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탄생, 프롤로그
올해 1월, 엄마가 되었다.
생물학적으로 '엄마'가 되는 데에는 자격도 규칙도 조건도 없다. 가임기의 여자라면 누구나 엄마가 될 수 있다. 필요한 건 누군가의 정자, 삼신할머니의 관심, 그리고 시간뿐이다. 때로는 엄마가 되고자 하는 의지도 중요하지 않다. 삼신할머니는 변덕스러워서 원치 않는 곳에 머물기도 하고 간절히 원하는 이를 외면하기도 하니까. 내 경우에는 꽤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겨우 생물학적 엄마가 되었다. 몸과 마음을 바쳐 노력한 사연도 대서사시긴 하지만 지금부터 쓰려고 하는 글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내게는 여러 가지 역할이 있었다. 부모님의 애교없는 막내딸, 언니들의 친구같은 동생, 남편의 전우애 넘치는 아내, 친구들의 언니같은 상담자, 직원들에게는 유리멘탈 원장님... 나라는 주인공을 둘러싼 드라마가 매일 씬과 씬을 오가며 상영되고 있었는데 어느날 '누군가의 엄마'라는 역할을 맡게 되면서 그 모든 씬이 일시중지되고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역할에 전격 투입되었다. 게다가 이 역할은 주인공인데도 묘하게 조연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어디서 주워들은 적 있는 엄마 흉내를 내며 열심히 연기해보지만 하면 할 수록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의 연속이다.
40주 동안 뱃속에서 조금씩 자라 세상에 뿅 하고 나타난 아이의 탄생은 너무 신기해서 '다들 정말 이게 놀랍지 않은거야??'라고 꽥 소리지르고 싶어질 정도지만, 갑자기 엄마가 된 자의 어리둥절함은 놀랄 겨를도 소리칠 기운도 없다. 눈 앞에 놓인 꼬물거리는 생명은 현실이고 그 생명은 채 회복되지도 않은 내 몸의 희생을 당연하게 요구한다. 연약한 목은 잘못 잡으면 푹 꺾일 것 같은데 다들 뭘 믿고 얘를 나한테 맡기는 거지. 덜컥 겁이 나지만 믿는 건 하나뿐이다. 다른 초보들도 다들 하는 거 보면, 나도 어떻게든 되겠지.
출산 후 첫 100일이 지났다. 꼬물꼬물 성장하는 엄마의 탄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