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밤마다 ‘딴짓’을 하는 이유
나는 매일 두 개의 주방을 오간다.
해가 떠 있는 동안 나는 주어진 재료로 요리해야 하는 쉐프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애초에 냉장고를 내 마음대로 채울 수 없는 운명이다. 의뢰인이 들고 온 보따리를 풀면 이미 시들어버린 사실 관계라는 채소, 상하기 직전의 증거라는 생선, 그리고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법리들이 뒤섞여 있다.
나는 그 제한된 재료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어떻게든 판사와 중재판정부의 입맛을 설득할 요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썩은 부분을 도려내느라 진땀을 빼고 부족한 간을 맞추기 위해 판례라는 조미료 통을 필사적으로 뒤진다. 맛이 없다고 투정할 수도 재료가 형편없다고 앞치마를 던져 버릴 수도 없다. 그 식탁 위에는 타인의 인생과 한 회사의 성쇠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낮의 주방은 늘 긴장과 소음 그리고 타인의 욕망을 대변하는 날 선 칼질 소리로 가득하다.
하지만 밤이 오면 나는 비로소 나만의 주방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오직 내가 원하는 재료로 요리하는 나만의 공간이다.
이곳엔 썩은 무나 시든 배추를 억지로 떠안기는 사람이 없다. 나는 세상이라는 광활한 텃밭으로 나가 남들이 무심코 밟고 지나간 감정의 파편들을 조심스럽게 줍는다.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의 적막 속에 밴 타인의 고단함, 화려한 성취 뒤에 가려진 씁쓸한 뒤맛 같은 것들을. 모두가 만개한 꽃의 화려함에 취해 있을 때 나는 그 꽃을 피워내느라 흙투성이가 된 뿌리를 캔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풍경을 비틀어 보고 익숙한 일상에 낯선 조명을 비춰본다. 성공한 사람의 웃음 뒤의 상처, 평온해 보이는 관계 속의 치열한 협상, 당연해 보이는 일상의 우연들이 사실은 얼마나 필연적이었는지. 그것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렌즈를 바꿔가며 관찰한다. 필연적인 사건이나 현상은 없다.
나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배설이나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발견이다. 낮 동안 변호사의 눈으로 세상을 현미경처럼 세심히 관찰했다면 밤에는 작가의 눈으로 프리즘처럼 그 너머의 의미를 탐구한다. 법정의 차가운 공방 속에서도 인간의 슬픔을 읽어내고 딱딱한 법조문 사이에서 삶의 아이러니를 길어 올린다.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나만의 언어로 요리해 식탁에 올려놓는 것. 그것이 내가 밤마다 키보드를 두들기는 이유다.
사람들은 묻는다. 하루 종일 남의 이야기를 서면으로 쓰고도 또 글을 쓰고 싶냐고. 지겹지 않냐고.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남이 시켜서 억지로 썬 양파와 내가 그 속을 궁금해서 들여다보며 자발적으로 썬 양파는 흘리는 눈물의 농도부터 다르다는 것을.
변호사로의 글쓰기가 정해진 규격에 맞춰 벽돌을 쌓아 올리는 견고한 건축이라면 작가의 글쓰기는 그 벽돌 틈새에 피어난 이름 모를 풀꽃을 발견하는 일이다. 나는 낮에 지은 감옥의 틈새를 밤의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이것은 참으로 기묘한 이중생활이다. 구속함으로써 밥을 벌고 해방됨으로써 숨을 쉰다. 낮에 쌓은 논리의 담장이 밤에 몽환적인 길을 만들고 법조문의 무게가 역설적으로 문장의 깊이를 만든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이 두 가지 맛이 섞일 때 비로소 삶이라는 요리가 완성된다는 것을.
Photo Credit: Livings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