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견디는 자리에서 배우는 것
2학기가 시작된 첫 날, 아이들의 관심은 자리바꾸기.
누구와 함께 안제 될지, 그 순간이 아이들에게는 작은 운명처럼 다가온다.
친한 친구와 함께 앉게 되면 교실 생활이 훨씬 즐거워질 것이고, 반대로 껄끄러운 아이와 마주 앉게 되면 그 나머지 시간들이 고역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자리배치는 불가능하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껄끄러운 사이인 두 아이가 짝이 되었다.
둘의 성격과 그동안의 서사를 알기에 둘 중 한명이 곧 나를 찾아와 자리를 바꿔달라는 요청을 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둘은 다시 자리바꾸는 그날까지 전혀 친해지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서로를 도와주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싸우는 장면 역시 목격하지 않았다. 서로를 향한 불편함은 분명 있었지만, 그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히 자리를 지켜내고 있었다.
모두와 친해지고,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지내는 것이 이상적인 교실의 모습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인생은 그렇지 않다. 어른이 된 우리도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굳이 친해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불편한 관계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야 할 때가 있다.
아이들이 서로를 무조건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미워하지도 않는 그 ‘묘한 거리’ 속에서 나는 성장의 단서를 본다. 우정과 화해만이 성장이 아니다. 때로는 불편함을 인정하고, 불편함을 견디면서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 역시 중요한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세상에는 반드시 맞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도 배우게 된다. 교실은 그런 삶의 축소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다정함은 없었지만, 그 침묵 속에서 각자의 마음을 다잡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용기일지도 모른다. 갈등을 억지로 해결하기보다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고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버텨내는 것. 아이들은 그렇게 또 하나의 방법을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교사로서 교실을 지켜보며 자주 느끼는 것은,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늘 아이들이 부서질까 조심스레 다루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함 속에서 단단해지고, 침묵 속에서 강해진다.
짝이 된 두 여학생은 앞으로도 가까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묵묵히 견디며 보내는 시간은 분명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 시간이 언젠가 아이들의 마음속에 남아, 불편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낼 힘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들의 묵묵한 모습을 지켜보며 배운다.
성장은 화려한 드라마처럼 눈에 띄게 다가오지 않는다.
때로는 그저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순간 속에서, 가장 큰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