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계 에세이
오랜만에 만난 A의 근황은 1년 전에 만나던 연인과 헤어졌다는 거였다. 만날 당시에도 그에 대한 얘기를 내게 종종 했었다. 처음 만남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 불같이 사랑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 반 년 정도 지나니 감정은 식었고, 서로에게 맞지 않는 부분도 발견됐다고. 그래도 정으로 관계를 이어갔는데, 이렇게 헤어진 것이다. A는 당시의 연애를 회고하며 내게 말했다.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데, 나는 멍청하게 괜히 희망을 품어가지고. 하여튼 그 말이 진짜 맞는 것 같아요.”
잠자코 들으며 추임새를 넣어주긴 했지만, 나는 생각이 전혀 달랐다. 기본적으로 나는 그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바뀔 수 없다는 것. 좋아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이 절망적인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인간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가 있다. 당장 내가 그렇게 살고자 노력해온 사람이다.
이건 희망의 문제이기도 하다. 흔히 세 살 버릇은 여든까지 간다고 하는데, 바뀌지 않을 거라면 우리의 삶은 자기 주도성도 없는 고작 세 살에 다 결정되는 거란 말인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바뀐다고 믿고 그렇게 노력하다면, 바뀌지 않는 것은 세상 아무 것도 없다.
사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는 말의 진짜 뜻은 따로 있다. 잘못된 것은 이 말 자체가 아니라, 이 말을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의 엇나간 해석이다. A라는 나의 지인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써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언젠가 또 다른 지인 B는 인생의 중차대한 결정을 앞두고 내게 찾아온 적이 있다. 결혼 문제였는데, 그에겐 오래 만난 연인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려하니 고민이 된다고 했다. 다른 모든 점은 참 좋고 좋은 사람임은 분명한데, 가치관의 한 측면에 있어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다소 고지식한 면이 있는 것. 지금까지의 태도를 보면 점점 바뀔 것 같기는 한데, 그것도 확실하지 않으니 고민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고민 내용을 듣는 내내 이상했다. 만약 예비 배우자가 달라진다면 그건 B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작 B는 그 예비 배우자를 사랑하고 있긴 한가?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그 상대방을 바꾸려고 들어선 안 된다. 상대를 내 입맛에 맞춰 바꾸고자 하는 것은 상대방보다 내 생각을 더 중시하는 것이니,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정말 사랑한다면, 상대방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바꿔, 나 스스로를 상대에게 맞춰야 한다. 나 자신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사랑’인 까닭이다.
비단 단순히 사랑의 문제 때문만도 아니다. 본래 사람의 마음이란 남이 바꿀 수 없고 오직 ‘나 스스로’에 의해서만 바뀔 수 있다. 마음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타인의 마음을 바꾸고자 한다면 오직 나만 불행해진다. 내가 바꾸고자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닌데, 바뀌기를 바라니, 상대가 바뀌지 않으면 나만 답답하고 속 터지는 것이다.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불행은 그처럼 ‘불가능한 것에 손댈 때’ 생겨난다. 타인의 마음을 바꿔 먹고자 할 때. 이에, 행복한 사람은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을 함부로 내 입맛에 맞춰 바꾸려 들지 않고, 오직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결국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는 말은 그런 것이다.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감히 바꿀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것. 각자의 삶은 각자의 것이고, 각자의 마음도 각자의 것인데, 내가 뭐가 잘났다고 함부로 그들의 삶과 마음을 바꾸려 든단 말인가? 다른 사람 허물이나 캐고 고쳐 먹으러 들 시간에 네 앞가림이나 잘 하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의 것이니, 고치려고 드는 건 오만한 짓이다.
그러므로 사실 이 말은 변하지 않는 사람 마음에 대한 현실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타인의 마음에 손대려는 이들에게 하는 꾸짖음에 가깝다. 맞지 않는다면 고쳐 쓰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떠나는 것이고, 그래도 남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나를’ 바꾸고 ‘내가’ 적응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길이며, 관계를 위한 길이고, 상대를 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