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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늘보 Dec 13. 2023

산후조리원이 천국이었던 이유

출산을 한 많은 선배맘들이 말했다. 조리원은 천국이라고.


막상 조리원에 있을 때는 그 말을 실감하지 못한다. 조리원이라는 곳은 출산 후 회복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핵가족화된 현대 사회에서 유일하게 육아와 아이 돌봄에 대한 노하우를 익힐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산모가 잘 먹고 잘 자는 이유는 모두 모유를 생산해 내기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거고, 아기를 안는 것부터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를 가는 모든 과정을 배워서 나오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또한, 그 시간 동안 산모들은 아이 로션은 뭐가 좋은지, 젖병 소독기는 왜 필요한지, 어떤 기저귀를 써야 하는지 서치하고 결정하느라 바쁘다. 이 모든 걸 배우는 곳이 산후조리원이다.


조리원을 예약하면 보통 산전마사지 2회, 산후마사지 2회가 서비스 개념으로 이용 금액에 포함되어 있다. 나는 산전마사지를 받으면서 실장님께 정말 유용한 팁을 얻었다. 바로 조리원을 잘 이용하라는 팁이었는데, 산모들이 조리원이 그냥 쉬고 회복하는 곳이라 생각하고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조리원을 퇴소한 후에 고생을 많이 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최대한 아이 돌보는 법을 익혀야지 퇴소 후에 집으로 돌아가 남편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조리원에 있을 때 기저귀 가는 법, 분유 타는 법, 아이를 먹이고 트림 시키고 재우는 법을 대충이라도 익히지 못한다면 엄마들은 직접 해보고 연습을 하기 위해서 남편이 아닌 본인이 나서게 되고, 그렇게 된다면 남편은 더더욱 못하게 되고, 육아의 첫 발을 "아이 돌보는 건 엄마가 더 잘한다"는 인식을 갖고 시작하게 된다는 거였다.


내가 그동안 들어온 조리원 생활에 대한 인식과는 전혀 다른 조언이었는데, 나의 경우엔 이 조언이 정말 유용했다. 그래서 조리원에 있는 동안 하루 6시간씩 모자동실을 하고, 아이 대소변을 갈아야 하면 언제든지 콜 하라는 신생아실 선생님의 친절한 배려가 있었음에도 내 방에서 내가 직접 하려고 고군분투했다. 하룻밤은 직접 밤새 아이와 잠을 자기도 할 정도로 나는 그야말로 열혈맘이었다. 조리원을 퇴소할 때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여태껏 일하면서 이런 산모는 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


아무튼 이렇게 조리원에 있는 동안 나는 회복보다는 산모에서 육아맘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하우와 지식을 익히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니 그곳이 내게는 그리 썩 편하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제와 생각해 보면 조리원은 천국이었다. 


왜?


남편이 없었기 때문에.... 


마누라와 애기도 없는 조리원 2주 동안 출산 휴가를 쓰며 인생 마지막 휴가 기간이라 생각했는지 탱자탱자 놀면서 유일하게 한 생산적인 일은 내가 주문한 육아용품 택배 박스 뜯는 거 정도? 심심하면 애기 사진 보내달라, 모자동실 하게 되면 영상통화 하자는 이야기만 하다가 조리원을 퇴소하는 날 만난 남편을 보니 기함이 나올 정도였다. 전투준비 완료로 비장한 나와 달리 출산 시 병원에서 만나고 처음 만나는 피붙이를 볼 생각에 마냥 들떠있는 모습이라니.. 이미 머릿속에 조리원 신생아실에서 파악한 분유 제조 동선에 따라 주방의 분유존과 젖병소독기 등 위치를 세팅해 뒀는데 남편은 여기저기 손 닿는 대로 배치해 놓았을 뿐 별다른 생각도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건 마치 한껏 들뜬 모습으로 자신의 생일파티에 초대된 마누라와 아이를 반기는 모습인 거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아이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은 엄마가 키우는 거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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