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리 Apr 24. 2023

서른셋, 인삼 아빠(수상록)

제2회 충청남도 여성 청소년 문학상 최우수상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손목시계는 초침 소리가 참 크다. 정말 크다. 조용한 장소에 있을 땐 가방 속에 콕 숨겨놓고 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지만 난 이 소리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남편과 늘 함께 있는 것만 같아서 말이다.


 우리 남편은 인공 판막기를 심장에 달고 있어서 조금만 조용하면 조금의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똑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쉬지 않고 들리는 이 소리가 내게는 지금 익숙해졌는데 오늘 카페에서 신랑이 이런 말을 했다.

"잠잘 때도 자기 시계 소리는 엄청 크게 들리더라."

"그렇긴 하지? 난 그래도 이 시계 소리 좋던데. 자기랑 항상 같이 있는 거 같아서"

"난 싫은데. 처음엔 나한테서 나는 소린 줄 알았어. 내 소리가 이렇게 컸나 싶어서"

"……"

"내가 요즘 우리 아기 일기 왜 쓰는지 알아?"

"왜 쓰는데?"

“사실 좀 슬픈데”

나도 모르게 이 때부터 눈물이 고였다. 신랑 눈도 어느새 촉촉해졌다.

“혹시라도 우리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내가 이 세상에 없으면 나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를 알려주고 내가 얼마나 우리 아이를 사랑하는지 알려주고 싶어서"신랑 말에 고인 눈물을 잡아둘 새도 없이 줄줄 흐르는 눈물로 내 마음을 드러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왜 그런 생각을 하나?”

바보 같은 우리 신랑! 이내 다시 활 짝 웃으며 하는 말.

“원래 이런 사람이 더 오래 사는 거야.”

 그렇게 우린 또 웃었다.


 몇 년 전, 언니의 미니홈피에서 본 일기 내용이다. 결혼한 지 4년이 다 돼 가는 언니와 형부는 연애 시절 큰 아픔을 겪었었다. 형부는 오래전부터 시작된 감기가 나이지질 않고 더욱 심해져서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심장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지금 몸이 꽤 심각해졌다는 의사의 말에 ‘심내막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서둘러 입원했다. 형부는 검사를 하면서도 상태가 더욱 나빠져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도 없다는 의사의 무서운 말까지 들어야 했고 대전에서 응급으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겨 급기야 인공 판막기를 다는 수술을 받았다. 깨어날지 말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을 정도니 꽤 심각했었던 시간이었다. 수술 후에도 감염의 위험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며 여러 번의 고비를 겪어야 했던 형부와 언니는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금산이 고향인 형부는 대전으로 따로 나와 살아 같은 대전에서 만난 언니였던지라 서울에서의 병원 생활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충남 금산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이 오실 수 없는 형편에 강사 일을 접고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곁에서 형부를 지켰다. 의사는 기적이라고 했다. 언니는 고통의 시간을 잘 견뎌 준 형부와 부부라는 결실을 맺어 지금은 네 살 아들의 아빠, 엄마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수술 이후에 회복 기간이 필요했던 형부는 하던 회사 일을 자연스럽게 그만 두고 집 뒤에 있는 뒷산을 매일 같이 오르며 몸을 챙겼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맑은 마음을 가진 형부였던지라 더 조심해야 할 것도 많았고 평생을 매일 약을 먹어야 했기에 가릴 것도 많은 음식 앞에서 늘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혼을 결심한 두 사람이었지만 앞으로 살아가는데 해야 하는 일을 고민해야 했던 형부는 오랜 고민 끝에 부모님이 하시는 인삼 농사일을 도와 홍삼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매일 아침 대전에서 금산으로 출퇴근을 하며 새벽부터 일하시는 부모님의 인삼 농사를 거들었다. 처음부터 모든 걸 차근차근 배워나가기 시작한 형부는 여러 가지 공부를 하며 오로지 인삼 공부에만 깊이 파고들었다.

 

 금산에서는 인삼이 유명한 걸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형부는 직접 경험해보니 인삼 농사도 자식 농사랑 다를 게 없다고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정성과 사랑 없이는 도저히 키울 수 없는 자식. 그 모든 자식들이 농사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신기하게 반짝반짝 빛나더란다. 그리고 사람처럼 예쁜 자식이 있고 못난 자식도 있듯이 아롱이, 다롱이처럼 여러 가지 모양의 생김이 다른 인삼들을 볼 때면 얼마나 신기하고 재밌는지 모른다며 여러 가지 인삼의 재밌는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특히나 요즘 같은 9월, 매년 빼놓지 않고 열리는 ‘금산 인삼 축제’가 올해로 33번째라고 한다. 딱 형부와 동갑인 나의 나이만큼의 햇수다. 그래서 지금 형부는 매우 바쁘다.


 밖에서 캐자마자 바로 내보내는 수삼, 수삼을 말린 것이 백삼, 6년 가까이 껍질을 벗기지 않은 수삼 그대로 찌는 것이 홍삼. 이렇게 인삼 삼형제를 세상에 내 보내기도 하지만 형부는 그중 가장 오래 품고 있는 홍삼이라는 자식을 내보낸다. 그런 자식 농사를 지켜봤기 때문에 가끔 뉴스에서 홍삼에 무엇을 섞어 팔았다는 소수 몇몇 나쁜 사람들 때문에 전체가 오해받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온몸이 부서져라 일하시는 부모님과 같이 땀을 흘려 일하는 형부를 옆에서 보면 그렇다. 정성껏 키우는 자식들인데 내 자식이 아닌 다른 자식이어도 같은 흙에서 자란 자식들인데 밖에서 욕을 먹으면 얼마나 속이 상했겠는가. 그러나 또 그런 형부를 든든히 여기고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런 자식들을 사랑하며 아끼고 자신 있어 한다는 것이다. 서른셋이라는 많지도 적지도 않는 젊은 나이에 컴퓨터 앞에서 일만 하던 형부가 흙을 만지고 파내고 씨앗을 뿌리고 선별을 하고 어느 것도 형부 손을 거치지 않는 금산의 자식들, 인삼! 그것을 지키는 형부가 나는 최고로 자랑스럽다.


 네 살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는 형부이지만 같은 사랑으로 인삼이라는 자식들을 키우고 있는 형부는 지금도 여전하게 똑딱똑딱 소리를 언니에게 들려주며 서로를 사랑하고 살고 있다. 맞벌이하는 언니를 배려하여 매일 아침 금산을 오가는 형부의 그 똑딱똑딱 소리에 금산의 흙속에서 자라고 있는 예쁜 자식들은 어딜 가든 사랑 받기를 바란다. 특별하고도 위대한 형부와 언니의 사랑이 말해줬듯이.

작가의 이전글 가혹한 서른님, 따듯한 차장님(수상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