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위의 구도자,
마에스트로 백건우의 리허설 사진을 보고 그렸다.
작년 늦가을, 백건우의 슈만 연주회에 갔었다. 아이의 피아노에 도움이 되길 기대하는 마음이 컸는데 연주 내내 내가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말년에 가족들을 떠나 제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갔던 슈만을 이제서야 이해한다는 백건우의 인터뷰를 읽었던 터라, 그날 밤 나는 아무래도 그의 여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무엇을 느끼고 가슴에 담아두었으려나.
내 몸에 자기 몸을 꼭 붙이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엄마가 안쓰러워 보였던 걸까.
요새 그분과 그분의 부인을 두고 꽤나 시끄러웠다.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고 아픔을 함께 또는 대신 해줄 것 아니라면, 함부로 재단하지 말 것. 우리는 결코 그들이 아니고 그들도 우리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비극이든 희극이든 그들은 그들의 삶의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모두들 최선을 다해 좌절하고 실패하고 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왜 실패하느냐고 묻는다면 한 가지 생각만이 거센 반감과 함께 솟구칠 것이다.
이게 나요! 이런 나라서 그렇소! 이것도 나란 말이오! 이렇게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오!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겪고 있는 그분께 미천한 그림으로나마 응원을 드리는 바이다.
연주회 무사히 치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