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메타인지를 위한 제안

by 채현

본 적도, 써본 적도 없는 도구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왜 필요한지도 몰랐다. 모르기 때문에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 이것이 바로 인간 인식의 출발점이다.


메타인지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 즉 무지의 무지(unconscious incompetence) 속에 머무른다. 스스로 자신의 무지를 내적으로 감지하는 능력, 즉 ‘내 인식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감각은 모든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지만, 그 감각을 끝까지 따라가며 사고를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무지를 직접 알기 어렵다.


이 감각의 유무는 교육의 장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메타인지가 발달하여 자신의 무지를 알고 있는 학생에게 수업은 다르게 작동한다. 그들의 뇌는 인지적 긴장(cognitive conflict) 상태에 들어가고, 이 긴장이 수업의 집중과 기억을 강화한다. 이후 교사의 설명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결핍을 메우는 해답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수업이 끝난 뒤 내용은 잊어도, “이게 왜 중요했는가”는 잊히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지 못한 학생에게 수업은 단순한 정보의 주입 구조가 된다. 교사는 개념을 정확히 설명하고, 학생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쓴다. 막히지 않기 때문에 ‘이해했다’고 믿지만, 그 믿음은 단지 인지적 착각(illusion of knowing) 일뿐이다. 수업 직후 문제를 풀면 “아까 들었는데 왜 안 되지?”라는 불일치가 나타난다. 이 수업에서는 배움의 착각이 안정감을 대신한다.

인간은 모른다는 불안보다, 안다는 착각이 더 편하다. 대부분의 인간은 인지의 정확성보다 정서의 안정성을 선택한다.


그렇게 사고의 차이는 점차 벌어진다. 자신의 무지를 감지할 수 있는 학생은 수업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며 사고를 확장하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은 배웠다는 감각만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이 감각을 어떻게 훈련할 수 있을까. 대부분은 이것을 타고난 재능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외적 장치를 통해 훈련이 가능하다. 그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예습이다.

예습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첫째는 말 그대로 “미리 익히기”다. 그날 배울 내용을 앞서 익혀 불안을 줄이고, 배움의 결과를 예측 가능한 상태로 두려는 행위이다. 이 관점은 “배움은 이미 결정된 것을 반복적으로 흡수하는 일”이라는 안정의 논리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이런 예습은 배움의 본질적 성장을 이끌지 못한다. 새로운 정보가 익숙한 형태로 들어오면, 뇌는 그것을 새로운 학습이 아닌 반복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익히는 순간, 이미 아는 것으로 착각한다.


둘째는 무지의 확인으로서의 예습이다. 배우기 전에 스스로 어디서 막히는지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나는 이 두 번째 의미의 예습을 메타인지의 훈련법으로서, 아직 사고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권하고자 한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수업 전에 교재를 한 번 훑어보는 예습도 가능하다. 그러나 단순히 읽는 행위만으로 자기 사고의 균열을 찾는 일은 대부분의 학생에게 쉽지 않다. 읽는 동안 막히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더 현실적인 방법은 문제를 미리 풀어보는 것이다. 열 문제 정도면 충분하다. 목표는 오답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틀린 문제의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유형에서 사고가 멈췄는지, 어떤 개념이 불확실했는지를 스스로 감지하는 순간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예습은 ‘모른다’는 감정을 사고에 남긴다. 감정은 주의를 묶고, 주의는 기억을 남긴다.


그러나 아직 스스로 무지를 감지하기 어려운 학생이라면, 외적 자극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가장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는 존재가 부모다. 많은 설명이 아니라 하나의 짧은 질문이면 된다. 예를 들어, 물질의 상태를 배우는 아이에게 “물과 얼음은 뭐가 다를까?”라고 묻는 정도면 충분하다. 모든 모름을 다 찾을 필요는 없다. 단 하나의 균열, 하나의 막힘만 만들어도 된다. 그 작은 균열이 바로 사고가 자라는 틈이며, 메타인지가 싹트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예습은 미리 익히는 행위가 아니라, 배움이 시작될 자리를 스스로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발견하는 순간, 교육은 비로소 인간 내부의 무지를 흔들어 깨우는 진정한 과정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회색의 평면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