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쪽 나라로
결국, 떠나기로 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겨울에 지친 내가 먼저였는지, 행복하기 위해 온 시골에서 추위라는 복병을 만난 남편이 먼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1월 중순에 접어들었는데도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는 날씨에 우리는 결국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태국.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은 나라이기도했고, 따뜻한 나라의 대표 격인 느낌이기도 해서 큰 고민 없이 고른 곳이었다. 저렴한 물가와 풍부한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로 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 불린다는 방콕에서 며칠간 머무르다가 치앙마이에도 다녀오고, 바다에도 가기로 했다.
항공권을 끊어놓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걸 잘 알아서 일단 항공권부터 예매해놓고, 김천의 24시 맥도널드에서 태국 여행 가이드북을 펼쳤다. 눈이 어지러울 만큼 화려하고 정교한 문양의 사원을 보며 태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곳일까, 생각했다.
왕궁이며 박물관, 야시장까지 꼭 가봐야 한다는 여행지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지만 사진 속 태국은 무척이나 따뜻해 보였고, 당장은 그걸로 충분했다.
태국,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다, 마사지, 그리고 망고.
특히 망고는 가격이 비싸-아무리 저렴해도 우리나라에서는 4~5개에 만원씩은 한다- 생과일로는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태국에 가면 저렴한 가격으로 망고를 자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생망고, 망고 주스, 망고 아이스크림, 망고, 망고, 망고.......
망고는 다 좋지만 제일 궁금한 것은 역시 망고 스티키 라이스.
망고와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만은 도대체 무슨 맛일지, 아무리 상상을 해보려 해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 태국에 가서 먹어보자, 도대체 어떤 맛인지. 갑자기 떠나게 된 여행이지만 이 계획 하나만큼은 아주 확고했달까.
여행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추위는 나날이 심해져서 어느 날은 거실에 나가는 것조차 각오가 필요할 지경이었다. 몸을 움츠리고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떠나기로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들이 눈에 밟히기는 했지만, 일단은 따뜻한 곳에서 정신을 좀 추슬러야, 그래서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야,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20박 21일.
거의 한 달을 태국에서 보내기로 한 터라 떠나기 전에 이래저래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수도관이 동파되지 않도록 물을 한 방울 씩 떨어지도록 해두고, 고양이들이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의 사료를 옥상에 준비해뒀다. 메추리들이 먹을 물과 사료도 충분히 준비해주고, 강아지들은 가까운 친척집에 잠시 맡기기로.
태국 돈으로 환전은 가까운 김천의 은행에서. 지금은 이렇게나 생경한 태국의 화폐가, 20여 일 뒤 한국에 돌아올 때쯤엔 아주 익숙해져 있을 거다.
태국에서 무엇을 할지 굳이 정해두지는 않았다. 모든 것은 태국에서 정해 그때그때 움직일 계획이었다. 남편도 나도 거추장스러운 것을 싫어해서 짐은 최대한 단출하게. 꼭 필요한 것 위주로 챙기고 현지에서 필요해진 것은 거기서 사면 된다. 어디든 사람 사는 동네에는 있을 건 다 있다는 걸 이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후추와 율무를 맡기고 빈 집에 돌아오니 어쩐지 우리 집이 우리 집이 아닌 것 같은 기분. 강아지들이 없는 마당엔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은 새끼 고양이들이.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밤새 뒤척이다 날이 밝았다. 여행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