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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모지민 Feb 02. 2023

아름다운 꿈이고 싶다

Dear henry

아침

여전히 겨울

여전히 나는 이곳에 너는 파리에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모조리 추억이고

그 기억을 회상하면서 다시 만날 날을 속절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나는 어제 문득 내 나이를 알아차리고 놀랐다

나는 이제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 오십이 된다

아니 나는 머지않아 그 나이에 도달한다

아니 내겐 아직 적당한 시간이 남아있다

너의 나이를 쫓아가려면 한참은 더 살아 내야 하지만

나는 너무 일찍 인생을 알아차린 것일까

조금 천천히 알아도 될 것을 뭐가 그리 급했던 사연일까

잘못된 선택과 그릇된 시작

지난한 운명의 문은 너무 이른 시간에 가차 없이 열렸고 그로부터 과속으로 끌려왔다

끌려 왔는지 달려왔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너를 이천이십 년에 만났고 지금의 시간은 이천이십삼 년이다

무심한 세월 속에 우리의 끈은 여전히 무사하다

너는 삶의 끝으로 가고 있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겨우 간신히 도달했는데 또다시 어디로 출발해야 하는 것일까

어디로 가면 이제 됐다고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안식할 수 있을까

인생 어렵다

문득문득 사라지고 싶고 섬뜩 섬뜩 겁에 질린 아이처럼 떨고 있다

나는 특출 나게 비겁하다

시시로 숨고 싶고 불쑥불쑥 도망치고 싶다

비관으로 낭비한 시간이 허다하다

그것들로 인생의 절반 이상은 그러하다

그러다가도

자빠지면 안 돼! 구더기로 득실거리는 뼛속 골수에서 버럭! 소리친다

내일은 보다 미더운 일로 냅다 소리칠 거야

다른 날에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웃음을 지을 거야

너무 과한 욕심에 일상이 위태위태하기도

너무 과한 근심에 일상이 추락하기도 한다

미덥지 못한 것들은 보따리에  까득 담아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던져 버려야겠다

아님 열기구에 실어 네가 사는 곳으로 날려 보낼까

아님 잠시 너의 곁으로 날아가 누워있을까

아님 전라도 끄트머리까지 질질 끌고 가 바람찬 신작로에서 싹 다 불 질러버릴까

타버린 재는 고공으로 흩어져 내가 사는 곳엔 더 이상 얼씬도 못하게 해야겠지

다 버리고 다 타버리면 나는 전 보다 평온한 숨을 쉬고 있을게

부평초처럼 살고 싶다가도 미련 때문에 미련 때문에 나는 아직 여기 이렇게 너와 너무 먼 곳에 있다

오늘 하루는 겨울이다

파리의 겨울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겠지

내일은 내일의 겨울과 그 겨울의 다른 하루

따뜻한 장갑을 끼고 찬 공기에 입김을 "호호" 불어야지

눈썹 휘날리며 바람산 정상에 올라가 "야호"하고 소리 질러야지

나의 아침은 이제 마침표를 찍고 정오로 넘어간다

해는 그 시간으로 서서히 아주 서서히 오다가도

해를 감지하는 순간 쏜살같이 서쪽으로 달아난다

얕은 어둠이 짙은 어둠으로 모두가 그 시간에서 지리멸렬 소멸되고

나는 남아있는 시간의 숨을 간신히 들이쉬고 잠에 들겠지

밭은 숨이 꿈에서는 온전한 숨으로 온화한 공기를 들이마실 거야

오늘은 아름다운 꿈이고 싶다

부디, 그렇게, 무엇으로든 아름답게

보고 싶다. 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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