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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Oct 23. 2024

개방 병동과 엄마 - 2

식사 기록, 군것질거리, 프라푸치노

 엄마의 입원 자리는 창가 바로 옆, 제일 안쪽이었다.  다행히 바로 옆에 2인용 소파와 테이블이 있어서 엄마도 나도 낮에 잠시 앉아있거나 쉴 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창문은 통창인지라 비록 열 수 없었지만 통풍구 환기는 잘 되는 듯했다.


엄마는 침대에 누웠을 때 통창으로 하늘이 넓게 보여서 무척 좋아하셨다. 맑은 날엔 파란 하늘이 잘 보였고 밤에는 달과 별이 떠있는 밤하늘이 잘 보였기 때문이다. 서서 창 밖을 바라보면 고층이다 보니 시내가 훤하게 잘 보였고 밤에는 알록달록해서 참 이뻤다. 오죽 좋으셨으면 퇴원하실 때, 창문으로 본 풍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을까.  


엄마 자리와 대각선 방향에 있던 아주머니는 어느 순간 내가 청각장애가 있음을 눈치채고서 늦은 새벽 내가 잠결에 엄마가 화장실 가기 위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못 들으면 나를 흔들어 깨워주거나 나 대신 엄마를 모시고 화장실에 다녀와주었다. 그분은 60대 후반 정도된 아주머니셨는데 엄마보다 2주 먼저 추석 연휴직전부터 들어와 계셨다고 한다. 아들의 권유로 들어왔다는데 왜 들어오셨는지 차마 여쭤보지 못했지만 열흘의 입원 기간 동안 보다 보니 짐작이 갔다. 본인 엄마가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는데 본인 역시 그리될까 걱정된다고 내게 자주 말씀하시곤 했던 것이다.

매일 매끼 식사할 때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식단을 기록했는데, 밤에 다시 읽어보면서 뭘 먹었는지 이미지로 기억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라 신다. 사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어제 점심을 뭐 먹었는지 얼른 생각이 안나는 건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 나만 해도 부엌에 물 마시러 나갔다가 잊어버린 적이 많다. 그런데  그분에겐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손에 힘이 빠지거나 기억이 나빠지면 안 된다고 매일 손글씨로 A4사이즈 공책 한 장 앞뒤로 국어 단어장 단어들을 반복해서 쓰셨다. 지나치면서 공책을 우연히 봤는데 숨 막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빼곡했다. 그리고 병동에서 진행하는 모든 인지 개선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느라 거의 하루종일 침대에 없으셨다.


이런 일련의 행동을 보다 보니 아주머니는 치매 걸린 엄마를 모셨던 경험 때문인지 치매에 대한 불안과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신 건가 싶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분이 입버릇처럼 자랑하시는 자식들이 한 번이라도 자기 엄마가 어떤 상태인지 들여다보고 실감하게 되면 좋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곤 했다. 딸은 추석 때에도 안 왔다는데 병원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집이 있는데도 엄마의 입원 기간 동안 병문안 오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리 손자를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말이다. 대신 대구에 사는 아들이 아침저녁으로 안부전화를 했는데 얼굴 표정만으로도 누구에게 전화온건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환하게 웃으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주머니의 웃음에 괜히 기분 좋아지기도 했고 안 됐기도 했다. 퇴원할 때 인사를 잘 드리고 싶었는데 막상 엄마가 퇴원 수속을 밟고 나가게 되었을 때 하필 병동 프로그램에 계신 바람에 인사를 못해서 아쉬웠다.


엄마와 맞은편에 있던 환자는 갓 대학을 졸업한 여자아이였다. 내 첫째 아이보다 두 살 어려서 왠지 더 챙겨주고 싶었던 통통한 아이였는데, 워낙 무뚝뚝한 표정을 일관하면서 병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밖에서 군것질 거리를 사 갖고 들어오는 것,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과의 얘기 외엔 하루 절반을 낮잠만 자길래 차마 말을 건네진 못했다. 병실 화장실이 내 자리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아이의 노선이 다 보였는데, 등 중간까지 기른 머리를 매일 아침마다 감고 공동거실에 마련된 드라이기로 머리를 꽤 오랜 시간 말리곤 했다. 개방병동에서는 개인적으로 드라이기를 소지하지 못하게 했는데 뜨거운 열기와 긴 전선이 자칫 자해 혹은 타해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침마다 그 아이가 머리를 오래 말리노라면 그 뒤로 여러 사람이 머리 말리러 줄 섰다가 몇몇이 도로 돌아가는 모습을 종종 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오래 40여 일 입원했다는 걸 그 아이가 주치의 선생님의 허락으로 퇴원하는 날 인사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다. 학생인가 싶어 물었더니 유아교육학과 졸업생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고서 “불면증이 많이 심했나 봐요”라고 의례적으로 물었는데, “저 자살 시도를 3번 했는데요. 엄마가 보내서 와있었어요”라고 대뜸 말하는 것이었다. 무거운 주제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이의 태도에 당황했던 나는 그저 어설프게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자살 충동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들었던 생각이 나서 퇴원해도 괜찮으려나 싶었다. 아이는 내 표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3번째 입원인데 올 때마다 많이 좋아졌고 이젠 자살 충동이 없어진 것 같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긴가민가했지만 워낙 표정이 좋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짧은 얘기 후에 자기 자리로 돌아가 크고 샛노란 캐리어에 열심히 마저 짐 챙기는데 침대 옆 옷장과 서랍장, 냉장고가 군것질거리로 꽉 차 있는 것이 보였다. 매일 나가서 지하 편의점과 빵집에서 뭔가를 사 갖고 오길래 어느새 다 먹었나 싶었는데 남은 걸 쟁여놓은 모양이었다. 바삐 넣더니 그중 두어 개를 골라서 주길래 받았다. 초콜릿 쿠키와 생크림우유빵이었는데 단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인사하고 병실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입원시킬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었을까? 아이가 자살 시도한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까?  아직 어린데 오죽 힘들면 그리 자살을 여러 번 시도한 걸까?  아무래도 자식을 둔 엄마이다 보니 너무 안타까워서 저 아이가 마음이 가능한 한 덜 다치게끔 느리더라도 조금씩 단단해지길 빌었다. 사실 나 역시 (청각장애 때문에) 반평생 여전히 애쓰는 중이지만 저 아이 나이 때보다 참 많이 단단해졌다. 그래서 아이 역시 비록 힘들더라도 잘 버틸 수 있으리라 믿기로 했다. 치료받거나 나아지겠다는 의지가 아예 없었다면 아무리 엄마가 강하게 권유했더라도 여기에 들어오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엄마 침대 옆자리는 환자가 자주 바뀌다 보니 얼굴도 말투도 채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자리는 대기환자들이 많은 모양인지 앞사람이 퇴원한 지 20분도 채 안 돼서 금방 다음 환자가 들어오는 식이었다. 엄마가 입원한 바로 다음날 퇴원하신 아주머니는 어렴풋이 기억나긴 했다. 피부가 약간 붉고 유독 땀을 많이 흘렸던 것 같다. 연신 손수건으로 이마와 목을 닦았고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핸드폰만 하루종일 들여다보다가 복도에 나가서 통화를 하곤 했다.


같은 병실 환자는 아니었지만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환자가 있다. 이마가 덮이게 귀밑 길이로 단발머리를 한 20대 여성이었는데 삐쩍 말랐고 무척 자그마했다. 키가 160cm 채 안 돼 보였는데 내가 키 170에 가깝고 통통한 덩치를 가졌다 보니 더 작아 보인 듯했다. 입원 첫날부터 의료진들이 엄마를 볼 때마다 불면증에 도움 되니까 병동 안의 긴 복도를 여러 번 왕복하라고 했기 때문에 자주 복도를 걷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녀가 보였다. 심지어 여러 번 물병에 물 채우러 다용도실에 갈 때마다, 보호자용 화장실에 가거나, 하루에 여러 번 간호사실에 엄마 약을 받으러 갈 때마다, 엄마 침대 옆 보호자 침대 위에 앉아 있을 적에 병실의 열린 문 사이로 왔다 갔다 걷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다.


개방 병동의 복도는 간호사실에서 양쪽 끝까지 다 보일 수 있게 꺾임 없이 일직선으로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왕복하며 걸었다. 벽에 부착된 안전대를 잡고 불편한 다리를 이끌면서 천천히 걷는 할아버지부터 병원에 있음에도 매일 올백으로 머리 넘긴 아저씨, 책을 보면서 걷는 청년, 입원하는 날 보았던 여자 즉 남편과 인사 나누고 혼자 들어온 아내분 등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유독 머리에 남은 것은 어느 날 벤티 사이즈의 별다방 컵을 유독 가는 손가락으로 양손 붙잡고 들어오는 모습을 우연히 봤기 때문이다. 컵을 잡은 손보다 큰 덩어리 크림이 가득 올라가 있었고 초콜릿 소스가 뿌려져 초콜릿 칩이 가득 박혀있던 프라푸치노였다. 그 화려함이 본인의 작고 핏기 없이 마른 얼굴과 유독 대비된다는 느낌이 강했어서 그런지 인상이 깊게 박혔다. 그녀는 그 커다란 프라푸치노를 다 마셨을까? 아님 몇 입 먹고 나머지는 버렸을까?  왜 그렇게 하루종일 걷곤 했을까?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자주 보다 보니 문득 궁금해지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안 보이는 게 퇴원한 모양이었다. 어떤 마음 문제였든 간에 너무 자신을 다그치지 말고 잠도 잘 자고 맘 편히 잘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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