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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닝레인 Oct 18. 2022

2022년 낙랑파라에서.


사진 속 장소는 연남동에 있는 '낙랑파라'라는 카페입니다. 이제는 망원 등에도 생긴 것으로 알아요. 낙랑파라는 1930년대 경성예술인들의 집결지였으며 공예가 이순석과 변동욱이 운영했습니다. 변동욱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변동림이었습니다. (네. 우리가 아는 그 변동림입니다.) 이화여전 영문과 학생이던 동림은 하교 후 오빠 카페 낙랑파라에 들러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가 시인 이상을 만났습니다. 이상이 변동림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하지요. 1936년의 일입니다. 두 사람은 '방풍림 우거진 속으로 철로가 놓여 있는 길'을 걸으며 밤늦도록 데이트를 했습니다. 그러다 이상이 물었지요. "우리 멀리 여행 갈래, 같이 죽을래." 변동림은 죽기는 싫고 여행은 하고 싶어서 여행을 가자고 했습니다. 이상이 앞서 걸었다고 해요. 따라서 한참을 걷다보니 미리 준비해둔 신혼집이 나타났습니다. 아마도 달빛 아래였을 그 길을 상상합니다. 얼마나 고요하고 은밀했는지 걷는 동안 단 한 사람도 마주쳐지지 않았다지요. 변동림의 짐 가방에는 몇 권의 문학책과 외국어 사전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날의 이야기는 이상의 유고 수필 '슬픈 이야기, 어떤 두 주일 동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나는 이 태엽을 감아도 소리 안 나는 여인을 가만히 가져다가 내 마음에다 놓아두는 중입니다… 여인, 내 그대 몸에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으리다. 죽읍시다. “더블 플라토닉 슈사이드( double platonic suicide · 정신적 동반자살)인가요?” 아니지요. 두 개의 싱글 슈사이드지요… 여인은 내 그윽한 공책에다 악보처럼 생긴 글자로 증서를 하나 쓰고 지장을 하나 찍어 주었습니다. “틀림없이 같이 죽어 드리기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를 쓰며 만났습니다. 시인 이상이 세상을 떠난 뒤 변동림은 화가 김환기를 만났습니다. 결혼을 반대하는 가족을 버리면서 변씨 성도 버렸습니다. 남편 김환기의 '김'을 가졌고 환기의 아호 '향안'을 받아 김향안이 되었습니다.


낙랑파라에서 아침 독서를 하며 그들을, 그들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에는 다 적지 못했던 이야기들입니다. 언젠가 모여서 책에 담긴 이야기와 책에 적지 못한 사연들도 같이 나누고 싶네요.


요즘 변동림과 김향안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뮤지컬이 상영 중입니다. <라흐 헤스트 _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아>라는 제목입니다. 변동림이었고 김향안이 된 그녀의 인생이 궁금하시다면 관심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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