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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닝킴 Sep 10. 2024

그래서 못난이였구나

못난이 아파트를 피하는 방법 3가지.

 취업을 위해 시험공부했던 시절 이후로 이렇게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인기 있는 강의길래 오픈한 지 1분도 안 돼서 마감이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강의를 들었고, 듣고 나서는 내가 모르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생의 첫 부동산 강의는 부동산 왕초보를 대상으로 내 집 마련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였다. 대중이 선호하는 무난한 아파트를 각자의 예산 범위 안에서 찾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리고 마지막 즈음에는 소소하지만 왕초보에게 꼭 필요한 꿀팁인 부동산에 전화하는 방법, 부동산과 연락 후 꼼꼼하게 집을 보는 방법도 알려줬다. 강의를 들으면서 점차 알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 집이 왜 못난이 아파트였는지, 또 나의 첫 신혼집 또한 왜 못난이였는지를.      


◎ 사람들이 선호하는 아파트를 고르는 방법 첫 번째.

직장과 가까워야 한다.

여기서 직장이란, ‘나’의 직장이 아니라 대중의 직장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울에 직장이 있고 그 직장은 대부분 여의도, 광화문, 강남에 포진해 있다. 즉 이 세 지역과 가까운 곳에 있는 집일수록 사람들이 선호한다. 강의는 유독 서울 집값이 높은 이유를 반박할 수 없는 데이터를 보여주면서 납득시켰다.

 아빠의 직장은 고양시와 파주시를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나 또한 첫 발령지가 파주였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 집과 나의 신혼집은 대중이 선호하는 곳과 비껴있었고, 그것이 못난이인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그래서 애초에 집값이 싸기도 했다.     



◎ 사람들이 선호하는 아파트를 고르는 방법 두 번째.

교통이 좋아야 한다.

여기서 교통이란, 자동차 도로가 아닌 대중교통, 그중에서도 특히 지하철을 뜻한다. 그리고 지하철 노선도 다 같은 게 아니었다. 아까 말한 여의도, 광화문, 강남을 환승 없이 가는 노선이 좋은 노선이다.

 아빠는 늘 자동차로 출퇴근을 했고, 사람 많고 차가 많은 동네는 싫다며 점점 외곽으로 이사했다. 이사를 하면서 중심지에서는 멀어졌지만 ‘우리 동네에 오기만 하면 차도 안 막히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너무 좋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집값 상승과 완전히 반대되는 선택이었다. 차가 막혀야 좋은 곳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가야만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특히 지하철이 중요한 것이다. 지하철은 차가 아무리 막혀도 늘 제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게 해 주니까 말이다.

 아빠는 지금도 운전을 좋아한다.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난 것 같다. 지방에 어디를 가느라 5~6시간씩 운전하는 것도 나서서 할 정도로 운전을 좋아하신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 사람들이 선호하는 아파트를 고르는 방법 세 번째.

학군이 좋아야 한다.

비학군지 출신으로써 어릴 땐 학군의 중요성을 모르고 살았다. 비교군이 없으니까. 어른이 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그곳에서 이만큼 성장한 나와 내 동생이 스스로 기특할 지경이다.


비학군지에서 겪었던 나의 실제 경험담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반에 아주 착한 남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는 쉬는 시간마다 늘 책을 읽었고, 몸이 약해 급식 말고, 어머니께서 따로 챙겨주시는 도시락만 먹었다. 그 아이가 읽는 책은 또래보다 수준이 높았고 거기에 호기심이 생긴 나와 몇몇 친구들은 그 책을 빌려 읽곤 했다. 우린 같은 책을 읽었기 때문에 읽고 나서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독서토론이다. 그걸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했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중학교로 진급했다. 입학 첫날, 그 아이는 소위 일진이라는 다른 학교 출신의 남학생과 복도에서 어깨가 부딪혔다는 이유로 화장실로 끌려가 심한 물리적 폭력을 당했고 다음 날 소리 소문 없이 곧바로 전학을 갔다. 잘 가라는 인사조차 못했다. 그 못된 일진은 그 뒤로도 반성은커녕 오히려 자신만만했다. 일진과 같은 반이었던 나는 소소하게 돈을 뺏기거나, 종종 성희롱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때는 학교폭력이라는 말도 없었던 시절이라 일진에게 찍히지 말자는 생각뿐,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이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지내다가 내년에는 다른 반이 되기만을 바랐다.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나와 같은 경험은 절대 시켜주고 싶지 않다. 내 아이 주변에 그런 비행을 일삼는 학생이 없는 동네가 있다면 몇억을 더 내더라도 그런 곳을 찾아갈 것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학군지를 찾아간다.


 ‘비학군지라고 아이들 다 나쁜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예, 저도 알아요. 저도 비학군지 출신이고, 비학군지에서 일하고 있어요. 하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어요. 이게 사람 마음 아닌가요?”           





+) 부동산에서 직장, 교통, 학군이 중요하다는 이런 당연한 얘기를 넌 몰랐니?라고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근데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분명 또 어딘가에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내가 스무 살 즈음에 같은 중학교 출신 친구에게 들었다. 그때 그 일진은 오토바이 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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