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건 행복이 아니다 | 전직 상담사의 인생 일침

우리가 잃어버린 '만족'이라는 감각에 대하여

by morasaf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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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심리상담가로 은퇴 후 동남아 한 국가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Finnian(가명). 우리는 가벼운 안부를 나눈 후,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 한 권을 매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제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행복'.


흥미로운 점은 그가 '행복 추구권'을 헌법에 가장 먼저 명시한 나라, 미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조국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덤덤하게 시인했다.

"핀란드나 덴마크가 늘 1, 2위를 다투어요. 미국이요? 겨우 20위 언저리지요."


그가 바라본 미국의 이면에는 화려한 성공 신화 대신, 시스템의 부재가 만든 짙은 불안이 드리워져 있었다. 우리는 왜 불행한가. 그리고 진짜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북유럽의 행복은 시스템이 만든 안전지대


그의 말에 의하면, 미국인은 행복하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안하다. 전직 심리 상담사였던 그는 북유럽 국가들이 행복지수 상위를 차지하는 이유가 단순히 그들의 기질이 긍정적이어서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핵심은 '사회적 안전망(Social Safety Net)'이라는 거대하고 촘촘한 그물에 있다. 아프면 쉴 수 있고, 일자리를 잃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며, 돈 걱정 없이 오직 배움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나라. 그런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은 '안심'하고 산다.


반면, 그가 묘사한 미국은 실패가 곧 생존의 위협이 되는 정글이었다. 이윤을 위해 운영되는 교도소, 상위 1%가 부의 절반을 독점하는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 개인의 불행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구멍 난 그물 위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떨어지면 죽는다는 공포를 안고 우리는 과연 행복을 논할 수 있을까.



행복을 좇지 말고, 만족을 곁에 둘 것


시스템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개인은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그는 '행복(Happiness)'과 '만족(Contentment)'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종종 행복을 지상 과제로 삼고 그것을 쫓는다. 하지만 행복은 본질적으로 찰나의 것이다. 잡으려 하면 흩어지는 안개와 같다. 누구도 24시간, 365일 행복할 수는 없다.


"우울하다고 찾아오는 내담자들에게 나는 묻곤 했습니다. 지금 당신 삶에서 감사한 것 세 가지만 말해보라고요."


그가 제안한 대안은 '만족'이었다. 만족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다. 그것은 훈련을 통해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과 같다. 북유럽 사람들이 행복한 진짜 이유는 거창한 쾌락 때문이 아니라,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오는 평온함, 즉 만족감 때문이다.



기대가 없으면 고통도 없다


그는 현재 머물고 있는 나라에서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약 30년 전 그가 처음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가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삶에 대해 거창한 기대를 하지 않아요. 직업에도, 사람에게도. 기대가 없으니 삶이 자신을 속였다며 억울해하지도 않지요. 그들은 '피해자'가 되지 않습니다."


반면 풍요로운 미국인들은 모든 것을 기대한다. 완벽한 직장, 영원한 건강, 타인의 인정까지. 그는 이 '기대(Expectation)'야말로 고통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기대가 높을수록 현실과의 괴리는 커지고, 그 틈새로 불행이 싹튼다.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법


우리가 현재를 저당 잡히면서까지 미래를 걱정하는 이유는, 언젠가는 보상받으리라는 믿음, 즉 '세상은 정의로울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정의(Justice) 같은 건 없어요.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니까요."


그는 질문을 던졌다. 만약 20대 청년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청춘을 다 바친 뒤, 중년이 되어서야 무죄가 밝혀진다면 그 잃어버린 시간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어떤 보상으로도 정의는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십 년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한 남자가 "나를 가둔 이들을 모두 용서한다"라고 말한 기사가 있었다. 그 이야기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들이 용서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억울한 남자가 용서를 택한 건 가해자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분노와 억울함이라는 또 다른 감옥에 갇혀 남은 생마저 갉아먹히지 않기 위한, 오직 자신을 위한 생존의 선택이었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정의를 갈구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정작 눈앞의 삶을 놓치곤 한다고. 불교의 '고집멸도'가 말하듯, 고통의 원인은 집착과 기대에 있다. 진정한 만족(Contentment)이란,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내 몫의 평온을 지키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고통의 바다에서 걷는 법


삶은 기본적으로 고통이다. 그러나 그 고통의 바다 위에도 가끔은 햇살이 비친다. 대화 말미에 그는 11개월 된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떼던 순간을 이야기하며 미소 지었다.

"그 아이가 열 걸음을 떼고 지은 표정을 봤어야 해요. 그게 진짜 행복이지요."


그는 말한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삶의 여정 중에 우연히 마주치는 선물 같은 순간들이다. 우리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온전히 느껴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오늘 내게 주어진 작은 것들에 만족하는 것이다. 결국 거친 파도 속에서도 우리가 중심을 잃지 않게 해주는 건 단단한 만족감이다.



만족 (Contentment)

욕망이 충족되어 부족함이 없는 상태이자, 자신의 현재 처지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지속적인 마음의 평안이다. 강렬하지만 일시적인 쾌락인 행복(Happiness)과 달리, 외부 환경의 변화나 자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깊은 안정감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끝없는 갈망을 절제하고, 이미 주어진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태도를 가질 때 비로소 형성된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만족감은 불안과 스트레스를 낮추고 삶의 질을 본질적으로 높여주는 정신적 성숙의 중요한 지표이다.


고집멸도 (Four Noble Truths)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설법한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로, 인간 삶의 진리를 네 가지 단계로 체계화한 것이다. 첫째와 둘째인 '고(苦)'와 '집(集)'은 현실의 삶이 본질적으로 괴로움이며, 그 원인은 끊임없는 집착과 갈망에 있다는 현상적 진단을 의미한다. 셋째와 넷째인 '멸(滅)'과 '도(道)'는 이러한 집착을 끊어내어 괴로움이 소멸된 열반의 상태와, 그에 이르기 위한 여덟 가지 올바른 수행 방법인 팔정도(Eightfold Path)를 제시한다. 즉, 인간의 고통은 외부가 아닌 내부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됨을 자각하고, 수행을 통해 해탈에 이를 수 있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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