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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닝킴 Sep 18. 2024

인생 첫 임장

살고 싶은 동네를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강의의 마지막 숙제는 내가 살고 싶은 동네 임장이었다. (임장이란, '현장에 임한다(나오다)'는 뜻의 한자어이다. '발품을 팔다' 혹은 '방문하다'로 순화할 수 있다. 출처: 나무위키)

     

 강의 업체는 살고 있는 지역별로 수강생들을 묶어 임장 조를 짜주었고, 살고 싶은 동네를 함께 임장 하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낯을 가리는 성격인데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서 같이 걸어 다니라 하니, 어떤 핑계를 대고 못 간다 말할까 그 생각부터 했다. 인원이 8~9명쯤 되니까 나 하나쯤은 없어도 티 안 나서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은 친한 지인이 말했다.

 “모르는 사람들이랑 만나서 임장을 간다고? 와! 너무 재밌겠다. 나는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는데?”

그 말에 용기가 생겨 눈 딱 감고 나갔다.    

  

 임장조에 따로 리더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임장이 처음인 사람들 같았는데 다행히도 기존의 다른 강의를 들어본 수강생이 한 분 계셔서 그분이 임장 루트를 짜주셨다. 임장 당일 임장 루트를 지도에 빨간색으로 표시해서 인원수에 맞춰 프린트해 오셨고, 걷다가 힘들면 먹으라고 작은 초콜릿도 하나씩 나눠주셨다. 그 모습이 매우 프로처럼 보였고 낯선 사람의 생소한 친절이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그분은 내 집 마련 보다는 투자가 목적이라 부동산 투자강의를 듣다가 이건 안 들어본 강의라서 이번에 듣게 되었다고 했다.


 약속시간이 다 되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고, 각자 본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모닝킴이고요. xx동 살아요.”

길 한복판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둥그렇게 서서 자기소개를 하는 광경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계속 흘깃 쳐다봤고 난 그때마다 얼굴이 붉어졌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꾹 참았고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분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나의 첫 임장지는 1기 신도시의 중 한 곳의 대장단지 주변이었다. 강의에서 살짝 언급이 됐었던 동네로 이 지역에서는 나름 인기 있는 중학교가 위치한 동네였다. 베드타운이라 일자리는 없지만 교통과 학군이 좋은 곳이었다. 임장 루트를 보며 사람들과 함께 그 동네를 걸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강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 동네에 대해 알고 있는 서로의 정보들을 나누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동네를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비교가 되었다. 때는 4월이었고 선선한 바람이 계속 불어 주어 걷는 동안 기분이 좋았다. 동네도 좋은데 날씨까지 좋아서 더욱 그 동네와 사랑에 빠지게 했다.


 ‘내가 사는 곳은 신축이라 그런지 젊은 부부나, 영유아가 많은데 여기는 중고등학생들이 더 많이 보이는구나. 어르신분들도 많이 보이네. 그리고 산책하기 편하게 길이 굉장히 넓다. 자전거 타는 사람과도 부딪힐 걱정이 없어 보여. 내가 사는 곳은 길이 좁아서 자전거가 오면 한쪽이 비켜줘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우리 아파트 주변에는 학교가 없구나.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던 거였군. 만약 내가 아이를 낳으면 초등학교는 어디로 가는 거지?’     

 부동산에 대해 전혀 몰라도 알 수 있었다. 이곳이 더 살기 좋은 동네라는 것을. 집값을 떠나 동네가 더 정돈되고 안정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거구나. 그래서 임장을 하는 거구나.” 

 임장한 곳은 지금 사는 곳 보다 서울에서 20분을 더 지하철 타고 들어와야 하지만 편의시설도 더 많고, 깨끗하게 정비된 공원이 많아 산책할 곳도 많고, 학군도 좋다고 하니 여기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한 시간 정도의 임장을 마치고 근처 카페에 들어가 임장 소감을 나눴다.

“살기 정말 좋은 동네인 것 같아요. 다만, 서울에서 너무 멀어 출퇴근이 힘들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직장이 강남이라 지금보다 더 멀어지는 건 곤란해요.”

“직장이 서울이 아니라 이 근처라면 더할 나위 없겠어요.”

나는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생각과 내 생각이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들 보는 눈은 거기서 거기구나.’     


 자기소개를 하면서 같은 동네 사는 사람들이 2명 더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그분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두 분은 어느 단지 사세요?” 내가 물었다.

 “저희는 아까 얘기했는데 같은 곳이더라고요. 저희는 H에 살아요. 모닝킴님은요?”

 “저는 A단지에 살아요.”

 “아~ 저 뒤쪽에 사시는구나.”     

 ‘저 뒤쪽? 그렇게 뒤쪽은 아닌데.. 우리 집도 역에서 걸어서 5분밖에 안 걸리는데.’


 약간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웃으며 맞다고 했다. 그분들이 사는 H는 지하철역과 바로 연결이 된 곳이니까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거긴 집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지하철역까지 바로 연결되어 비가 와도 우산 없이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곳이다. 문제는 H는 오피스텔이고, 내가 사는 A단지는 주상복합이다. 이게 왜 문제냐면 강의에서 오피스텔과 주상복합은 사지 말고 아파트를 사라고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파트와 시세차이가 더욱 벌어진다고 했다.

 “지하철과 바로 연결된다고 해서 분양받은 건데 강의에서 오피스텔은 사지 말라고 해서 충격이었어요.”

 “저도요. 저도 주상복합이라 그 부분에서 약간 슬펐어요.”

 “근데 오피스텔이라서가 아니라 언젠가 이사를 가긴 해야겠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지하철역까지는 가깝긴 한데 서울까지 나가려면 그래도 꽤 멀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렇군요.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역에서 나와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재밌네. 오늘 나오길 잘했다. 나도 아까 그분처럼 내 집 마련 말고 다른 강의도 들어봐야겠다.”   

  



+) 모닝킴의 팁

- 아파트 단지도 보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잘 관찰할 것. 어떤 사람들이 주로 이 동네에 사는지에 따라 나의 평가가 달라진다. 내 이웃이 될 사람들이다.

- 아무리 살기 좋은 동네여도 서울과의 물리적 거리가 멀면 매수가 망설여진다. 그러니 대중교통을 꼭 확인.

- 아파트, 학교, 상가 등 주변 환경을 골고루 확인하기. 유흥가 주변이라면 부모들이 꺼려하는 것은 당연. 그리고 인기 중학교의 경우 배정 단지를 꼭 확인하기.

- 날씨가 좋으면 동네가 약간 더 좋아 보이는 콩깍지가 씐다.

- 지금은 비슷하더라도 아파트> 주상복합> 오피스텔 순으로 시세가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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