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거울이자 한계
AI의 답변은 수십억 개의 파라미터가 얽힌 확률 계산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인간이 추적하거나 이해할 수 없으므로 “왜 이런 답이 나왔는가”를 알 수 없다. 사용자는 결과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으니, 과정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AI에게 “한국 고등학생 중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한 학생의 비율은 얼마인가?”라고 물으면, AI는 “15%에서 20%”라는 수치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답이 실제로 어떤 연산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왜 그렇게 답했는가?”라고 물으면 AI는 여러 이유를 그럴듯하게 제시하지만, 그것은 최초 연산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정당화하는 사후적 합리화일 뿐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곧 “이 답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블랙박스 문제란 바로 이 불투명성과 신뢰의 결핍에서 비롯한다.
이 문제의 원인은 AI 자체의 내재된 구조에 있다. AI는 인간의 신경망(神經網)을 모방하여 설계된 시스템이므로, 그 연산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찌 보면 AI는 인간 사고가 지니는 블랙박스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 또한 스스로 내린 판단의 과정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는 직관이나 무의식 속에서 결정을 내린 뒤, 사후적으로 그럴듯한 이유를 붙인다. 겉으로는 논리적 설명처럼 보이지만, 실제 판단의 경로는 여전히 블랙박스 안에 남는다. 그렇다면 AI의 불투명성은 특별한 결함이 아니라, 인간 사고와 동일하게 작동하는 한계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사고 과정은 본래 불투명하다. 우리는 스스로를 합리적 존재라 부르지만, 사실 합리성조차 그 작동 원리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흄(Hume)은 인과율이 논리적으로 증명되지 않고 단순히 반복 경험에서 비롯된 습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으며¹, 칸트(Kant)조차 인과와 합리성을 인간 인식의 형식으로 세워놓았을 뿐 절대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². 결국 인간의 합리성은 사고 과정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채 결과를 정당화하는 장치에 머문다.
경험적 인과 추론 : 인간은 반복된 사건을 근거로 인과를 설정한다. 예컨대 “검은 고양이를 보면 불행이 온다”거나 “시험 전에 특정 펜을 쓰면 성적이 오른다”는 믿음은 실제로는 우연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경험적 반복을 필연적 인과처럼 받아들인다.
사후 합리화 : 우리는 무의식적 직관이나 즉각적 판단을 내린 뒤, 나중에 그럴듯한 이유를 덧붙인다. 하지만 그 설명은 실제 판단 과정을 보여주지 않고, 단지 사후적 정당화에 불과하다.
직관적 판단 : 인간은 순간적으로 전체를 보고 “옳다/그르다”를 판단한다. 그러나 그 결정을 내린 구체적 경로는 설명하지 못한다. 직관은 곧바로 합리화와 결합해 꾸며낸 설명을 낳을 뿐, 실제 인지 과정은 블랙박스 속에 남는다.
현대 뇌과학 역시 인간의 판단 과정을 온전히 해명하지 못한다. 특정 뇌 영역이 어떤 역할을 한다는 설명은 가능하지만, “왜 내가 지금 이 결정을 내렸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는다. 이는 곧 인간과 AI 모두 해석 불가능성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불투명성은 단순한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철학과 과학이 풀지 못한 보편적 조건이다.
AI의 블랙박스 문제는 인간 사고의 한계를 반복하는 것일 뿐, 전적으로 새로운 결함은 아니다. 인간 역시 판단 과정을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신뢰하고 사회를 유지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고가 블랙박스임에도 신뢰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 것처럼, AI 역시 무조건 의심의 대상일 이유는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뢰의 장치이다. 인간 사회는 법, 제도, 절차, 규범이라는 외부 장치를 통해 불투명한 개인의 판단을 제어해왔다. 우리는 개인의 내면을 알 수 없지만, 판결문, 회의록, 계약과 같은 제도적 기록을 통해 합리성을 보강한다. AI도 마찬가지다. 블랙박스 자체를 해부할 수는 없어도, 데이터 출처, 알고리즘의 검증 절차, 결과 해석을 위한 독립적 감시 장치를 두는 방식으로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완전히 투명한지 여부”가 아니라 “신뢰를 담보할 장치가 존재하는가”이다.
게다가 AI의 능력은 단순히 한 개인의 사고가 아니라, 수많은 인간이 생산한 데이터와 지식을 종합한 결과다. 다시 말해 AI는 확장된 인간의 사고, 혹은 많은 인간의 합으로서의 지성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AI가 제시하는 답변은 특정 개인의 직관보다 더 폭넓고 객관적인 근거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최소한의 책임에 있어서는 인간과 AI 사이에 다른 결이 나타난다. 특히 권리와 기회의 박탈 혹은 부여가 걸린 문제에서는 그 차이가 분명하다. 인간이 내린 결정은 불투명하거나 주관적일지라도, 제도와 절차 속에서 설명을 요구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반면 AI의 판단은 블랙박스에 갇혀 있기 때문에, 그 결과가 부당하다고 느낄 때 누구에게,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이 문제는 입시나 입사 같은 선발 과정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가르는 결정은 단순한 수치의 차이가 아니라, 한 개인의 미래와 기회를 좌우한다. 마찬가지로 대출 심사에서 탈락한 사람, 고가 치료의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 환자, 복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가정 모두는 “왜 내가 이런 결정을 받았는가?”를 물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AI가 개입한 판단에 대해서는 이 질문이 쉽게 공허해질 수 있다. “AI가 그렇게 판단했다”라는 답은 사회적 정당성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사법적·의료적 판단에서 나타난다. 만약 판사의 판결 보조 시스템이 불투명한 알고리즘에 의존한다면, 판결은 단순히 개인의 권리를 넘어 법적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다. 의료 AI가 환자에게 특정 치료를 권고하거나 배제하는 경우, 그 근거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환자의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이 침해된다. 이런 영역에서 책임의 귀속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윤리적 문제다.
이 때문에 국제 사회는 AI의 블랙박스 문제를 제도적으로 다루려 한다. EU는 AI Act를 통해 “고위험(high-risk) AI” 범주를 규정하고, 투명성과 설명 가능성 요구를 법제화했다³. 이는 교육·의료·사법·채용과 같이 인간의 권리와 직접 연결된 영역에서는 단순한 효율보다 책임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선언이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역시 기업이 불투명한 알고리즘으로 차별을 초래할 경우 규제할 권한을 주장하고 있다⁴. 이는 블랙박스 문제를 단순한 기술적 불가해성으로만 보지 않고, 소비자 보호와 권리 보장의 문제로 확장하는 시도다.
책임은 곧 권력과 정의의 문제이다. 민주사회에서 권리 박탈이나 부여가 오직 기술적 판단으로만 정당화된다면, 정치는 기술에 종속되고 만다. 따라서 인간이 최종 책임 주체여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AI가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책임을 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AI의 블랙박스 문제는 인간 사고가 지닌 불투명성을 비추는 또 다른 거울이다. 그 자체는 해결할 수 없는 조건일지라도, 우리는 이 문제를 통해 AI의 한계와 인간의 책임을 다시 확인한다. 블랙박스 문제는 AI를 전면 거부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AI의 효율성을 활용하면서도 권리와 책임의 최종 주체를 인간에게 남겨야 한다는 원칙을 상기시키는 장치다.
우리는 AI가 인간을 대신해 더 정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권리와 정의의 문제에서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AI가 만든 판단이 옳든 그르든, 그 판단의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인간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블랙박스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논란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¹ Hume,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748.
² Kant, Critique of Pure Reason, 1781.
³ European Union, Artificial Intelligence Act, 2024.
⁴ Federal Trade Commission, FTC Business Blog on AI and Discrimination,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