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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능의 욕망 Jun 18. 2023

파르테노페의 도시

나폴리 1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는 불타는 트로이를 뒤로하고서 귀향길에 오른다. 10년에 걸친 이 여정이 바로 서양 고전 오디세이의 줄거리다. 연꽃 먹는 섬(튀니지 연안), 키클롭스의 섬(시칠리아) 등을 거쳐 이탈리아 연안까지 도착한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해안, 아말피를 마주하게 된다. 


바닷사람들은 아말피를 죽음의 만이라 불렀다. 모두 반인반조(어), 사이렌의 존재 때문이었다. 이곳을 지나치는 모든 배를 향해 그녀들은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고, 매혹당한 선원들은 모두 음악이 들려오는 쪽으로 기수를 틀었다. 불나방처럼 미성을 쫓아 돌진하던 그들은 모조리 날카로운 암초에 충돌했다. 사이렌이 원한 것은 선원들의 목숨이었다. 선함들은 모조리 파도 속 물거품이 되었다. 이제껏 이곳을 무사히 지나간 배는 없었다. 


희대의 책략 트로이의 목마를 고안해 낸 지략가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무사히 귀환하기 위해 다시 한번 묘안을 떠올려야만 했다. 다행히 그에게는 유능한 조언자, 키르케가 있었다. 그녀는 모든 선원들의 귀를 왁스로 틀어막아야 하며, 동시에 또 하나의 충고, “만약 네가 사이렌의 노래를 듣길 원한다면, 귀를 막지 않는 대신 선원들에게 네 몸을 돗기둥에 단단히 동여매게 하라”를 남겼다. 오디세우스는 두 가지 조언을 그대로 실행했다. 가장 그리스적인 영웅이었던(거짓말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하고, 바람둥이에다 살인자였고, 그렇기에 위대했던) 그에게 있어서 목숨을 잃지 않으면서 그녀들의 매혹을 직접 경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오디세우스의 선함은 아말피 해안으로 진입한다. 

오디세우스와 사이렌(1891)  존 윌리엄 와터하우스


어김없이 죽음의 노래가 시작됐다. 그 선율이 오디세우스의 배를 휘감았다. 몸은 묶여 있었지만 귀는 열려 있던 오디세우스가 이성을 잃고서 그녀들에게 가야만 한다고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의 눈 속에서 사이렌들은 이제껏 알던 그 어떤 여인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로 변신했고, “영웅 오디세우스여, 내게 오라”라며 그를 부르는 목소리는 치명적으로 달콤했다. 몸을 뒤틀며 탈출하려 애를 쓴 탓에 그를 옭아맨 밧줄이 그의 몸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사이렌의 노래는 그 위력을 증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귀를 왁스로 틀어막은 선원들은 사이렌도, 오디세우스의 발악도 듣지 못한 채 노를 젓는 일에만 집중했다. 오디세우스와 달리 그들은 배를 집어삼키려 하는 사이렌들의 흉악한 실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덕분에 배는 무사히 위험을 비껴갔다. 오디세우스와 선원들은 아말피를 무사히 가로지른 최초의 인간이 됐다. 오디세우스는 또 한 번 난관을 극복해 낸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오만함은 사이렌들에게 모욕을 안겨주었다. 처음으로 경험한 자존심의 상처를 견디지 못한 사이렌의 우두머리 파르테노페는 바닷속으로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며칠 후 나폴리 해안의 섬 메가리데에 그녀의 시체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그녀를 기리기 위해 그곳에 그들의 도시를 세웠다. 이 도시가 바로 나폴리, 파르테노페의 도시다. 오늘날까지 나폴리가 파르테노페라 불리는 이유다. 


<파르테노페의 도시>


이처럼 나폴리의 역사는 생명의 위협을 동반하는 치명적인 매혹의 전설과 함께 시작된다. 3000년이 지난 오늘도 나폴리는 여행객의 존재를 넘보는 관능을 발산한다. 나폴리 거리 곳곳에서는 Napoli è passione(나폴리는 열정이다)라는 그라피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진정성이 사실성을 능가하는 정서를 일러 열정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열정을 거짓말이라고 쉽게 타매하지는 않는다"라는 김영민의 고찰처럼 사이렌의 죽음으로부터 근 3000년이 지난 오늘, 도시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나폴리는 나폴레탄들에게 매혹, 관능,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지상낙원으로서 존재한다. 


나폴리를 대한 글을 서술하는 일의 어려움은 자명하다. 내가 그것을 욕심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폴리의 찬란한 역사가 무색하도록  2023년, 나폴리는 여전히 우리 지적 호기심으로부터 소외돼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21세기까지, 영미권 학자들과 관광객들은 나폴리를 외면했고(근 2010년대에 와서야 나폴리에 대한 관심은 새로이 부활을 맞이하게 된다), 덕분에 동양인들에게도 나폴리는 ‘가지 말라는 곳’에 굳이 가려는 청개구리 성향의 여행객, 또는 소렌토, 포지타노, 카프리, 폼페이를 찾기 위해서 거치는 항구, 또는 나폴레탄 피자를 향한 탐욕에 휩싸여서만 찾아오는 도시로 남아있다. 내가 이곳을 찾게 된 이유 역시 ‘나폴리를 보겠다’는 욕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내가 맞닥뜨린 아름다움은 내 삶의 이정표를 뒤흔들어 놓았다. 


<마그나 그레키아>



나폴리에 최초로 도시를 건설한 이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이었다. 기원전 8세기 무렵 그리스의 도시국가(폴리스)들은 지속되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낮은 농업 생산력으로 인한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었다. 마치 다 큰 수컷 새끼들을 무리에서부터 쫓아내는 수사자처럼 그리스인들은 도시의 젊은이들을 한 데 모아 배에 태우고서는 새로운 식민지를 찾아 떠날 것을 명령했다. 다시 돌아온다면 그들은 고향에서 동족들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마그나 그레키아는 그리스의 젊은 사자들이 이탈리아 남부에 세운 그들의 도시들을 가리킨다. 약 2800년 전 이들은 캄파니아와 시칠리아를 비롯한 남부 이탈리아에 그들의 도시문화(폴리스)를 전파했다. 페스툼,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등에 위치한 그리스 신전(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보전이 잘 된 그리스 신전들은 모두 남부 이탈리아, 마그나 그레키아의 유적에 자리하고 있다)들을 마주하는 일은 그리스 문명이 증명한 인간의 강인함을 새삼 상기시킨다. 그들은 새롭게 찾은 삶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원주민들과 전투를 벌였고, 그들의 도시를 빼앗기고, 다시 수복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 중에도 신을 향해 아름다운 건축물을 봉납하고자 한(그렇기에 더욱 필사적이었던) 그들의 긍지는 가히 감동적이다, 



페스툼에 위치한 헤라의 신전. 세계에서 가장 온전하게 보존된 그리스식 신전들은 남부 이탈리아에 위치한다. 아그리젠토와 페스툼의 유적들이 대표적이다. 


기원전 8세기 무렵 이탈리아 반도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그리스인들은 가장 먼저 나폴리 연안 이스키아 섬에 정착했다. 이후 차츰 내륙으로 상륙한 이들은 8세기 후반 나폴리 서쪽 쿠마에 이탈리아 최초의 도시 국가를 건설한다(이 도시는 사이렌의 이름을 따서 파르테노페라 불렸다), 거의 모든 마그나 그레키아의 주요 도시들이 그러했듯 그들은 무역을 전개하기 위한 항구를 확보하고서, 바다가 보이는 지세 높은 고지에 성벽을 쌓고서 공성전을 준비했다..  반도의 원주민 세력과 마그나 그레키아 사이의 세력 다툼은 끊이지 않았고, 따라서 그리스인들은 성벽 내부에 그들의 도시를 건설했다. 쿠마에의 경우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처럼 나폴리 역사의 시작이 바다를 건너온 정복자였다는 사실은 추후 이 도시의 역사를 미리 암시한다. 지중해의 항구도시 나폴리의 지리적 조건은 나폴리의 최대 이점이자 최대 약점이었다. 그들 역사 전체를 통틀어 지중해를 지배하고자 하는 세력은 늘 나폴리를 탐냈고, 이 항구는 외적의 침략 역시 두 팔 벌려 안아버리곤 했다. (물론 새로운 군주로서 등장한 침략자들이 결국 나폴리에 매료돼 ‘나폴레탄’으로서 생을 마감하곤 했지만)


기원전 5세기 무렵 주변의 위협 (특히 에트루리아인들)을 물리친 쿠마에인들은 내륙으로 진입하여 해변가에 새로운 도시 ‘네아폴리스’(이에 반해 구도시를 뜻하는 '팔레폴리스'는 쿠마를 가리킨다)를 건설한다. 바로 나폴리의 전신이었다. 네아폴리스는 곧 지중해 무역에서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  

쿠마에 무녀의 동굴.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 쿠마에의 무녀는 아이네이아스를 지하 세계로 인도한다. 그녀는 미래를 보는 예언자이기도 하다. 


Naples Declared의 작가 벤자민 테일러는 나폴리의 혼잡함을 헐뜯는 미국인들을 향해 샌프란시스코와 LA의 2500년 후 모습을 상상해 보라라고 일침한다. 이탈리아 최초의 도시 나폴리는 영원의 도시 로마보다 더 깊은 뿌리를 가진 도시다. 이 사실은 훗날 로마의 등장 이후 나폴리의 역사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기원전 753년, 이탈리아 반도 중심의 7개 언덕에서 탄생한 라틴족의 나라 로마가 파르테노페의 해협으로 그 손아귀를 뻗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세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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