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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모지민 Feb 06. 2023

모어 헤드윅 만나다

2018년 10월 은평구 끼순이 비로소 존 카메론 미첼을 만나다

10월 5일 금요일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태원 모 클럽에서 쇼 한탕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그곳은 1995년 처음 드렉쇼 클럽으로 오픈해 지금까지 명실상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태원 터줏대감이다

국내외 다녀가지 않은 셀럽이 없을 정도로 (크리스틴 스튜어트, 틸다스윈턴, 칼라거펠트, 라나 워쇼스키 등등 나열 힘듦) 한국의 유일무이 드렉 클럽 명소 이름하여 TRANCE이다

과거 미첼이 처음 내한 했을 때 들렸던 곳인데 그 당시에 난 이런저런 일로 그 자리에 없었고

그를 만날 기회를 저버린 것에 백 번 천 번 땅을 쳤던 걸로 기억한다

그가 몇 해 전 서울에서 가진 야외 콘서트에서 작게나마 그의 실물을 영접하고 대형 스크린으로 보이는

헤드윅의 형상을 먼발치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염없이 바라만 봐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분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헤드윅 분장을 하고 있는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하이 헬로 안녕하세요"

오늘 헤드윅 공연 보고 오셨군요?

그중

한셀이란 미국 여자는 이번 헤드윅 공연 때문에 한국에 왔다고 했고 헤드윅의 모든 투어에 따라다니다 못해 심지어 미첼과 개인적 친분까지 쌓아버린 시쳇말로 성덕? 중의 왕성덕이었다

내년 2월에는 본인 생일에 헤드윅 공연이 있을 거라며 묻지도 않은 자랑을 빠뜨리지 않았다

또 다른 두 여인은 모녀지간이었는데

오늘 헤드윅 공연을 위해 청담동에서 분장과 가발을 뒤집어쓰고 딸이 손수 만들어 준 옷과 망사스타킹을 신고 나름 헤드윅처럼 보이려고 애쓴 모습이 역력했다

그 어머님도 지난번 호주 공연에 찾아갔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광팬이었다


나: 대단, 세련, 엔간하시네요

아줌마 팬: 뭐가 대단해요. 제 삶의 유일한 낙인걸요. 그래도 다행이지 뭐예요 한국에서 하니까

티켓값만 들이면 되잖아요. 외국 투어 따라다니면 경비가 말도 못 해요


5일부터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3일간의 공연 티켓 VIP 석을 몇십 장 사놓은

그녀와 그녀의 딸내미는 오롯이 티켓 예매를 위해 세종문화회관 VIp 멤버십까지 만들었다니 하시니

팬이란 이런 것이다! 탄복할 수밖에

아, 나도 너무 보고 싶다

속내 그들이 하염없이 부럽다 하면서도 비싼 티켓을 사서

주말 공연 후의 피로를 무릅쓰고 대극장에 갇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손뼉 치며

열광할 에너지가 없다고 단념했다

그래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다는 둥의 아니야 한 주말밤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헤드윅 기분이라도 내보자!!! 며

준비한 레퍼토리 대신 뮤지컬 헤드윅의 한 자락 wig in a box 곡으로 쇼를 했고

태풍으로 비바람 치는 금요일 밤의 클럽엔 소수의 손님들이 새벽쇼를 겨우 지켜봤다

그러다

이만저만 쇼를 하는데 이나니저마니한 일이 벌어졌다

오래된 클럽 지붕이 날아갈 것만 같은 험궂은 날씨에 몸을 사리지 못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괜한 의자 위에 올라가 다리 찢기 짓!!!으로 오버하다 에구구구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쇠로 된 의자 모서리에 대퇴부 뒷부분이 20cm가량 찢겼다

헐레벌떡 분장실 들어와 응급실을 가네 마네 하다 쇼 대기 중이던 언니들이 급한 데로

반창고를 서너 장 상처에 갖다 부쳤다

비는 그치지 않고 내 피 같은 피는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 쇼가 끝날 즈음에 다행스레 지혈됐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광팬 어머님의 딸내미한테서 인스타 Dm이 와있었는데

미국서 온 한셀이 전날밤

내 부상 투혼쇼 영상을 미첼에게 보여줬고 미첼이 직접

So beautiful!!!

키스 짤영상과 함께 날 만나 보고 싶다고 그 친구를 통해 메시지를 보내왔다

비몽사몽 이게 꿈이야 생시야. 피로가 번쩍!!! 노곤한 몸이 쾌청하게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라디오를 켜고 커피를 들이키며 세종문화회관에서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을

공연을 상상했다

Tear me down. Angry inch. Sugar daddy. The origin of love 등등등!!!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중 공연을 다 본 딸내미한테서 티켓 남은 게 있으니 내일 일요일 막공에

시간 되면 오실래요? 연락이 왔다

꺄아악!!! 없는 시간 만들어서라도 가야지요. 무조건 가겠습니다. 내일 보아요

난 바로 영화감독한테 전화해

내일 미첼을 영접하기로 했으니 카메라 들고 오시오

일본에서 활동하던 다큐 감독의 프러포즈를 내내 고사하다 얼마 전 승낙했다

이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마는

작년 도쿄 공연 갔을 때 일본 작가가 찍은 내 사진을 보고 반했다나 어쩐다나

나에 관한 모어에 관한 드렉에 관한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다

제작 기간이 얼마나 되지요?

감. 1년 에서 3년이요

나. 엥? 뭐야... 난 못하오

감. 아니오 하셔야 하오

나. 아니오 나는 못하오

감. 아니오 꼭 하셔야 하오 보여줘야 하오

나. 어디에 말이요?

감. 이 세상에요

나. 왜 제가 보여줘야 한단 말이요?

감. 당신이니까 모어이니까

나. 기래요? 돈은 얼마 줄 생각이요?

감. 한 푼 두 푼 모아 세 푼이요

나. 레알이요? 그래도 못하겠소

저 실랑이를 몇 번 번복하다

trance 사장언니가

이런 기회는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게 아니란다

그 감독은 너한테 분명 특별한 기운을 느꼈을 것이고 너 인생에서 영화 한 편 나온다면 그야말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겠느냐. 이건 무조건 찍어야 한다고 내 머리통을 깨우쳤다

나: 언니. 그런 거야? 알겠어. 찍을게!!!!

바로 감독을 만나 그래요 해요 하자고요. 어디 한 번 해봅시다라고 했다


운명의 10월 7일 네시

나는 이미 시작도 전에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the origind of love를 부르며 비로소 헤드윅님 등장!!!

의상은 미래적이고 입체적이며 가발은 백발로 변해 있었다

첫곡을 마치고 11년 만에 한국에 왔다며 그때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 put  u r hands up!!!!

여기저기서 here here here!!!

 세종에서 하려면 이 정도는 입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의상에서 카스를 꺼내 한 모금 들이키다 뷁! 하고 뿜었다. 관객 일제히 깔깔깔!!!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됐고 헤드윅의 노래 가사 대사 하나하나가 다 성경말씀처럼 주옥같으나 그중 젤 기억에 남는 건 그의 죽은 전 남자 친구 잭의 얘기였는데

"그는 근심스러운 중년을 넘어 순진 무구한 노년으로 가고 싶어 했다"에서 눈물 핑

이 노래 저 노래하다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부르는데 눈물 왈칵!!!

클럽 트랜스에서 꽃밭에서로 쇼를 하던 드랙퀸이 몇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 아이 생각에 그날 헤드윅이 부르는 꽃밭에서는 유난히 구슬펐다

tear me down이나 angry inch 같은 파워풀한 노래를 3일 연장 두 시간씩 소화하기엔 무리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연륜 가득한 에너지로 그 큰 대극장과 관객들을 압도하는 그를 보고 역시는 역시다 싶었다


미첼: my hair is dead but I', m not dead!!!


앙코르로 부르는 섬집아기를 따라 부르며 마저 울어버렸다

공연이 끝나고 내게 티켓을 준 왕팬 어머님 딸을 쫓아 대기실로 향했다

한셀과 그들은 3일 연장 백스테이지를 드나들 수 있는 나름 권력을 가진 팬이었다.

그를 백스테이지에서 본다니 긴장감이 고조됐고 3층에서 공연을 보고 대기하던 감독에게 전화해

빨리 와요 안 그럼 못 들어가요

감: 네네 지금 뛰어갑니다

문 앞에서 우리 일당을 맞이한 건 재키 음악 감독이었다

재키: 어 지민 씨? 오랜만이에요

몇 년 전 송용진 헤드윅 10주년 공연 때 내가 특별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인연이 됐다

난 다짜고짜

아 제가 지금 뭘 좀 찍고 있는데요 미첼한테 얘기해 줄 수 있을까요

방해 안 되는 선에서 잠깐이라도 인사 나누는 거 영상에 담고 싶어서요'

재키 : 네 알겠습니다 기다려보세요

백스테이지를 조심조심 어슬렁어슬렁거리는데 쇼노트 대표도 날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대표. 지민 씨 그때 다쳤던 발 괜찮아요?

나: 그게 언제 적인데 그러세요 괜찮고 말고요

오랜만에 세종 백스테이지 왔더니 몇 해 전 노트르담드파리 오리지널팀 왔을 때

배우들 필라테스로 warm up 시켰던 기억이 마구마구 떠오르던 중

마침내

그가 내 쪽을 향해 왔고 나는 크게 숨을  한번 내쉰 후 큰절을 올렸다

그 비디오의 인물이 너야? 하고 여시같이 바로 알아보고는 it was so beautiful!!! 

마지막까지 날 감동으로 두들겨 팼다

너무 긴장한 탓에 하다못해 "you are wonderful"이란 말도 못 하고 얼어붙은 얼굴로 끄덕끄덕 만하다

꽃밭에서 부를 때 눈물이 났고 영원으로 건너 간, 암으로 죽은 드렉퀸 얘기도 잠깐 했다

그 순간 어떻게 또 그건 생각나서 입을 열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한심하다. 왜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리스펙트 한다고 말을 못 하냐고 왜!!!

애프터파티에 우릴 초대하겠다며 쇼노트 대표에게 이 무리들 좀 깡그리 오게 해 달라며 부탁까지 할 줄 아는 진정 아름다운 대인배 헤드윅이었다

나는 그저 "Thank you so much"라고 대답했다

우리 일당은 (광팬 어머님과 그녀의 딸내미) 택시를 타고 한남동 장터갈비 (애프터파티가 열리는 곳)로 이동했고 한셀은 끝까지 미첼 곁에 있겠다며 우리 먼저 가라고 했다

나는 택시 안에서 의심했다. 한셀의 저런 광적인 집착? 에 미첼은 안전할까 싶었다.

지가 무슨 미첼 매니저도 아니고. 물론 나는 그 둘의 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갈빗집엔 오늘 공연을 보러 온 전 뮤지컬 헤드윅 배우 몇 분 들과 이츠학을 공연했던 서문탁 등등이 있었다

밤새 쇼하고 잠도 얼마 못 자고 나가 공연 보고 간정속에서 미첼을 영접한 후

엄청난 하루의 일과의 피로가 사정없이 몰려왔다

당 떨어져 손이 부들부들. 일단 나와 어머님과 딸내미는 남이 노는 판에 거저 끼어든 주제에 눈치도 없이 냅다 까라 고기를 구워 폭풍 흡입. 허기진 속창시에 들어갈 LA 갈비는 입창시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았다

일 인분 이인분 삼인분 먹어도 먹어도 헤드윅은 오지 않고 배가 불러오니

그가 없음에도 세상 모든 것이 충만한 밤이었다

이때 헤드윅님 등장!!!

미친 듯이 흡입하다 잠시 중단

언제 그에게 다가갈까 궁리를 하다 안 되겠다 싶어 수줍음 따위를 숯불에 던져 태웠다

짱구만 굴리기엔 시간이 별로 없었다 

미리 궈 놓은 고기를 미첼에게 갖다 바치며 고기 좀 드셔요 plz!!!

미첼: oh thanks!!!

미첼 옆은 그 누구도 끼어들지 말라며 한셀(년)이 꼭 지키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진심이야? 엔간히 해라 let him go

어느 정도 고기를 좌신 미첼은 담배를 피우러 나갔고 우리 일당은 사인받을 타이밍과 언제 이 자리를 뜰지를 논의했다

미첼이 자리를 옮겨 내 옆테이블에 앉았고 나와 모녀 일당은 이때다 싶어 집에서 가져온 해드윅 ost에 사인을 받고 사진도 찰칵!!!

사진만은 그 누구보다 찐하게 찍은 걸로 자부한다. 아닐 수도 있다

나는 편의점에서 사 온 목캔디를 선물로 for u r voice!!! 주고 냉큼 자리를 나섰다

우리 일당은 건너편 커피숍에서 두어 시간가량 오늘의 감흥을 마저 나누고 헤어졌다

어머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모든 영광은 어머님 덕이어요 잊지 않겠습니다

은평구 집으로 돌아온 나는 진심 행복했다

너무 행복해서 곧바로 떡실신!!!


다음날 8일

9일이 한글날이라 트랜스 마담언니의 부름으로 쇼를 하러 갔다

자정 즈음 분장실에서 더덕더덕 화장하고 있는 날 밖에서 누가 찾는다고 해 나갔더니

이게 무슨 일. 그건 미첼이었다

꺄아악!!! 내 쇼를 보러 왔단다

이틀 연장 만남 재회 디지버진다 디지 버져!!!

미첼은 내 전화번호를 묻고 저장한 후 인스타 팔로잉도 해주었다

나는 계속해서 you kidding me ,,, (진심이야? 제발 진심이라고 말해줘)

내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타고난 패스미스트의 의심병!!!

클럽 테이블에 착석한 그와 나는 한참을 얘기했다. 

드렉의 힘인 것일까 그를 응대하는 것이 불과 어제의 어버버버가 아닌 당찬 모어로 돌아왔다

이런저런 썰을 풀다  내가 요가를 한다했더니 그럼 내게 요가를 배우고 싶다는 게 아닌가

원래 일정은 화요일에 도쿄로 떠나는 것인데 서울에 더 머물고 싶다며 일본행 티켓과 호텔을 그 자리에서 취소하랴 말하랴 술 마시랴 바쁜 그였다

설상 요가를 못하더라도 가기 전에 밥이라도 먹자고 했고 오늘 두 시 반 쇼는 너무 늦고 피곤해서 아쉽지만 볼 수가 없다며 자리를 떴다

그날 밤 쇼 하는 내내 맘이 들떠있었다

근데 이거 실화야?


9일 화요일 오후

일어나 보니 미첼한테서 문자가 와 있었다

꺄아악!!!

그는 어제 너무 반가웠고 시간 날 때 요가하자고 했다

미첼:  what about tomorrow?

나:  yes yes 100 times yes!!!

난 바로 친구의 스튜디오를 예약하고 다음날 한시에 보기로 했다

감독한테 전화해서

세상에 이런 일이,,, 미첼이 제게 요가를 배운다고 하네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요

이건 무조건 찍어야 합니다. 운명이에요 운명!!!

미첼에게 매우 조심스럽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이만저만고만해서 현재 나에 관한 다큐를 찍고 있는데 가능하면 출연해 줄 수 있느냐라고 만약 허락한다면 가문의 영광이겠다고

답변이 오기까지 불과 몇 분의 긴장된 순간 두근두근!!!

미첼:  of course!!!

역시 대인배는 다르구나. 그는 모든 것이 쿨했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절친 이랑에게 전화해서 사정을 얘기했더니

이랑 : 모어 이러다 미국 가는 거 아니야?... 나도 너무 만나 보고 싶다.

그렇다면 미첼 등장할 때 너의 음악을 틀어 놓을게

그리고 네가 자연스럽게 등장 어때?

이랑: 나까지 설치면 도리어 민폐일 수 있으니 내 음악을 그에게 소개해 주는 것만으로도 영광!!!

남편한테도 바로 연락해 이 사실을 전했다

남편 : 축하해!!!

나: 그게 다야?

남편: 정말 축하해!!!

나 : 알겠다


10월 10일. 운명의 날

그가 오기 전 스튜디오 바닥을 청결하게 훑고 미첼에 자리엔 내가 좋아하는 핑크색 매트를 깔아주었다

마지막은 이랑의 신의 놀이를 틀고 준비 완료!!!!

한시 십분

미첼이 도착했다고 문자가 왔다

나와 감독은 버선발로 나가 그의 보광동 왕림을 맞이했고 카메라를 보더니

미첼: oh already!!! Cool!!!! It’s beautiful day

나: look at the sky. The clouds are so beautiful today!!!

우린 반가움에 꼭 껴안았다

뉴욕에서 온 헤드윅 보광동에서 끼순이 접선하다!!!

당도차마자 뜬금없는 카메라 마사지까지 받으시고 내 상냥한 안내로 2층에 자리한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미첼 : oh very nice!!! What’s this music...

나: 내 친구 이랑의 음악이란다. 내가 어제 보내준 내 결혼 영상 음악의 주인공!!!

미첼: oh I like it

옷을 갈아입고 미첼이 데려온 친구 석원과 함께 요가의 세계로 들어갔다

우린 서로 나마스테 인사를 나눴다

그는 뉴욕에서 틈틈이 요가를 해서 그런지 어쩔 수 없는 존재 자체로 "요기"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내 설명을 들으려는지 마는 건지 혼자 심취해 호흡하며 아사나를 취했다

난 stop it listen to me carefully라고 차마 말은 못 하고 그의 동작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뇌가 자고 있는지 늙어서 그런지 요가 아사나 용어도 잘 생각 안 나고 또 그걸 영어로 가르치려니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고 턱도 없이 요가를 가르치기엔 너무 허접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수리야 나마스카라. 태양예배를 무한 반복하다 사바아사나로 마무리

미첼과 석원은 아취자세를 쉽게 해냈고 둘은 후굴 동작이 편하다고 했다

역시 이쪽 사람들은 뒤로 하는 동작이 수월한가 싶어 웃음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마스테!!!!

갓 시작한 거 같은데 시계를 보니 세시

한 시간 반동안이나 미첼과 뒹굴었다니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촬영 감독의 인터뷰 요청에도 역시나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미첼: 어쩌고 저쩌고 저쩌고 어쩌고

(그가 남긴 주옥같은 말은 영화 모어에 고스란히 나온다)

아임 헝그리. 다 같이 밥 먹으러 가자

난 오랫동안 단골로 다니던 보광동 곤드레쌈밥 집에 데려갔다

뉴욕 헤드윅 끼순이 보광동 그리고 곤드레쌈밥 이 무슨 조화인가 웃음이 나왔다

밥이 나오기 전 준비해 온 이랑의 "신의 놀이" 일본반과 내가 그린 그림을 선물했다

나: that’s u!!!

미첼 : so so cute

그녀는 일본을 오가며 맹활약 중인 한국 인디 음악의 희망이자 내 절친이라 자랑했다

이어 오노요코가 참여한 헤드윅 트리뷰트 앨범을 꺼내 보여줬더니

미첼: that’s rare!!!!

나: 알겠니? 나 너의 진심 팬이라고!!! 어서 사인해 줘

미첼: Jimin love & jcm!!!

Do u want broken penis?

나: Yes I do

부서진 고추를 앨범 커버에 곱게 그려주었다

곤드레 쌈밥이 나오고 강된장으로 비벼

한술 두 술

제주 갈치젓에 쌈까지 싸서 먹는 완전 뉴욕 된장파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며 자주 가는 한식당 이름이 한가위라고 했다

나: 넌 한국친구가 참 많더라?

미첼 : 응 많아. 헤드윅에 광희? 도 나오고

나 : 숏버스에 그 여주인공 korean 아니야?

미첼 : 챠이니스인데 이름이 한국스럽지?

나 : 아하

우린 곤드레와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미첼은 옆에서 신들린 듯 가위질하는 식당 직원 여성을 보더니

오!!!! 씨져 레이디!!!

가위여인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면서 가위여인이 가위를 들고 복수에 칼날을 가는

복수활극!!!

가위로 잘라먹는 한국의 음식 문화는 외국인에게 매우 생경 맞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 가위로 고추를 잘라 버리는 건 어떠냐고

Broken penis!!!! 흡사 Angry inch!!!!

미첼이 박찬욱 스타일로 만들고 싶다고 해서

그럼 내가 박찬욱에게 연락을 취해 보겠다며 되지도 않는 농을 쳤다

석원이 박찬욱은 현재 영국 bbc 드라마 찍는 걸로 바쁠 거라고 맞장구쳤다

뉴욕으로 돌아가면 당장 시나리오 쓸 기세로 곤드레쌈밥은 뒷전

씨져레이디에 꽂혀 가위여인을 물고 늘어졌다

나 : 미첼 너는 전설이 되려면 당장 죽어야 해. Why don’t u kill u r self already?

미첼: 데이빗보위는 자살하지 않았잖느냐

나 : 데이비드 보위는 암으로 적당히 살다 갔고 이미 죽기 전에도 전설이었던지라 예외!!!

전설이 되려면 너 자신을 진작에 죽였어야 했다

미첼 : 제니스 조플린. 짐모리슨처럼?

나: 짐모리슨 지미헨릭스 3J!!!

미첼 : 그래? 오.... 갸우뚱

나의 서슴없는 농담에 모두들 깔깔깔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것 같은 친구. 그저 화기애애한 에너지로 홀리 몰리

미첼은 오늘 요가 수업 고맙다며 내 밥값을 내주었다

나: 이럴 줄 알았음 더 비싼 거 먹었을 텐데 아쉽네? "땡큐"

계산하는 틈에 주방에서 가위 두 개를 가져와

나: 미첼!!! 저 이모님이랑 사진 찍어. 씨져 레이디!!!!

그는 할리우드 액션을 취하며 Strike a pose!!!

이모님은 어리둥절!!! 귀찮은 표정!!!

식사 후 이태원 가는 방향으로 보광동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미첼 : i like this area

나 : 내가 사는 동네야. 그나저나 너 공항 어떻게 가? 버스?

미첼 : 쇼노트 대표 브라이언이 캡 불러준댔어

나 : 어머머머 미안. 깜빡했다. 스타한테 버스라니, 나도 참 ㅋ

미첼 : 아임 롹스타!!! 유노!!!!

나 : 아이 노 아이 노

미첼 : 가기 전에 함 더 보자

나 : really? 그럼 너무 행복하겠다

난 그의 입에 묻은 김칫국물을 손으로 문질러 닦아주며

나: 잘 가. See u

미첼 : see u

나: 챠우


다음날

다큐에 흔쾌히 허락해 주어 너무 고맙다고 문자 했다

미첼 : of course!!!

나: 너와 함께한 꿈같은 시간 영원히 잊지 않을게

4회째의 랑데부는 이뤄지지 않았고 주말 공연으로 지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미첼은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는 며칠 동안 미첼 앓이를 했던 거 같다

보고 싶을때 언제든 연락해서 차 마시고 싶은 그런 친구이고 싶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환상과 현실에서 잠시 스쳐간 헤드윅을 이제 그만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3일간 그와 함께한 꿈처럼 스펙타큘러 한 시간

고마웠다

소중했다

아름다웠다

잊지 않겠다

So long my hero


오늘은 헤드윅 넘버로 쇼를 해야겠다


"내 얼굴엔 메이크업 카세트테이프 노래

가발로 마무리하면

어느새 난 미소 짓는 미인대회 여왕님

언제까지나 나는 잠들면 안 돼!!!" (wig in a box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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