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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모지민 Jan 31. 2023

아름다운 하루를 살고 싶어요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는데 맥락 없는 웃음에

아! 오늘 하루는 분명코로 아름다울 예정이구나

클래식 FM 라디오를 트는데 명징한 피아노 선율이 짜랑짜랑 잠든 집구석 구석에 발길질하고

공복에 식은 차 한잔 덜커덕 들이키면 밤새 수면으로 증발한 몸뚱이의 수분이 그럭저럭 채워져요

시시콜콜 밤을 지새운 고양이 모모가 끼순아 안녕! 하고 반겨주네요

그 모모가 아름다워서 아름다워서 잠시 밤시 바라보아요

커피를 내리는데 아름다운 향기에 취하고

뜨거운 커피가 혀에 닿고 알맞은 온도로 식어가면서 금세 장으로까지 번지는데 커피를 마시면 한결같이 똥이 마렵고 똥을 싸는데 마침 쾌변이라 아름답고

이윽고

허기 가져 밥을 먹는데 목구멍으로 별 탈 없이 밥알이 술술 넘어가 슬슬 배창시가 차오르고 밥상머리에 숟가락을 놓자 해는 어느덧 중천에 떠오르고 그 해를 보러 창문으로 가는데 모모가 따라와 그 커다란 해를 함께 쳐다보아요

나는 청소기를 들고 모모는 둥근 해에 드러누워 그저 평화로운 잠을 자고요

낡고 늙은 싸구려 청소기는 흡입력이 떨어져 모모가 떨어뜨린 모래를 일일이 손으로 주워 담고

그럼에도 담지 못 한 것들은 나 몰라라 미련 없이 내버려 두고 이방에서 저 방으로 가요

버리면 채워진다고 했는데 정작 버릴 건 버리지 못하고 여태 쓰레기만 버려내는 나 자신이 참 그러하기만 해요

오늘하루 미련한 영혼을 채워줄 앨범 몇 장을 꺼내 오디오 엠프를 틀어요

빨간색 전원 버튼이 초록색으로 변하고 엠프는 금세 따뜻해져요

빙빙 돌아가는 엘피판에서 조니미첼의 목소리가 대굴대굴 굴러가 어김없이 심장에 들러붙고

여적 그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돼있을까 생각하면 그저 아찔!!!

맹세코

단 하루도 결석 없이 그녀의 음악을 허투루 들은 적은 없음이에요

이 시골 장흥 촌구석에서 어떠한 끼순이가 자신의 음악을 매일 듣고 몸과 마음을 적시는걸 그녀는 알턱이 없겠지요

다른 판을 올리면 또 그 나름의 감동을 부르고 그건 절대 불변 감동의 도가니탕이에요

감동으로 두들겨 맞은 사지를 살살 늘려 재끼다 보면 도가니에서 틱틱하고 공기가 터지는 소리!!!

그래 이 소리 없으면 또 서운하지. 암 그렇고 말고

몸은 이쪽저쪽 좌우 전굴 후굴 가지가지하다 내 몸은 아직 무사하다!!!로 이내 증명되고

마지막은 꼭 근력 운동으로 가늘고 길게 늘어진 근육을  다시 조이고 하여간 매일 끊임없이 풀었다 조였다의 연속. 이건 내 몸이니까 죽는 날까지 스스로 알아서 해야만 하는 일!!!

해는 아직 한창인데 잘려면 아직 멀었는데 냉장고에서 쉬어터진 김치를 꺼내 찌개를 끓여

한 큰 술 두 큰 술

맛은 잘 모르겠고 일단 오늘의 초라한 저녁밥을 먹어나 보자고요

6시 전에 이미 양치가 끝나고 라디오에선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익숙한 하지만 너무 먼 세상의 모든 음악들

나는 그 먼 나라들을 가본 적 없고 끽해야 마이애미 갔을 때 잠시 들렀던 과테말라 산 마르코스 호수에 나무로 지은 집과 안티구아 낯선 거리의 낯선 사람들. 그 위에 둥둥 떠 댕기던 하얀 구름과 짙은 하늘을 소환시켜요

그런데 과테말라 음악은 뭐지. 갑작스레 궁금하여 유튜브로 검색해 보는데 온갖 알고리즘으로 맞닿은 건 카에타노 벨로주의 꾸꾸루꾸꾸!!!

오래전 2002년 파리에서 간판 포스터만 보고 들어간 극장에서 이 노래가 나왔는데 운명처럼 만난 이 음악은 언제나 들어도 처음 접한 그때의 감동 그대로예요

영화 제목은 그 유명한 페드로 알마도바르의 그녀에게!!! 그는 너무 애정하는 감독 중에 하나이고요

오늘은 뭔가 새로운 소식이 없을까 하고 보는 뉴스는 1분만 지나면 이 세상에 일어난 사건들 너무 알겠고 너무 알겠으니 제발 그만 좀 죽이세요!!!

어쩌다 이 세상이 전쟁터로 변해버린 것일까요

어제 본 뉴스가 무서웠는데 오늘 본 뉴스는 더 소름 끼치고 내일 볼 뉴스는 보나 마나 공포가 될 것이에요

여덟 시면 이불을 깔고 오늘하루 참 아름다웠노라 하고 그 큰 침대에 홀로 훌러덩 누우면

똥을 싸고 씨게 모래를 차던 모모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뛰쳐와 내 허벅지 사이로 어김없이 겨 들어와요

노상 주문처럼 몇 마디 짧은 기도를 마치고 눈을 감으려는데 아! 참 약을 안 먹었지

모든 게 그럭저럭 아름다웠는데 약을 빼먹었어요. 난 약 없이 수면에 들어갈 수 없는 불편한 몸이라서요

스스로 잠을 이룰 수 없는 엉터리라 순간 우울해졌는데 모모가 어서 자자고 야옹야옹하네요

그 소리가 아름다워서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다시금 깨닫고

적적한 침실의 냉기가 온기로 바뀌고 침대 조명이 아스라이 사라지며

아 오늘 하루 그렁저렁 아름다웠노라!!!

눈을  지그시 감고 길게 아주 길게 숨을 내리 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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