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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늘보 Jan 25. 2024

부부 관계> 부모 자녀 관계인 이유

왜 부부가 부모가 되면 갈등이 폭발하게 되는 걸까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을 만났다.


“진짜 애 때문에 산다는 말 나는 안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왜 옛날에 우리 엄마가 너네 때문에 참고 살았다는 말을 했는지 알 거 같다니까?!”


“그니까..

근데 우리 다 애기가 없었다면 사실 남편이랑 이 정도로 싸우 일도 없지 않아?"


정말 그랬다. 애들 때문에 부부 갈등이 심해도 차마 이혼은 하지 못하고 사는데, 사실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낳기 전엔 이 정도로 부부 갈등이 심하지도 않았다.




사이가 좋은 부부들도 부모가 되면 갈등이 폭발한다.


아이가 없던 신혼 때야 부부싸움을 해도 숙고하고 대화할 시간이 충분했지만, 아이가 없으니 작은 갈등도 미처 풀 시간 없이 쌓이다 보니 서로에 대한 감정까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잠이 부족하고 밥도 제대로 먹기가 힘드니 몸이 피곤해서 싸우고, 아이가 조금씩 크면서부터는 아이 문제로 갈등이 시작된다. 가장 먼저는 훈육과 생활 습관에서부터 의견 차이를 보이는 부모들이 많다.


우리 부부도 그랬다. 나는 육아에 대한 여러 공부를 했기 때문에 훈육에도 시기와 방법이 있다는 주의고, 남편은 (내 기준에서는) 감정적으로 훈육을 하는 편이었다. 내가 보았을 땐 훈육할 일이 아닌 일들에 대해 남편은 예의가 없다, 행동이 거칠다는 이유로 혼을 내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옆에서 핀잔을 줬다.


“뭐 그런 거로 애를 혼내고 그래?”,

“애한테 ‘이런 게 다 있어’ 라니 무슨 그런 표현을 써?”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를 훈육해야 했던 문제 상황에 대한 인식은 뒤로 가고 남편은 아이 앞에서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화가 나 최종적으론 훈육이 아닌 부부 싸움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 때문에 싸우게 된다고 말하는 상황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부 갈등 때문에 더 복잡해지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거다.




아이를 내세워서 부부 갈등이 생기는 이유가 뭘까?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다.

막 결혼을 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나와 남편, 둘 사이의 문제 보단 각자의 가족과 얽힌 문제로 인한 다툼이 많았다. 결혼 전에는 가족의 일원이기만 했던 1인이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가족의 대표가 되는 셈인데, 이건 회사로 치면 일반 사원에서 갑자기 CEO가 돼버린 거다. 제대로 된 경영 수업이나 트레이닝이 없이 하루아침에 경영 일선에 뛰어들게 되었으니 회사가, 아니 집안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부모-자식의 관계가 중요하게 부각되는데, 요즘 회자되는 ‘수저론’ 또한 이런 맥락이다. 부모가 자식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라고 인식하는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재력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수저론을 초등학생들 까지도 언급하는 시대니 부모가 된 사람이 짊어지는 부담은 남녀를 떠나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아무리 아이를 낳는 것을 오래 숙고하고 결정했다 하더라도 서로가 바라는 부모의 상은 다를 수 있다. 나와 남편도 부모가 되고 싶은 꿈이 컸던 사람들이고, 연애 때부터 어떤 가정, 어떤 부모가 되면 좋을지 시시콜콜한 대화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많은 생각을 나누고 인생의 여러 면을 공유하는 부부라 하더라도 자신의 내면에 있는 깊은 욕망과 드러내지 않은 상처, 불안은 상대방이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남편은 남편대로 ‘엄마라면 이렇게 해야 돼’가 있을 거고, 또 아내는 아내대로 ‘아빠라면 이런 역할을 마땅히 해야지’라고 바라는 그림이 있다는 거다.


내가 바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바빠 상대가 어떤 역할을 원하는 지는 들여다 볼 틈이 없다.



문제는 이 두 가지의 충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 안에서도 ‘내가 되고 싶은 엄마의 모습’과 ‘실제로 내가 수행하고 있는 엄마의 역할’에서 오는 내적갈등도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부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이런 내밀한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내 입장을 설명하고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무엇보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어른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첫째가 3살 무렵이었을 때 나는 연년생 둘째까지 있어 육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때다. 그럴 때는 작은 일에도 아이에게 진심으로 짜증이 나고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격해진 이후에 늘 자괴감이 밀려온다. ‘내가 고작 3살짜리 애한테 이렇게 화를 내다니’ 하는 자책으로 매일이 괴로웠다. 3살 아이에게도 이런데 성인 어른인 배우자에겐 오죽하랴.



우리는 가족 안으로 들어오면서 어른으로서의 나를 잊는 경우가 많다. 


10대 시절 신발을 벗고 방문을 닫는 모습만 봐도 부모님들이 얘가 오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전두엽이 미성숙했던 그때처럼 가족 안에 들어오면 사회에서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공고히 다져놓은 이성과 교양의 태도가 무너져 내릴 때가 많다. 그래서 가끔은 남편이 정말 야속하게 느껴져서 하고 싶은 말을 와다다다 쏟아낸 후 만약 누가 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도 내가 내 남편한테 이런 태도로 말을 할까 싶어서 스스로가 한심해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며 남편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생각한다.

사실 아이는 핑계고 평소에 마음에 안 들던 남편 모습을 떠올리며 이번 기회에 한소리 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대부분은 그랬다.


풀리지 않는 내 감정 때문에 아이를 핑계 삼아

아이 앞에서 서로 대립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 거다.


아무리 한국 사회가 부모들에게 부여하는 부담이 크고, 내 유년시절에 받은 상처가 어쨌던지 간에 부모가 된 순간 우리는 성숙한 어른으로 행동을 해야 한다. 그건 어느 사회더라도, 어린 시절 무슨 일이 있었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부모가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한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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