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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모지민 Feb 03. 2023

어느 여배우의 난도질

어젠 

예술병 걸린 연극배우한테 된통 호되게 당했다

이 사건은 전라도에 있는 이름 모를 작은 극장에서 벌어졌다

행사 1부는 함께 영화 모어를 관람하고 

2부는 내가 춤을 추면 관객들이 나의 움직임을 그리는 것

드래그와 무용과 크로키가 혼합된 나도 난생처음 해 본 공연이었고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수십 년간 그림을 그려 온 미술 작가들이었다

마지막은 털 난 물고기 모어 책과 영화에 대해서 담소를 나누는 얼핏 보면 그럴싸한 행사였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이어진 첫 번째 공연에서 내가 드래그를 하고 등장하자 와! 하고 나 같은 종자를 처음 보는 사람들의 휘둥그레한 반응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손길이 쓱싹쓱싹 빨라지고 눈은 동그랗게 더 동그랗게 커지고 있었다

1부 공연은 아름답게 진행되었고 분장실로 들어가 아름다운 휴식을 취하고 화장을 뚜드려 고치고 나와 2부를 시작하였는데 

그때였다!!!

난데없이 공연 중간 그 예술병 걸린 여배우가 무대로 난입해 내 책의 글을 낭독하는 것이다 

재즈 피아니스트 연주에 아사모사하게 알몸으로 춤을 추던 나는 순간 움직임을 일시 정지하고

당황하지 않고 일단 코로 숨을 크게 몇 차례 내쉬었다

다들 숨죽이고 내 움직임 하나하나 집중해서 지켜보며 그리는 상황이었고 분위기는 진지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내 살결이 움츠려 들기 시작했고 모든 집중력이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이제 어찌해야 하나 속히 모면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30년 이상 여배우로 살았다고는 믿기지 않을 목소리 톤과 딕션과 당연 처음 읽는 글인지라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발음이 틀렸다

경악스럽다 못해 구역질이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했지만 나를 그곳까지 섭외하려고 애쓴 관계자들을 봐서 꾹꾹 억누르며 제발! 그 줄까지만 읽고 꺼져라!!! 

그러나 내 간절한 바람은 알바 아닌 감성충만으로 정신 나가버린 예술병 중증의 그녀는 

털 난 물고기 모어 글 중 챕터 간 긴 "불탄 무덤"을 연이어 읽기 시작했다

듣는 내내 1분이 100분처럼 느껴졌고 끝끝내 참아온 감정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결국 견디다 견디다 춤을 추다 말고 유유히 무대를 빠져나왔다

털이 다 빠진 털 없는 물고기가 되어 세상 쓸쓸히,,,

쪼그라든 내 고추와 엉덩이가 울고 있었다

공연은 중단되었고 분장실로 따라 들어온 그 여배우는 그제야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범한 것을 인지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나는 

그럼에도 그 여배우보단 성숙하게 행동해야만 할거 같아서 소리 지르지 않고 그저 정색하며 목소리를 지하 십 층으로 깔았다


‘당신이 내 공연 다 망쳤어요!!!

이젠 어쩔 거예요?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 예술병 걸린 여배우는 순간 그간 쌓아온 연기력을 발휘하여 눈물로 호소했다

저는 모어 선생님이 유연성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제가 즉흥으로 해도 받아 주실줄 알았어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백번 천 번 사죄드립니다

나는 그저 속으로 

이 여편네 일은 지가 다 저질러 놓고 연설 해쌌네 (염병한다 뭐 그런 뉘앙스의 전라도 사투리)

 "당장 네가 싸지른 똥은 네가 치워!!!"

관계자들도 분장실로 들어와 긴장한 얼굴을 하고 상황이 더 악화되질 않길 바라는 눈초리였다


"사전에 얘기를 했었어야죠"

배우님의 낭독이 제 퍼포먼스와 어울릴 거라는 건 대체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이며

저 공연 20년 넘게 하면서 이런 일 처음이에요. 

광주까지 짐 바리바리 싸들고 내려와 공연을 하는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제가 지금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당신의 그 만행이 아닌 공연자로서 마무리를 못 짓고 무대를 나온 것입니다

관객들한테 인사를 안 하고 무대를 내려온 것도 제인생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 예술병 걸린 여배우는 하염없이 "죄송합니다"를 연거푸 반복

제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미안할 때 하는 너무 뻔한 그런 말들!!!

일은 이미 처참하게 와르르 엎질러졌고 이를 어쩔 것이냐!!!


알고 보니 그 극장을 남편과 수십 년째 운영 중이고 심지어 그곳에서 어렵게 굴러가는 그 험하다는 영세한 연극 극단 단장이란다

그럼으로써 어제의 광주 공연은

결국 

자신의 극장에서 나랑 같이 널뛰기나 해 보자고 설친 그 미친 여배우의 욕심이 부른 화로 끝난 

망신 쇼가 돼버렸다

삼류 배우의 전라도 사투리가 이맛도 저 맛도 아닌 그저 싸구려 감성으로 울려 퍼진 정말 되도 않게 어그러진 경박한 쇼로 전락!!! 

영문도 모른 채 당하고만 내 설욕은 네가 씻겨줄 것이냐

극단 단장이란 여자가 무게감도 없이 어찌 그리 경솔한 행동 할 수 있을까

혹여 자신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박정자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이게 대체 무슨 일

나란 사람을 병풍으로 세워 놓고 결국 자신이 내가 빛고을 광주에서 이런 사람이야 하고 뽐내고자 초대한 것이겠지

나도 어디 남의 무대 가서는 조용히 지켜보다 열심히 박수를 쳐주고 공연자들 힘들지 않게 눈치보다 조용히 사라지는데 

남의 공연에서 정작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그놈의 주인공 병!!!

남의 밥상에 대체 뭔 개수작이야

왜 

항상 네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냐

어제의 그 무대는 내 무대였단다!!!

설마 네가 운영하는 극장이라고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네가 하면 모든 게 다 예술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누울 자릴 뻗고 다리를 뻗어야 하느니

예술병 작작해라

그렇게 자위하면 시원하냐!!!

병원 가라 그거 병이다

어젠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KTX에 간신히 몸을 싣고 경기도 장흥으로 돌아왔다는 너무나 구슬프고 서슬이 시퍼렇게 질린 소름 끼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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