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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뜰 Nov 20. 2019

파타야 대신 코사멧!

우버, 버스, 페리, 그리고 다시 버스


숙소를 나오면 보이는, 내가 꿈꾸던 바다. 단언컨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 코사멧에서의 날들이다.


  처음 계획과 달리 우리는 파타야 대신 코사멧이라는 작은 섬에 가기로 했다.

  숙소를 잘 못 예약한 김에 아예 새로운 곳으로 가보자- 하여 내린 결정이었다. 상당히 번화한 태국의 도시, 방콕에 머물며 한적하고 조용한 해변에 대한 갈망도 컸다. 사람이 방콕만큼 많을 파타야로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바다가 있는 방콕 아닐까? 더구나 우리는 액티비티를 즐길 것도 아닌데. 휴양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우리는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코사멧을 다음 목적지로 낙점했다.


  코사무이, 코팡안 등 태국의 휴양지 이름 중에는 유독 '코'로 시작하는 지명이 많은데, '코(Koh)'는 태국어로 섬을 의미한단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기로 한 코사멧은 사멧이라는 이름의 섬인 셈.


  책과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모아보니 코사멧은 파타야보다 조금 더 멀어서 새벽부터 이동을 해야 점심쯤에는 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험난한 이동의 날을 예감하며 우리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동네 구경을 하루 더 하고 일찍 일어날 수 있도록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6시쯤 체크아웃을 했다. 우버를 이용해 호텔에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택시를 불렀다. 구글 맵에 따르면 호텔에서 터미널까지는 20여분 남짓. 방콕의 악명 높은 교통체증 이야기를 익히 들었던 터라 어젯밤에 계획했던 대로 일사불란하게 체크아웃을 하고 남편과 우버에 올랐다. 운이 좋으면 바로 터미널의 7시 버스를, 여차해도 8시 버스는 끊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서.


  호텔을 벗어난 우버가 싱싱, 달리는가 싶더니 이내 멈춰 섰다. 주변 도로를 보니 맙소사, 도로 위는 이미 오토바이와 자동차들로 가득했다. 방콕의 교통체증은 해가 채 떠오르기도 전부터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말로만 듣던 방콕의 교통체증을 몸으로 경험한 우리는 7시 버스를 빠르게 단념했다.

  차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자, 젊은 우버 기사님은 초조한 기색으로 운전대를 몇 번 두드리더니 우리에게 버스표를 예매해두었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아직 하지 않았다고,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오케이,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안도가 묻어났다.


  보통 오전 7시와 9시, 오후 4시와 8시 사이 도로가 극심하게 막힌다고 해서 그보다 조금 일찍 나왔는데 교통체증은 매한가지였다. 예매를 해두지 않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고, 어찌할 도리도 없어서 나는 밝아오는 하늘을 보며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리하여 지도상의 20분 거리를 무려 1시간 10분 걸려 터미널 역에 도착했다. 우버에서 내리기 무섭게 매표소로 달려가 코사멧을 외쳤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8시 버스표를 끊으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오늘은 8시 버스가 없는 날이란다. 새벽같이 나온 노력이 무색하게 우리는 9시 버스표를 끊고 터미널을 배회했다. 코사멧으로 가는 항구까지의 버스 표과 페리 표를 꼭 쥐고서.


  분주하게 오가는 관광객들을 보며 9시가 가까워오자 아까 봐 둔 유료 화장실에 다녀왔다. 코사멧까지는 일반적으로 3시간 내외. 그런데 이 역시 대략적인 시간일 뿐 도로 사정에 따라 시간은 천차만별로 차이가 난다고 했다. 지난밤 찾아본 커뮤니티에서 4시간이 넘게 걸려 방콕과 코사멧을 오갔다는 이야기도 있었기에 속단할 수 없었다. 더욱이 새벽부터 방콕의 무시무시한 교통체증을 경험한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복잡한 방콕 시내를 빠져나가 한적한 도로로 접어들었다. 한 시간 넘게 가다 보니 방콕 근교의, 확실히 방콕과는 다른 느낌의 마을들이 나타났다. 나지막한 건물들과 드문드문 보이는 상점들.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로 사람이 사는구나, 알 수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졸음이 몰려왔다. 잠시 눈을 붙였다 뗐지만 아직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버스는 그다지 밀리지 않아서 3시간이 좀 덜 되어 선착장에 내릴 수 있었다. 바다가 보이자 지친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선착장 근처에는 기념품 가게나 상점들이 늘어서있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어서 비수기의 해수욕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음 페리를 기다리며 남편과 바다를 보았다. 그러니까 새벽부터 이 먼 길을 달려, 여기까지 올 만한 곳이었을까- 서로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게 나을 터였다.



  따뜻하다, 바다가 멋지네- 그런 이야기를 하며 배를 타고 섬에 내렸다. 우버와 버스, 페리까지 타고 여섯 시간쯤 길 위를 떠돌았지만,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었다. 섬 안에서 숙소를 찾아가는 것. 페리에서 내리자 트럭을 개조한 미니버스 '썽태우' 기사님들이 몰려들었다. 우리가 머물 숙소의 이름을 말하고 가격을 적당히 흥정해 한 곳에 올랐다.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함께 썽태우를 탔다. 포장이 잘 되어있지 않은 거친 길을 달리다 문득 멈춰 서면 기사님이 숙소 이름을 말해주었고, 거기에 내릴 사람들이 차례로 내렸다.


  우리 부부가 선택한 숙소는 선착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는지 어느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내리고 우리만 남았다. 차가 하도 덜컹거리는 통에 엉덩이가 아팠다. 언제쯤 도착하는 걸까, 연신 밖을 기웃거리던 그때 썽태우가 샛길로 들어서는가 싶더니 멀리서 바다가 보였다. 기사님이 차를 멈추고 손짓을 했다. 마지막 손님인 우리까지 내려주고, 썽태우는 다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갔다.


  짐을 들고 내려 숙소를 찾아가자 직원이 우리가 묵을 방을 안내해주었다. 숙소는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 나무로 지어진 통나무집이었는데, 아래쪽부터 위쪽까지 나무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름의 배려를 해준 것인지 우리가 묵을 방은 꽤 위쪽에 있었다.

  짐을 들어주는 직원이 힘든 기색 없이 이 방이라며 문을 열어주는 동안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꿈꾸던 바다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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