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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모지민 Feb 07. 2023

이제와 어제가

어제 1 

어제 플라멩코 수업을 들으며 이렇게까지 못해야 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버스에서 선생의 영상을 보고 순서를 되새기려 했지만 DAZED and CONFUSED. 

집에 돌아와  프랑스 페루 전에 페루팀 응원을 했지만 프랑스의 10대 스타  음바페의 한골로 프랑스는 16강 진출이 확정되었고 페루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저께 모로코 선수들의 경기 후 흘리는  눈물이 아른거려 마음이 짠했다. 

새벽 3시에 열리는 아르헨 티나와 크로아티아 전을 보고 싶었지만 체력이 허락되지 않아 바로 취침. 

웬일로 열 시간 내리 잤고 중천에 떠 있는 해를  받고 있는 모모의 소리에 눈이 번쩍. 

전화기를 확인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문자나 전화는 없었다. 

커피 내리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난밤 경기를 검색했 지만 아르헨티나는 3:0으로 패배. 

우승 후보이자 축구의 신  메시가 있음에도 1승 1패로 16강 진출 확률에 적신호가 켜졌단 기사를 보고 4년 전 브라질 월드컵에서 메시가 신은 내게 우승컵을 주지 않는다며 울면서 했던 인터뷰. 

그는 당장 은퇴하겠다 했고 아르헨티나의 전 국민들과 대통령마저도 만류해 이번 러시아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승리를 거머쥐고자 어렵사리 출전했지만 예선 탈락 기로에 선걸 보니 냉정한 신은  진정 그에게 월드컵 우승을 절대 허락 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근데 내가 무슨 저널리스트도 아니고 주저리주저리 왜 이러고 있나. 아점이나 먹으러 나가야겠다. 

날 깨운 모모는  낮잠을 자고 있고. 


어제 2

소치 동계 올림픽

남자 피겨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 스타 예브게니 플루첸코가 기권을 하더니 쇼트부터 프리까지 참가 전원 점프만 뛰었다 하면 엎어지는구나. 이건 뭐 올림픽이라기보단 누가 덜 엎어지느냐를 내기하는 듯하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가 이끄는 일본의 하뉴가 이변이 없는 한 금메달은 딸 것이고 올림픽 빠순이인 나에게 기대를 와장창 저버리게 하는 이번 소치에서 한국은 이상화를 제외한 선수들의 저조한 성적 속에 과연 김연아 느님은 2연패의 신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소치가 써 내려간 삼류 시나리오는 피겨여왕 김연아를 희생시키고 자국의 어린 무명 샛별에게 어부지리 금을 주는 걸로 사기극은 끝!!! 러시아의 15살 신예 리프니츠카야는 포크레인으로 금을 퍼다 주겠다 해도 연이은 실수로 지 복을 스스로 찼다. 김연아와 동갑내기인 세기의 라이벌 일본의 아사다마오는 자신의 무기인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지 못했고 영원한 2인자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이탈리아의 캐롤리나 코스트너는 세 번의 올림픽 출전 끝에 동메달을 거머쥐었고 그 외 다른 선수들은 금메달을 거저 가져간 도둑년 스코트니바 정도의 수준미달이라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잠도 안 자고 숨죽여 지켜본 여왕의 마지막 경기는 경이로운 정신력으로 완벽한 테크닉을 구사했다. 키스 앤 크라이에서 그들의 짜고 치는 박한 점수가 나왔을 때마저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미소를 공산당 관객들에게 던지며 마지막까지 슬기로운 기갈을 부렸다. 그 의연한 모습이 마치 잔다르크의 재림 같기도 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김연아 같은 보물이 이 땅에 다시 태어나려면 백 년을 더 기다려야 할 테고 이제 더 이상 그 아름다운 몸짓의 향연을 지켜 볼일은 없을 거 같아 그게 가장 아쉽다.  그녀는 강했고 아름다웠고 자신과 조국을 위해 애써줘서 고마웠고 보고 싶을 것이다.

send in the clowns

부디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어제 3

어제 생애 처음으로 다단계에 다녀왔다. 예전에 같이 뮤지컬 했던 형인데 행여나 행사라도 들어온 줄 알고 끼스럽게 치장하고 나갔건만. 시크릿 secret이라는 화장품인데 이스라엘  사해에서 나온 소금으로 만들어서 죽은 피부도 살아나게 한다는……. 한 시간의 설명회가 끝나고 날 가입시키려는 바람잡이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저는요, 아이 셋 키우는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였는데요. 지금은 매달 통장에 2천만원이 들어와요. secret에서 일하기 전까진 정말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었어요. “ 나는 “어머머머, 그렇군요” 하고 맞장구쳐 줬다. 

“사장님 (나를 가리키는 말)

별 고생 안 하셔도 처음 인프라만 구축하면 아랫것들이 돈을 벌어다 줍니다. 

가입이 2백만 원인데 부담되시면 무이자 12개월 가능하고요.” 

그가 서류를 내미는 찰나 미친년 염병하네, 하고 날랐다. 택시  안에서 날 데려간 그 인간의 카톡 전화 후다닥 차단. 

몇년 전에 뮤지컬 하는 누나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지민아, 한 번만 가자. 너 돈 벌게 해 줄게.” 그렇게 사정해도 뿌리쳤던 나였거늘 그 다단계가 저 다단계였다. 그 뮤지컬 배우 형이란  자가 또다시 나를 그 세계로 데려가보려고 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저녁에 논현동 플라멩코 수업 듣고 나오는데 문 앞에  거짓말처럼 Seacret 화장품 가게가 있는거 있지……. 백번을  왔다 갔다 했지만 그 문구가 눈에 들어온 건 어제가 처음. 물어보니 진작에 망해서 비어 있다고. 쯔쯔쯔. 일확천금 웬 말이야. 


어제 4

어제 랑이를 만나 다섯 시간 내리 썰을 풀었다. 집들이 선물로 현금 10만 원과 〈신의 놀이〉 일본반. 원앙 한 쌍 그리고  그토록 바랐던 신곡을 들고 왔다. 제목은 ‘잘 듣고 있어요’.  일본에서 찍은 흑백으로 촬영한 뮤직비디오는 마르셀 프루 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연상시켰다. 변주가 시작되면서 《별주부전》 대목을 삽입해 자신의 주변 친구들에게서 벌어진 일들을 절묘하게 대입시켰다. 나는 왜 내 얘기가 빠졌느냐며 용심이 난다 했다. 이랑의 음악은 한번 들으면 각인되는 놀라운 힘을 가졌는데 단순한 코드로 명곡을 만드는 천부적 재능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감동의 랑데부로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오후. 랑이를 알고 난  이후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랑은 일본을 오가며 주체할 수 없이 바쁜 스 케줄을 소화해 내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셀프 정신 설계로 매우 단단해져 있었다. 움직임교 창시를 앞두고 있다  했고 사랑도 섹스도 고통도 다 움직임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또 자신의 아바타가 대신해 아파해준댔나 어쩐다나 너무 엉 뚱하고 재밌어서 나는 듣는 내내 푸하핫 냐하하 디지버진다  디지버져 박수치며 연거푸 옳네 옳아 믿습니다! 창시하면 광신도가 되리라 마음먹고 랑의 끝없는 설교에 아름지게 세뇌당하고 있었다. 내일은 판소리 쑥대머리를 배우러 가는데 노래에 너무 많은 한이 서려 있고 어려워 진도가 잘 나가지 않 는다고 했다. 나는 한을 쌓으려면 일단 눈을 멀게 하라고. 두 눈 다 아작 내는 건 좀 그렇고 일단 먼저 한쪽 눈이라도. 우린 깔깔깔! 랑은 집을 나서면서도 하염없이 판소리로 헤어짐 의 아쉬움과 이어 작업실에서 있을 미팅의 노곤함을 노래했다. 집 앞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는데 하필 쓰레기더미가 쌓인 곳에서 택시가 멈췄다. 나는 “랑아, 보아! 현실은 시궁창이야.” “랑은 쓰레기도 움직임의 일부분이야”라며 차에 몸을  싣고 떠났다. 저녁에 ‘잘 듣고 있어요’가 유튜브에 공개되었 고 열번은 들은 것 같다. 듣는 내내 움직임교를 생각했다. 현 재 내게 일어나고 있는 비문학적이고 비과학적인 차마 꺼내 놓을 수 없는 이야기도 움직임의 한 꼭지라 생각하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랑아, 움직임교 세상 신기해!!!’ ‘랑: 어서  자라! 잠도 움직임의 일부분이다’라고 답변이 왔다. 나는 아멘, 하고 이른 저녁 사바아사나의 세계로 들어갔다. 


어제 5

어제도 어김없이 묘시에 기상. 누군가 돈 좀 빌려달라며 장 문의 문자와 부재중 전화로 찾아 잠이 달아나고 93.1 FM 클 래식 라디오를 켜고 커피를 내리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모모의 울부짖는 소리. 어젯밤 베란다에 놓은 화장실 용변 보러 갔다가 춥다고 문 닫는 통에 밤새 갇혀 오열. 나는 미안하다며 모모는 괜찮다며 나의 희생으로 네가 숙면을 취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며. 모모는 나와 달리 단순해서 너무 쉽게  용서. 

11 a.m. 안사람이 나가는데 바깥사람 처자고 있는거 꼴보기 싫어 용심으로 일괄 소등 버튼 누르고 나왔는데 전철로  이동 중에 바깥사람이 전화해서는 집에 불이 안 들어와 샤워를 못하겠다며, 나는 대충 씻고 어여 학교나 겨 나가라며 전화를 끊고

원형 탈모로 연신내 피부과 들락날락 8개월째. 

의사:  오늘이 모지민님 뵙는 마지막 날이에요. 전 청량리에 개인 병원 오픈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좆됐어요. 끼순:  네, 정말 좆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창하시길 빕니다. 

의사: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너무 아쉽네요. 다른 의사분이 잘 챙겨주실 거예요. 

끼순:  네, 저도 아쉬워요. 그리고 오늘 주사 존나 아팠어요. 

12 p.m. 이달 초 코스모폴리탄 화보를 찍은 김태은 작가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들 보고 너무 아름다워서 전철에서 화들짝. 나는 나의 모습을 너무 사랑해서 절대 죽지 못해!  그런데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은 당최 나뿐이고 강남역에 내려  약국에 들렸는데 마~~~입 꺼내기도 전에 마스크 쓰고 있는 약사분 끼순이 손님 마스크 없으니 꿈도 꾸지 마세요, 손사래 절레절레. 

1:30 p.m. 비를 추적추적 맞아가며 강남 최종 목적지에 도착. 어쩐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4층까지 올라가는 내내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너무 당황한 나. 이게 대체 무슨 일?

회장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당일 급 취소됐는데 오늘  수업 담당하신 선생님이 경황이 없어 연락을 못했다네요. 한 시간 수업비는 드릴 테니 조심히 돌아가요. 그리고 지민 씨, 이건 일도 아니에요. 마음 풀어요. 정말 미안해요. 

황망한 마음을 쓸어내릴 길이 없어 그 자리에 잠시 누움. 2:30 p.m. 강남 마실 온 김에 친구나 보고 가야겠다며 친구가 운영하는 스튜디오로 이동. 신논현역에서 강남역으로 가는데 강남 이다지도 넓다 싶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얀 마스크를 쓰고 흡사 재난 영화의 한 장면. 한 달간 스페인에 다 녀온 친구 내게 집들이와 생일 선물 한꺼번에 드리방방. 그래 내가 이걸 받기 위해 오늘 강남까지 왔다지? 감동에 취해  젖은 두만강 랑데부. 우린 허기를 달래자며 순댓국이나 쑤셔  넣자고 근데 순대껍질 못 먹는다며 가위로 껍데기 조사불고  있는 친구. 

친구:  나 재수 없지?  나:  응, 역겨워.

친구의 그간 못한 이야기 신세한탄 뒤집어지고 네년 인생도 참 좆같다며 그래도 내가 너보단 나은 삶을 사는 것 같다며 어여 힘내라며 얼마 안 되는 밥값 결제. 5:30 p.m. 버스로 한남대교 건너는데 비 갠 후 석양빛으로 물든 서울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아는 언니한테 언니, 서울 너무 아름다워했다가, 이년아, 대체 서울이, 한강이 어디가 아름답다는 거냐 해서 입을 꾹 다물었고 언니가 밥은 먹고  다니냐고 해서 순댓국 먹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절망 희망 왔다 갔다 미친년 널뛰는 나의 감정 기복에 할말을 잃고 다망한 하루의 무게를 주섬주섬 은평구 집으로 유유히. 자꾸 이것저것 캐묻는 감독 말도 섞어찌개 하기  싫어 문자 읽씹하고, 모 매거진 서면 인터뷰 중 앞으로의 계 획 뭐 이런 질문이 너무 하염없어서 한줄도 쓰지 못했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대체 무슨 미래! 그저 한숨! 

MMCA 공연 연기 이메일 통보. 3월에 배정받은 수업 줄줄이 사탕으로 캔슬 문자 오고 또다시 우울신 무기력 신, 그분들 오시기 전에 얼마전 이정민과 찍은 작업 사진들 보며  눈과 마음 바로 고쳐 잡고 그래도 아름다웠던 지난 요코하마 공연의 감동과 순댓국의 얼큰한 국물과 고기 지방의 육즙과 부추의 알싸함과 깍두기의 시원함과 고추의 매콤함과 그 외의 재료들의 헌신과 잠시라도 내 눈에는 유럽처럼 느껴졌던 한강과 날 용서한 모모를 안고 9 p.m. 꿈틀꿈틀 꿈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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