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하루는 백지를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희게 비어있는 공간은 마주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고요하게 집중시킨다.
입춘 지나고, 봄눈이 내렸다. 소리 없이 차곡차곡 쌓이는 눈송이는 그간 말없이 흘려 보냈다 여긴 감정들, 생각들이 소복히 쌓여있음을 돌아보게 했다. 주로 일과 관련한 사회적인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 그리고 생각들이었다. 나는 한 팀에 소속되어 있다. 팀장을 포함해 현재 세 명으로 이뤄진 우리들의 소통 창구는 단톡방이다. 팀장은 이 단톡방에 회사에서 온라인으로 시행하는 사내 교육 일정 및 링크를 띄워 팀원들이 참여하도록 이끈다. 나는 요즘 눈 치료 중이라 참여를 면제받았다.
이 일을 하는 동안 병이 연거푸 재발했다. 나는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다. 면역세포가 뒤집어져 외부 바이러스와 싸우지 않고, 뼈와 눈 등 자신이 지켜야 할 내부 기관을 공격하는 병이다.
이무소득고 보리살타의 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병을 앓을 적마다 <반야심경>의 이 부분이 떠오른다. 특히, 원리전도몽상, 이 구절에 밑줄이 그어지는 듯하다. 풀이하자면,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인데, 여기서 '뒤바뀐 헛된 생각', 즉 '전도몽상'과 뒤집어진 면역세포가 딱 포개진다...
그렇다면 이렇게 뒤바뀐 생각에 휩쓸려 몸 안의 면역세포까지 뒤집어진 까닭은 무엇인가.
참고로, 인용구 전체를 풀이하면 이렇다.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그간 나는 온라인 소통에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재택근무로 진행되는 업무의 특성상 팀원은 팀장과 온라인으로 긴밀하게 소통하며 즉각적인 보고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나는 늘 혼자 삭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게 요구되고 제안되는 일들에 긍정적인 대답을 해줄 수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홀로 눈치보며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지난 늦가을 무렵엔 그래도 팀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여태 일관해온 초등 독서논술에서 범위를 넓혀 고등학교 국어까지 맡기로 하고 함께 스터디도 했었는데, 이 과정 또한 녹록지 않았다. 이미 계약금까지 낸 중국 선종 사찰 순례까지 단념하고 이어간 스터디였다. 때로는 그날의 본 수업보다 더 열중하여 제자 보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그런데 잘해봐야지, 작정하고 일찌감치 시강 준비를 한 어느 날 팀장은 늦잠을 잤고, 그 점을 부끄러워하며 사과하였는데, 마침 나보다 나이 어린 선배 팀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게 양해를 구한 뒤 통화를 마친 팀장은 다소 어수선한 표정으로 그 선배의 이름을 직함과 함께 지칭하더니 불쑥 말하였다. "그래도 ****는 일 터지기 전에 말해서 좋아." 일순 심장이 저미며 양 어깨가 움츠러들었지만 나는 모른 척 눌렀다. 이런 식으로 내 감정을 모른 척 넘겨왔다. 아니, 넘겼다고 여겼었는데 떨어져내리는 눈송이처럼 소리 없이 차곡차곡 쌓였던 모양이다. 며칠 뒤, 오른 눈이 흐려지며 가시 다발로 찌르는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다. 첫 번째 재발이었다. 치료가 시작되고, 스터디는 중단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자세한 병명을 팀장에게 말하지 않았었다.
연말, 송년회 자리에서 팀장은 때로 자신의 말이 지나쳤던 점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받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감사의 인사는 뜻밖에 삼키고 억눌렀던 울분을 솟구쳐오르게 했다. 팀장 역시 불혹에 접어든 나이였으나 연배는 나보다 아래였다. 이 사실을 특별히 염두에 둔 적은 없었다. 간혹 실수에 대한 질책이 상사로서의 꾸중을 넘어 극단적으로 퍼부어진다 여겨질 때도 있었지만 되받아친 적은 없었다. 만약 되받아쳤다면 팀장의 말대로 계약 해지하고 퇴사하는 절차를 밟았을까.
카톡으로 전달되는 팀장의 제안이나 물음은 나를 많이, 오래 고민하게 했다. 서로의 뜻에 상충되거나 그분의 의도가 잘 파악되지 않는 경우에 그랬다. 그분 입장에서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제안이고, 물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월화수목금요일 중 어느 날 어느 때 시간이 되냐고 묻는 팀장의 질문에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두렵고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 나의 대답을 차근차근 적어보련다. 두 번째 재발 후. 한 달 간의 투약 및 복용 기간을 갖고 지난 목요일 비로소 스테로이드제로 이루어진 경구약과 안약을 모두 끊었다. 담당의 말로는 인체가 평생 수용할 수 있는 스테로이드제 양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스테로이드제만 쓰기보다는 대체로 면역억제제를 병행하여 사용하는데, 내가 앓고 있는 포도막염의 경우 뿌리가 되는 질환이 강직성척추염이기 때문에 안과에서는 면역억제제를 처방하지 못한다며 다시 재발할 경우 자신으로선 더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자못 단호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래서 또 재발 시 류머티즈 내과의 협진을 받기로 동의하였다. 나는 되도록 면역억제제를 쓰는 지경까지는 안 가도록 주의하고 있다. 지난 시절 이 약을 먹고 심한 어지럼증에 시달리다 중단한 적이 있다. 3개월은 내게 대단히 중요한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무엇보다 건강을 충분히 회복하고 싶다.
1월 중순, 병의 재발과 거의 동시에 심해진 감기 때문에 도리어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밖으로 나갔다. 무엇보다 맨눈으로 닿는 세상에 두 발로 걸어가 보고 싶었다. 심지어 글도 걸으면서, 혹은 지하철로 이동하며 썼다. 업무 외에 책상에 앉아 쓰는 일은 치료를 시작한 이후 오늘이 처음이다. 나는 부러 컴퓨터 화면으로부터 나를 떼어놓기 위한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바로 인근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인데, 차곡차곡 쌓인 책들을 서가마다 분류해 책등에 붙은 청구기호대로 제자리에 꽂는 작업은 순수하고 평화로운 노동이었다. 책들은 나의 침묵을 존중했다. 나는 책들을 가만히 상대하는 일이 행복했다. 서가에 꽂힌 빼곡한 책들 사이에서 책등 아래 붙은 작은 청구기호를 눈으로 살피며 반납된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은, 비록 앉았다 일어날 적에 가끔 끙, 하는 신음이 새어나오기도 하지만, 안심되었다. 도서관을 두리번거리는 어린 친구들과 그들의 젊은 엄마 혹은 아빠, 그리고 어른 친구들에게 원하는 책을 찾아주는 일도 즐거웠다. 또, 네 시 무렵 상호대차된 책들이 도착하는 시간 특유의 술렁임도 설레었다. 책들이 수북한 박스들을 도서관 카운터로 옮겨 층층이 쌓아놓는 아저씨에게 "이거 좀 내려주시면 안 돼요?" 묻는 도서관 여직원의 부탁 소리를 듣는 것도, "이 정도는 운동 삼아 직접 내리지." 웃으며 대꾸하고는 호탕하게 내려주시는 아저씨의 투박한 친절을 목격하는 것도 정겨웠다. 1층 자료실 문밖 도서관 입구를 마주보는 카운터에 나란히 앉은 도서관 여직원들의 웃음 만발한 얼굴과 담소 나누는 소리, 혹은 두통 때문인지 돌아 앉아 잠시 눈 감고 있는 한 선생님의 모습, 대체로 깔끔하고 맵시 있게 서로 색조까지 맞춰 입은 그녀들의 옷차림까지, 애틋하고 정다웠다. 카운터 제일 안쪽 자리에 항상 반듯하게 앉아 계신 아버지뻘 돼보이는 남자 선생님도 내가 도착해 인사 드릴 적마다 한결같이 푸근한 미소로 맞아주셨다. 이렇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웃으며 인사하고 말보다는 손발을 움직여 서로 돕는 일이 좋았다. 새로 들어온 신간 잡지에 도서관 전용 보안 카드를 붙인 다음 잡지 측면에 도서관 이름이 파인 도장을 찍고, 서류에 기재된 잡지명을 찾아 일일이 대조해 출간 연월일에 맞게 표시하는 작업도 새롭고 신선했다. 불과 얼마 전, 연휴가 시작되기 전주에는 포근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젊은 도서관 여직원으로부터 정성 가득한 선물까지 받았다. 이 도서관에 온 지 오늘로 1년이 된다고 소개한 그녀는 보자마자 함박웃음이 절로 피어나는 선물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래 같이 일하고 싶어서요. 이건 엄마가 직접 실로 뜨신 거예요. 저는 실만 보탰고요."
"이거, 수세미예요?!"
"네. 맞아요."
투명 비닐 봉지 안에 지상의 별같이 반짝반짝하는 노란 눈송이와 하늘색 딸기 모양 수세미가 살포시 맞잡은 두 손처럼 포개져 있었다. 나는 기뻐서 "감사합니다!" 소리 치며 받아들었다. 마침 집에서 쓰던 수세미가 헤져 이 환한 눈송이 수세미로 바꾸었는데, 그 후 그릇 닦는 일이 사뭇 흥겨워졌다. 더욱이 기존의 것보다 두께가 얇고, 뜨개 실이 너무 촘촘하지 않게 적당히 간격을 두고 엮여 그릇도 더 부드럽게 잘 닦였다.
도서관 직원들은 자기들 일을 도와준다고 날마다 내게 감사 인사를 건네는데, 나는 외려 내가 봉사를 받는 기분이었다. 이 공간 안에, 이 풍경 안에 함께, 그리고 조용히 있는 것만으로 내 마음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창에 비쳐드는 오후 네 시 무렵의 햇살같이 풍요로웠다. 도서관 풍경 뿐만 아니라 도서관을 오가는 두 시와 여섯 시의 길과 하늘빛도 다정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월화수목, 그 길을 왕복해 걸으며, 또 탁 트여 파란 하늘이나, 그 하늘의 뭉실뭉실한 구름이며 스치듯 붓질한 새털 구름 자국, 그리고 소년 소녀의 홍조인 양 섬섬히 발그레한 저녁 하늘을 보며, 점점 회복되어갔다.
이 즈음, 또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이 전해왔다. 시간이 제법 흘러 그만 잊어버리고 있던 일에 대한 것이었다. 지난 9월 신청한 예술활동증명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홈페이지를 열어 확인서를 뽑았다. 이 서류가 증명해주는 바에 따르면 내겐 이제 새로운 정체성이 생겼다. 바로 문학 부문 신진예술인. 덕분에 앞으로 있을 여러 예술 관련한 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유효기간은 2년이었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극 활용할 것이다.
그 시작으로 일주일에 하루는 백지를 마주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물 들어왔을 때 배 띄우라고, 지금 시작해야 한다. 차곡차곡, 금요일마다 글을 쓰겠다.
이 공간을 빌어 팀장의 물음에 대답을 한다는 것이, 그간 내 안에 쌓인 소리들을 정리하고 다짐하는 일로 전환되었다. 결국 팀장의 질문을 통해 깊숙이 숨어 있던 나 자신의 질문,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라는 근본에 닿은 것 아닌가.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을 충실히 해내고자 노력한 것 아닌가.
나는 올 한 해 좀 더 본질적인 삶을 살고 싶다. 나의 스승께서 보내주신 연하장엔 중국 선종 역사에서 드물게 재가불자로서 깨친 방거사가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승들에게 전한 "불낙별처不落別處"가 한 획 한 획, 냇가의 버들잎처럼 뻗어 있었다. 특히, 맨 앞의 불不에서 첫 번째 획인 한 일 자는 양끝이 은근한 곡선으로 살짝 들린 채 가로로 길게 뻗어 마치 기와지붕 용마루처럼 나머지 세 한자를 덮고 있었다. 연하장의 바탕은 하얬다. 차곡차곡 내린 봄눈으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나는 지붕처럼 내리덮은 불, 낙별처를 읽으며 하얀 지붕 아래 서 있는 듯했다.
눈송이가 딴곳으로 떨어지지 않는구나.
한글로 다시 새겨본 방거사의 말이다.
자신이 마음 닦은 공덕은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그 맥락은 사뭇 다르지만, 내가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느낀 감정들, 생각들도 차곡차곡 나에게로 돌아왔다. 상사의 질문에 대한 고민도 차근차근 내 물음에 답하는 일로 돌아왔다. 거꾸로 향한 면역세포들의 방향이 바로잡히듯. 한 달 전쯤 병원 대기 의자에 앉아 있을 때 나는 맞은편 벽 위에 걸린 티브이 화면에서 유퀴즈에 나온 여배우 공효진의 말을 듣고 감탄한 적이 있다. 그녀는 시청률이 높았던 한 드라마에서 주인공 동백이를 연기할 당시 악역을 담당한 후배 여배우들의 상담을 해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때 후배들은 한목소리로 너무 미움받을까 걱정되어 어떻게 연기해야될지 모르겠다고 물어왔었는데, 그때 그녀는 그녀들을 위로하며 이렇게 대답했단다. "너무 나빠보이지 않게 내가 잘할게."
그녀가 왜 그토록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공블리'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상대 배우가 너무 미움받지 않도록 괴롭힘을 너무 괴롭지 않게 받아칠 줄도 아는 유연하고 그릇이 큰 배우였다. 그녀 자신이 그토록 인간적이고 다정했기에 주인공 동백이 역시 그토록 사랑스럽게 매력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나는 그녀에게서 배웠다. 나를 둘러싼 사회적인 관계를 바로보는 법. 그 혹은 그녀가 누구든 역할과 상관없이 미움보단 진심을, 무관심보단 관심을 원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고민하고 애쓰는 한 인간이다. 나와 관계하는 대상이 때로 아무리 대하기 어렵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맡은 사회적인 역할을 그 사람 자체로 오인하지 말자. 나의 상사는 자신의 역할을 다할 뿐이다. 그러니 그 역할이 너무 악역처럼 보이지 않게 적절히 처신하는 법을 익혀나가자.
입춘을 보름 남짓 남긴 일요일, 강의 중에 스승께서는 다정多情이 무엇이냐 물으셨다. 순간 나는 고려 후기 문인 이조년의 시조에 나오는 '다정도 병인 양 하여..'란 구절이 사무치게 떠올라 소리 내어 '병', 하고 말았는데, 돌아온 스승의 응답은 뜻밖이었다. '다정도 불심佛心이다.'
다정도 전환하면 불심이라는 말씀이셨다. 다정이 지나쳐 다정도 병인 양 하게 된 나는 이 말에 깜짝 놀라 주의가 환기되었고, 동시에 의아했다. 그러다 한 여배우가 악역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에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 다정, 부처님 마음과 다르지 않은 다정을 보게 됐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랬던가. 혹은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했던가. 하지만 까마귀와 백로는 잠시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았을 뿐이라고 한번 돌려 생각해보면 어떨까. 오늘 상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려다 그간 소리도 없이 쌓여온 숱한 다정들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봄눈 녹는 소리가 들려오고, 방생된 새들이 두 날개를 쫙 펴고 하늘을 날아가는 광경이 그려진다.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궁극적으로 나다. 그래서 쓴다.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고민들을 차근차근 굴려나가며.
금요일은, 쌓인 눈더미 굴려 달바퀴 만드는 시간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