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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K Mar 23. 2020

온전히, 완전한 엄마

“엄마 어디쯤 왔어? 나 금방 도착하니까 내리자마자 전화해~ 알겠지?”

“응? 으응..”


어딘지 모르게 엄마의 목소리가 석연치 않았지만 그저 사람 많은 기차 안에서 전화를 받은 탓이라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날은 몇 달 전 퇴직한 엄마가 내게 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엄마 껌딱지였던 나는 하루 종일 엄마의 치맛자락이나 바짓단을 야무지게 잡고 있는 게 일과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통하지 않는 나이가 된 이후로 나에게 엄마는 늘 부재했다. 집에 있을 때면 부엌에서 뒷모습만 보이는 엄마는 밖에서는 소녀처럼 해맑고 상냥해 인기가 많았는데 나에겐 그것이 덜 자란 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늘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와 성과를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점점 엄마를 멀리서 지켜보는 것에 익숙해져갔다.


2006년 11월, 어지간한 일은 혼자 해내는 나였지만 첫 아이를 낳는 두려움과 칼로 베는 듯한 진통 앞에서 나는 엄마가 간절했다. 열네 시간의 진통이 끝나갈 무렵 나의 협박에 못 이겨 가까스로 도착한 엄마가 내게 한 첫마디는 '낳는 것만 보고 가려고…'였다. '일 때문에.. 미안해..'라며 돈봉투를 쥐어주고 떠나는 엄마를 보며 익숙했던 서운함은 분노가 되었고, 곁에서 출산 분비물을 받아내는 남편을 보며 원망은 깊은 상처가 되었다. 결국 수년 후 명절날 조차 나를 기다리지 않는 엄마와 장모님의 따뜻한 밥 한 끼가 그리운 사위, 할머니의 품이 그리운 아이 앞에서 곪을 대로 곪은 상처는 이성을 잃고 터져버렸다.


왜 그렇게 일이 중요하냐며, 일부러 바쁜 척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먹고 살만큼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돈이 필요하다는 것도 아닌데, 왜! 왜 그렇게 일을 해야 하냐며 생살이 따갑도록 나는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고도 분을 삭이지 못해,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딸한테 얼굴 한번 못 보여주냐며 그렇게 일이 좋으면 앞으로는 돈으로만 엄마 노릇하라고 쓰라린 감정까지 다 끄집어내고야 말았다. 나는 조금도 후련하지 않았고, 내가 필요한 순간에도, 내가 애원하는 순간에도 곁에 없던 엄마는 내가 화를 내는 순간에도 죄인 같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머물 뿐이었다.


2018년 가을, 그런 엄마가 비록 무릎 수술 상담 때문이었지만 내가 있는 서울에 오는 날이었다. 오래 기다렸던 만큼 나는 엄마를 독차지할 생각에 설레었고, 늘 할 말만 하고 끊어야 했던 전화통화 대신 오늘은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고 점찍어둔 맛집도 함께 갈 심산이었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삼 년 전 내가 사준 패딩점퍼를 입은 엄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춥지도 않은 날씨에 모자까지 뒤집어쓴 엄마는 마스크와 목도리로 얼굴을 가린 채 초점 잃은 눈으로 방황하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자 ‘추워서..’라고 말하는 엄마의 입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났고, ‘딸 보러 오면서 양치도 안 하고 왔어?’라고 타박하는 나의 투정을 외면한 채 엄마는 갈 길만을 재촉했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 진료가 끝나자마자 밥도 먹지 않고 바로 내려간다는 엄마를 겨우 붙잡아 하룻밤만 자고 가라고 데려간 순두부집에서 엄마는 한 숟갈도 삼키지 못했다.


“독감은 아닌 것 같고요. 항생제 드시고 쉬시면 금방 좋아지실 거예요.”


삼십 년 가까이 아프다는 이유로 일을 쉬어 본 적 없고 할아버지 다음으로 장이 튼튼해 대장부처럼 잘 먹던 엄마가 수상쩍어 데려간 병원에서 의사가 말했다. 내내 말이 없던 엄마는 독감 검사를 해 보자는 의사에게 온몸에 뭐가 났었는데 며칠 지나니 사라졌다며 어린아이처럼 굴었고, 나는 다행히도 독감이 아니라는 의사의 말에 그저 안도했다.


“물. 물. 물 좀 줘!”


다음날 아침 화가 난 듯한 엄마의 외침이 날카롭게 내 귀에 꽂혔다. 방 안은 온통 엄마의 입냄새로 가득했고, 뜨거운 몸으로도 나의 아침잠을 깨우기가 미안했던 엄마는 겨우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엄마를 보자 다급해진 나는 119에 도움을 요청했고 구급차 안에서 40도가 넘는 고열에 대해 묻는 대원에게 엄마는 정신을 놓은 듯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응급실에서는 온갖 검사를 다했지만 저녁이 돼가도록 원인을 찾지 못했고, 돌처럼 누워있는 엄마는 가만히 들여다보아야만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난생처음 보는 엄마 앞에서 늘 시댁을 먼저 챙겼던 자신과 내 욕심대로 완전하게 있어주길 바랬던 지난날들이 떠올라 속이 움푹움푹 패이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엄마가 너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실은 엄마가 2주 전부터 아무것도 제대로 못 먹었어. 너 몰래 두어 달 전부터 도로에서 조경 전지작업을 했는데 그것 때문인지… 큰 병이 아니어야 할 텐데…”


아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참았던 눈물이 뜨겁게 솟구쳤다. 지난밤 엄마는 오늘 일을 예견한 사람처럼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이혼으로 힘들었던 남의 집 살이를 힘겹게 털어놓았고, 나는 이제 와서 면죄부처럼 꺼내놓은 이야기가 불편하고 못마땅해 퉁명스러웠다. 언젠가 꼭 한 번은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던 엄마의 그 말이 마지막 말처럼 목에 걸려 잠시도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가을철 열성질환 ‘쯔쯔가무시증’

엄마의 병명이었다. 도시에서는 발병률이 높지 않은 데다 아빠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치료시기를 놓쳐 힘들뻔했다는 의사의 말에 엄마가 원망스러웠지만 화를 낼 수 없었다. 평소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던 엄마는 3일 만에 안색이 돌아왔지만 무릎에는 물이 차올랐고 양쪽 다리는 통증이 심해져 움직이지 못했다.


"엄마,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왜 사실대로 말 안 했어?”

“그냥... 그냥 너를 화나게 하는 게 싫었어..."


생각 못한 대답에 내 마음은 또다시 내려앉았다. 늘 내가 원하던 엄마는 없다고, 할머니나 아빠에게 떠넘기고 내 말에는 관심도 없다고 소리치던 지난날의 내가 스쳐 갔다.

표정 없이 담담히 말하는 엄마의 소변을 받아내며 나는 처음으로 나의 모든 것을 받아내던 엄마가 항상 곁에 있었음을 느꼈다. 완전한 엄마가 아닌 온전히 나를 믿어주고 받아주던 엄마. 나도 그렇게 엄마 곁에 있고 싶어 졌다.


며칠 후 엄마는 퇴원을 했지만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내 일상을 차지했고, 망설임 끝에 나는 여전히 내 눈치를 보며 일터에 나가 있을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고마워.. 엄마. 살아줘서.. 그동안 내 욕심 때문에 엄마 힘들게 한 거 정말 미안해..


그리고 엄마는 여느 때처럼 한발 늦게 변함없는 온기를 보내왔다.


무슨 그런 소릴. 예쁜 우리 딸 사랑해.








월간 <좋은생각> 제15회 생활문예대상에 '엄마가 온다'로 응모했던 글입니다.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퇴고를 보태 추억으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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