥'이라 했다. 그의 말대로 나는 아이허브라는 개미지옥에 빠져 한 동안 사이트를 수시로 접속했다.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호기심과 무료배송을 핑계 삼아 장바구니를 채웠고 차곡차곡 불어난 금액에 화들짝 놀라며 삭제 버튼 누르기를 반복했다. 개미는 덫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개미지옥에 빠지지만 나는 무료배송과 (필요하지 않은) 다양한 상품이 덫인 걸 알면서 아이허브에 빠졌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구입했던 각종 제품들은 사용을 다하지 못한 상태로 유통기한을 넘기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미국산 개미지옥들. 대체로 유기농 스킨케어 제품과 세제를 필요치 보다 과잉구매하여 쟁여뒀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아이허브와 코스트코에서 구입한 물건은 짐짝이 되었다.


한 동안 아이허브에 빠져 허우적거리긴 했지만 아이허브에 대한 관심이 아주 길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아이허브라는 개미지옥에서 빠져나와 또 다른 개미지옥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의 두 번째 개미지옥은 '코스트코'였다.


2013년 함께 살던 친구에게 자가용이 생기면서 말로만 듣던 코스트코를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코스트코의 규모와 제품 라인업, 가격에 "우와!"를 연발하며 구경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대용량의 묶음 판매 상품이 즐비한데 가격은 정말 안 사고는 못 배길 수준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순간 훅하는 마음을 모두 포용하기엔 2인이라는 동거인 수가 적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트코에 한번 방문하면 10만 원 가까이 지출했고 '썩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입한 대용량의 묶음 세제는 소모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역시나 묶음 판매되었던 화장품은 '지겨워서' 사용하지 못하고 유통기한을 넘기기도 했지만 코스트코에 입장하는 순간 홀린 듯 카트에 상품을 실었다.


2인 가구로도 감당되지 않던 코스트코 쇼핑이었지만 무슨 정신이었는지 1인 가구가 되어서는 연회비를 내고 코스트코에 가입했다. 내 기억 상 코스트코에 가입을 하고 1년 동안 딱 한번 방문하여 베이킹소다 두 묶음을 사고 피자를 먹고 왔다. "일단 가면 10만 원"이라고 툴툴거리면서도 코스트코에 가입했던 것은 여전히 의아하다. 정신을 빨리 차려 회비가 무용해진 것이 이득이라면 이득이었을까.


천만다행으로 이케아라는 개미지옥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케아에 빠지지 않은 이유는 나에게 이케아는 너무나 멀고 멀었기 때문...


결혼 후 신혼집을 마련한 동네에는 대형마트(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등)가 없었다. 집과 가장 가깝고 큰 마트라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뿐이라 사뭇 걱정을 했지만 대형마트가 없는 것은 없는 대로 만족스러웠다. 판매하는 상품이 대형마트만큼 많지 않아 상품에 눈 돌아가는 일이 적었고 대체로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구입하는 방식으로 소비 습관이 조금 달라졌다. 그렇게 나의 과잉소비는 사라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이전에 만난 개미지옥보다 더 크고, 더 빠르게 빠져드는 개미지옥을 만나게 되었으니 나의 과잉소비는 끝난 것이 아니라 휴식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종 포털 앱에서는 온갖 종류의 제품을 상상도 못할 가격(심지어 무료배송)으로 판매하고 있었고, 제품이 매일매일 달라지니 나는 또 호기심에 매일매일 쇼핑페이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2019년 퇴사를 한 후 손에서 핸드폰을 놓는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 포털 앱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핫딜' '톡딜' '브랜드데이' '원쁠딜' 등등의 이름으로 매일매일 엄청난 양의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개미지옥을 세번째로 만나게 되었다. 세 번째 개미지옥을 만난 후 '아니 내가 도대체! 왜 이제야! 이걸 알았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 개미지옥은 나에게 아이허브와 코스트코와는 차원이 다른 과잉소비를 선사했다.


'이 구성이 이 금액이라고?!!' 놀라워하며 결제 버튼을 눌렀고, '제품 가격이 1만 원도 되지 않는데 무료배송이라고?!!' 다소 의아해하며 또 결제 버튼을 눌렀다. 세 번째 만난 핫딜이라는 개미지옥은 나에게 무차별적 쇼핑(생활용품, 냉동식품, 신선식품 등을 고루 구입했다)을 하게 만들었다. 포털사이트는 옛날 옛적에 가입이 되어 있으니 새로 가입하는 번거로움이 없었고 핸드폰을 들고 엄지손가락을 몇 번 톡톡 움직이면 쇼핑이 끝나니 쇼핑의 장은 항상 열려있었다.


핫딜의 개미지옥에 빠졌다는 것을 자각한 것은 과잉소비를 하는 만큼 온갖 종류의 택배박스, 완충제, 아이스팩이 차곡차곡 쌓여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배출하는 주기가 짧아졌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택배박스는 분리배출을 하면 되지만, 에어캡과 아이스팩은 왠지 아까워 버리지도 못하고 사용하지도 못한 채 집안에 또 쌓여갔다.


어느 날 우체국에서 에어캡 사용 안내 문구를 보고 직원에게 자원순환 차원에서 깨끗한 에어캡을 가져다줘도 되는지 물어본 후 집에 고이 모셔놓았던 에어캡을 우체국으로 가져갔다. 다행히 우체국에서 흔쾌히 가져오라고 하셔서 안심하고 가져가고 있다.

(* 우체국에서 에어캡 자원순환 캠페인을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아주 크지만 혹시나 이 글을 보고 난 후 에어캡 자원순환을 원하시는 경우 우체국에 꼭 문의하고 가져가시면 좋을 듯합니다.)


올해 초 집 모아두었던 에어캡을 혜화동과 성북동 우체국에 가져가 자원순환을 했다. 이후 수시로 우체국을 방문하는데 갈 때마다 우체국에서도 긍정적으로 반응하니 고마운 마음이 크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는 개미지옥이 너무 많고 고물가 시대에 개미지옥에 빠지지 않는 것은 더 어려워 보이니 제로 웨이스트 스토어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싼 제품 대신 친환경 제품 사용하세요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참 어렵다. 한편으로는 친환경 제품을 제조, 판매하는 브랜드들도 엄청난 할인행사로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만들기도 하니 아이러니하다.


그 많은 양의 세제를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팔고 있는데 어느 세월에 그걸 다 쓰고 세제를 리필하러 오겠어요?!


 차례의 개미지옥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소소한 희망이 있다면,


아마도 집에 쌓여있는 세제를  사용하고 나면 리필스테이션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는 꿈 같은 희망.


그리고 내가  만나게  개미지옥은 조금  더디게 만나고 개미지옥에 빠졌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있을 거라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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