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나는 2017년도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였으니, 내년이면 벌써 연수원을 수료한지도 8년이 된다. 특히나 법률사무소 봄을 열고 개업 변호사가 된 이후로 그야말로 수많은 사건들을 수임하고 그 결과를 바로 옆에서 목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이란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결코 그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분명한 진실을 늘 느낀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제대로 된) 변호사들은 결코 소송 결과에 대하여 장담하지 않는다.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생각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늘 있기 때문이다(변호사에게 소송이란 의사의 수술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부분의 경우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지만 언제나 경우의 수라는 것이 존재한다).
' 변호사님, 소송 결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세요?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
하지만 많은 의뢰인들이 소송의 결과에 대하여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사건을 진행하는 변호사로서는 의뢰인들에게 장담하는 말을 하기 어렵지만, 고년 차 변호사로서 솔직히 말하자면 종종 변론 기일에 나가서 담당 재판부가 갑자기 질문하시는 내용, 판사의 갑작스러운 석명이나 화해권고 결정, 조정 회유 등 소송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다. 오늘은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 재판부의 심증은 변론 기일에서의 '질문'에 달려있다.
재판부가 원고나 피고 어느 쪽에 더 마음이 실려있는지는 종종 변론 기일에서의 '질문'에 달려 있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가처분 심문기일에서 재판부가 ' 현재 가처분 신청이 되어있는데, 지금 본안 소송도 본원에 진행 중인 거죠? ' , 또는 ' 현재 폐업 중이신 거죠? '라는 질문들을 할 때가 있다.
대체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그 이유는 재판부에서 생각하는 결론이 있고, 이를 당사자나 대리인으로부터 확인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여기에서 변호사의 실력이 갈리는데, 경험이 부족하거나 쟁점을 잘 모르는 변호사들은 재판부에서 왜 저런 질문을 하는지 그 의미를 잘 알아채지 못하거나 또는 중요한 쟁점을 놓치고 돌아와서 ' 이번 재판은 문제가 없습니다. '라고 의뢰인에게 잘못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질문의 의도를 알면 재판부에서 어떤 부분을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니, 담당 변호사는 변론이 종결되기 전에 빠르게 그 부분에 대한 자료를 보완하여 증거를 제출하거나 또는 주장을 보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갑작스러운 화해권고 결정은 조심해야 한다.
사건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된 이후 ' 화해권고 결정 '은 상당히 강력한 재판부의 심증일 수 있다. 특히나 '항소심에서의 화해권고 결정'은 그 결과와 크게 무관하지 않을 정도이다(이런 경우에는 차라리 2월이 지나 재판부가 바뀌길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화해권고 결정이란 쉽게 말해 판사가 생각하는 조정안으로, 항소심 재판부는 1심 결과와는 전혀 다른 심증을 가지고 있지만 1심에서 이긴 당사자를 고려할 때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1심에서 원고가 전부 이겼고 피고가 억울하여 항소를 했을 때 2심 재판부에서는 피고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또는 전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바로 원고를 패하게 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 피고 쪽에 유리한 화해권고 결정을 내린다.
만약 항소심 화해권고 결정에 이의를 신청하면?
꽤 높은 확률로 1심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받을 수 있다. 재판부로서는 원고에게 한 번의 생각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이의를 신청했으니(1심에서 모두 이긴 원고로서는 자신이 항소하지도 않은 항소심에서 피고에게 양보를 하라는 화해권고 결정을 바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제부터는 항소심 재판부의 심증대로 판결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경험 많은 변호사와 충분히 숙고하여 이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재판부의 갑작스러운 조정회부 결정
나는 수년 전부터 가사조정위원, 민사조정위원으로 활동을 하는 덕분으로, 꽤 많은 조정을 직접 중재하고 있다. 변호사가 아닌 조정위원으로 활동을 하다 보면 판사님의 의중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판사님들은 어떤 경우 ' 이 사안은 꼭 조정으로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거나 또는 ' 이 사건에서 왜 조정이 안 된 거죠? '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조정에 관한 의견을 말할 때가 있다), 대부분의 재판부는 사실 판결이 아니라 조정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을 좋아하기에, 화해권고 결정과 달리 조정회부 결정만으로 재판부의 의중을 알기는 어렵다.
특히나 손해배상 사건에서는 재판부에서 첫 번째 변론 기일이 열리기도 전에 바로 조정회부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문제는 사건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된 이후의 '조정회부 결정'이다. 이런 경우 재판부는 원고든 피고 든 어느 한 쪽의 편을 든다기보다는 원고의 청구를 일부만 인용하려고 마음먹었으나 그 금액을 정하기가 부담스럽거나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경우 조정회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조정회부를 하면서 재판부가 하는 말을 집중해서 들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원고에게 ' 이번 조정에서 제대로 잘 끝내시기를 바란다. '는 듯한 어감으로 말을 건넨다면, 원고의 억울한 사정은 알겠으나 현재로서는 원고의 입증이 충분치 않으므로 원고의 뜻대로 판결이 나가기는 어려우니, 최대한 상대방과 합의를 해라.라는 강력한 뜻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재판부의 심증이 보이는 경우도 많고 이런 태도에 따라 소송 결과에 대한 짐작을 할 수 있는 징후들이 있다. 경험이 많고 실력이 좋은 변호사들은 본능적으로 이런 상황을 잘 캐치하여 의뢰인을 잘 설득하여 최고의 결과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이끌기 위해 노력한다. 많은 의뢰인들은 자신의 상황에만 사로잡혀, 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면 왜 이것이 최선의 결과인지를 쉽게 납득하지 못하지만 나의 의뢰인을 생각하는 진정으로 생각하는 변호사라면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항소의 실익이 있는지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재판부의 심증이 보편적일 수가 있고 판사의 개인적인 성향에 기인하는 경우도 흔하지는 않지만 더러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고려한다면 재판부 뿐만 아니라 변호사를 잘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낀다. 특히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재판부는 그야말로 운이라고 볼 수 있지만 변호사는 철저한 나의 선택이니 그야말로 답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