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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Apr 24. 2023

외할머니의 숟가락(수상록)

2013년 샘머리 백일장


외할머니는 무속인이셨다. 엄마 위로 두 자녀를 잃은 충격으로 쓰러지시더니 갑자기 헛소리를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신 내림을 받았다는 얘기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셨던지라 가족들이 받아들이기엔 충격이었다고 한다. 시간이 약이듯 외가 식구들은 모두 인정하게 됐고 외할머니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아기 동자’로 불리며 그렇게 몇십 년의 세월을 무속인으로서 또 포도밭 농장 주인으로서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면서 사남매를 거닐며 씩씩하게 살아오셨다.

  

어느 날 갑자기 외할머니는 사물이 뿌옇게 보인다고 하셨다. 걱정돼서 엄마는 급하게 병원으로 모셔갔고 외할머니는 백내장 진단을 받아 수술했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자식들의 요양을 받으며 회복되어 갔다. 자식들과 사는 걸 무척이나 꺼리셨던 외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하셔서 가족 반대에도 고집을 피우다가 끝내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렇게 몇 년 후, 외할머니는 사후관리를 잘못하시다가 두 눈을 실명했다. 외할머니는 하루아침에 누구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불쌍하고 애처로운 노파가 되셨다.

  

모두가 바쁘게 살다 보니 외할머니 옆에서 상주하며 돌볼 수 없는 형편인지라 식구들은 의논 끝에 요양병원을 택했고 근처에 모시며 수시로 찾아뵈었다. 다른 사람의 소원을 대신 빌어주고 아픈 사람을 위해 굿을 해주며 살던 자신의 직업은 온데간데없이 외할머니는 무속인의 삶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남은 건 당신이 받들던 신의 자녀가 아니라 의사 손을 붙들며 앞을 보게 해달라 애원하는 환자일 뿐이었다.

  

그렇게 외할머니의 요양병원 생활은 점점 익숙해져갔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공포와 슬픔으로 누워만 계신 외할머니는 갑자기 식탐을 보이기 시작했다. 식사량을 고려해야 하기에 아무거나 드실 수 없는 상황이었고 모든 걸 으깨서 아기처럼 떠먹여 드려야만 겨우 드실 수 있었다.

  

엄마도 아기 때는 외할머니 손에 무엇이든 받아먹었던 시절이 있었을 테고 그런 엄마가 나를 낳아 나도 엄마 손이 먹여주는 밥을 먹고 이만큼 자랐다고 생각하니 한쪽 가슴이 시큰거리면서 눈물이 났다.

  

엄마는 손에 들고 복숭아를 깎아 숟가락으로 으깨어 외할머니 입에 넣어 드렸다. 눈물이 고인 엄마, 해맑은 표정을 지은 외할머니의 감은 눈 밑으로 늘어진 주름만큼이나 슬픈 세월이 내 마음을 휘감는 듯했다. 한입 베어 물더니 ‘거 참 달다’ 라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셨다. 한 입 드시고 또 달라고 입 벌리는, 마치 아이처럼 외할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단내가 병실을 가득 채우고 있단 사실을 알았을 때 외할머니가 드신 숟가락을 보니 단물이 묻어 반짝거렸다. 그것은 별이 되어 엄마의 눈에서 흐르고 있었다.

  

외할머니의 인생에서 잠깐의 달디단 행복을 주었을지도 모르지만, 엄마에게는 엄마를 잃을지도 모르는 불안과 슬픔을 애써 감추어야만 했던 거짓말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웃어야 하는 엄마의 눈물을 외할머니는 절대 볼 수 없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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