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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Apr 24. 2023

배우와 덕후(2014년 언젠가)

세상에 내보인 적 없었던 이야기

며칠 전,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발신인 주소가 없는 편지였다. 우표를 보니 낯익은 사진. 그것은 배우 최강희였다. 사실 얼마 전에 최강희 씨 트위터에 글이 하나 올라왔었다. 며칠 째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편지를 보내 온 일부 팬들에게 시간이 허락할 즈음, 답장을 해 줄 거라는 말을 했다며 팬 카페를 통해 들은 적은 있었다. 설마 하며 넘기고 있었는데 그 편지가 내게도 왔다. 꿈같은 일이었다. 배우에게 받는 편지. 흔하지 않는 일이었기에 편지를 받은 이후 며칠 밤을 이루지 못했다. 편지를 받은 일부 팬들은 기쁨과 놀라움에 잠을 이루지 못 했을 것이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쓴 편지. 왼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팬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팬들에게 손편지를 주던 강짱

몇 년 전, 우연히 기사 하나를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즐겨 보던 청소년 드라마 ‘나’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최강희 씨가 라디오 디제이로 복귀한다는 소식이었다. 워낙 드라마 때부터 팬이었고 이미‘강짱’으로 소문난 디제이였기에 나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지방에서 주파수가 잡히지 않아 듣기가 어려워 인터넷으로만 들을 수 있었던 나는 ‘최강희의 볼륨을 높여요’를 듣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배우가 <보이는 라디오> 화면에 잡히고 그런 디제이에게 사연을 보내면 내 이름이 불리면서 신청곡을 틀어주는 게 신기하여 매일 밤 여덟 시부터 열 시까지 빠지지 않고 라디오를 들었다. 그 프로 안에서 전국에 사는 여러 청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얘길 함께하며 굳이 나의 모든 사정을 얘기하지 않아도 조금씩 힘들었던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개편이 되면서 최강희씨는 심야 시간대로 이동하였고 저절로 나는 디제이를 따라가게 되었다.‘최강희의 야간비행’이란 코너에서도 여전히 나의 이름은 디제이를 통해 자주 불리게 되었다.


‘최강희의 야간비행’을 들으면서 잊지 못할 일이 있다. 청취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른 최강희 씨는 녹음 방송이 있던 날에도 늘 생방송처럼 라디오 게시판에 접속하여 청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악이 나갈 때 음악 얘기를 하고 청취자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을 해줬다. 라디오 속 디제이와 함께 사는 기분이었다. 그저 자신이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만일지도 모르는데 라디오에 애착을 갖고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어느 날은 힘든 일이 있던 내게 디제이가 어떻게 알았는지 녹음 방송이던 날 청취자 게시판으로 찾아와 수술할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미니 홈피를 관리하며 수많은 팬과 일촌인 최강희 씨는 늘 팬들을 찾아가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본다는 얘길 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기억한 나는 감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굳이 일일이 얘기하지 않아도 팬들에게 닥치는 어려운 일들을 다 알고 있는 디제이였다. 그것은 나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떤 청취자가 이사를 잘했는지 어떤 청취자는 집에 잘 들어갔는지 일일이 걱정하여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이미 골수 기증으로 기부 천사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지만 최강희 씨는 라디오를 진행하면서도 사적으로 준비한 선물을 팬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동화책을 추천해달라는 청취자에게 좋아하는 동화책을 선물해주기도 했다.“제 것도 사면서 여러분 주려고 샀어요.”하며 지극히 사적인 이벤트를 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디제이 덕에 늘 불안하고 우울하고 힘들던 내 삶은 놀랍게도 큰 힘이 되었다.

 

강짱이 팬들에게 나눔한 선그라스

 그러던 중 나는 아버지를 잃었다.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던 날들을 보내던 중이었다. 다시 찾은 일상을 간신히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할 무렵, 그렇게 아버지가 떠난 두 달 후, 다른 팬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적당히 친분이 있었기에 기꺼이 만났고 그 친구는 내게 종이 가방 하나를 건네었다. 그것은 책과 음반이었다. 강짱이 전해주랬어요. 라는 말과 함께 내미는 그 종이가방을 떠는 손으로 받았다.


 그러곤 집에 와서 책을 펼쳤다. 짧은 편지글이 있었다.

 주님이 주신 마음이에요.

무얼까 책을 펼쳐보니 흰 봉투였다. 알고 보니 아버지 돌아가시고 위로금으로 보낸 것이었다. 백만 원이라는 큰돈이 보였고 그 돈 앞에서 너무나 많은 생각을 했다.


유명한 배우라는 사람이 일개 수많은 팬 중에 하나인 나를 위로해주려 두 달이라는 시간을 고민한 뒤 내게 따듯한 마음을 주었다는 데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봉투가 들어있는 책의 제목은 ‘친구’였다. 빛나는 배우와 친구로 이어진 기분이었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니 지금은 불혹의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덕질을 하고 있는 덕후다.



 늘 몸이 약한 탓에 고민을 얘기하고 슬픔을 얘기하면 굳이 대답 하지 않아도 대답을 한 것처럼 위로해주는 디제이 최강희! 지금은 연기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라디오를 놓았지만 청취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배우 최강희씨는 드라마나 영화가 끝난 지금도 수많은 팬에게 힘이 되고 있다. 그 따뜻함을 겪어본 사람은 알게 될 것이다. 그만큼 한 사람의 힘은 우주보다 더 큰 위로를 준다는 걸 실감했다. 나는 여전히 배우 최강희, 그리고 영원히 남아있는 디제이 강짱을 응원할 것이다. 그녀는 배우고 나는 덕후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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