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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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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Feb 05. 2019

유모차 끌고 간 구글 포럼, 천사를 만났다

[엄마의 일] 애 데리고 포럼 갔다가 은혜 입고 살아돌아온 전설


1월 초 에디터 봉봉의 공유로 구글 뉴스 이니셔티브 포럼(gnif.kr) 소식을 들었다. 저널리즘 협력 사업을 하고 있는 구글 이니셔티브와 미디어 전문 매체 <미디어 오늘>에서 주최하는 저널리즘 포럼이었다.


지난 10여 년 간 언론사에서 기자로 취재를 하고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왔다. 최근 들어 더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면 주기적으로 관련 포럼에 참석하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 1년 여간 육아휴직으로 이런 기회를 갖기 어려워 갈증이 날로 심해지던 차였다.


더욱이 이 포럼에는 '동영상 플랫폼과 저널리즘의 확장', '미디어 스타트업 케이스 스터디' 세션이 마련돼 있었는데 영상 콘텐츠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시기에 미디어 스타트업을 시작한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더욱 필요했다. 그래서 애 없을 때처럼, 회사 다닐 때처럼 큰 고민 없이 파워당당 등록.


그런데 포럼 전날 리마인드 메시지를 받고서야 꼼꼼히 일정을 살펴보니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되는 행사였다. 게다가 장소는 강남구 대치2동에 위치한 구글캠퍼스. 경기 서남권의 우리집에서 편도 약 2시간 걸리는 곳이렸다.


포럼에_애를데리고가야하는_엄마의머릿속.jpg (출처 : 마더티브)


아이를 오전 8시에 일등으로 등원 시키고 가도 시작 시간에 맞추긴 어려웠다. 그래, 포기. 그럼 애를 등원시키고 첫 번째로 듣고 싶은 11시 세션을 목표로 가자. 그런데 하원 시간도 문제였다. 아이를 데리러 가려면 늦어도 오후 4시에는 나와야 했는데 두 번째로 듣고 싶은 세션이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만난 대혼돈. 쭈구리가 되어 '어쩌지, 어쩌지' 동동거리다 결심했다. 아이를 데리고 가기로, 도전! 비록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절망적 돌발 상황과 대처 시나리오를 생각하느라 밤잠을 설쳤지만 아이와 함께 할 새로운 경험이 기대됐다.


도착하니 이미 지쳤다


자동차나 버스는 길이 막히면 대책이 안 서니 전철을 이용해 늦어도 오전 10시 30분까지는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려면 8시 20분에 집을 나서는 남편과 자가용을 이용해 역까지 함께 가야 했다. (그렇다, 우리집은 역세권도 아닌 것이다)


전날 밤잠을 설쳤지만 긴장한 탓에 일찍 눈이 떠졌다. 아이와 외출하려면 일찍 서둘러 나부터 먼저 준비를 마쳐야 했다. 평소 9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나는 아이는 한창 잘 시간에 움직여야 하는 걸 힘들어했다.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며 준비를 하다 보니 시간은 점점 늦어졌고 아침 식사는 고사하고 물 한 잔도 못 마시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전철역에 도착한 시간은 8시 40분, 크게 한숨 들이마시고 유모차를 밀며 역사로 들어섰다. 복잡한 출근 시간은 비켜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만원이 된 전철 한 대를 그냥 보내자 '왜 전철을 타지 않냐'며 아이가 칭얼대기 시작했다. 빵 한 조각을 쥐여주고 달래다 보니 다음 전철이 왔고 사람들 사이를 겨우 비집고 들어가 탈 수 있었다.


몇 정거장 가지 않아 9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지옥철'이라는 악명 때문에 매우 걱정했던 코스. 다행히 완행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출입구 쪽에 유모차를 세우고 앉을 수 있었고 얼마 안 돼 아이는 잠이 들었다.


다행히 잠든 아이는 30여 개 정거장을 지나는 내내 깨지 않았다 (출처 : 마더티브)


그제야 한숨 돌리며 앉아있으니 아이 장난감과 그림 그리기 도구들, 젤리 같은 군것질거리를 모두 빠트리고 온 걸 깨달았다. 꼭 하나씩 잊는 일상이 익숙하지만 이날은 새삼 절망스러웠다. 포럼 장소로 가는 길에 문구점이나 편의점이 있는지 찾아보느라 마음이 급해졌다.


포럼 장소와 가장 가까운 역은 두 번 환승을 해야 했는데 유모차로는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조금 더 멀지만 한 번만 환승해 갈 수 있는 역에 내려 걷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와 짐 무게까지 더해진 20kg 유모차를 밀며 칼바람이 쌩쌩 부는 영동대로를 한참을 걸어서야 포럼 장소에 도착했다. 온몸이 벌써 후들후들 떨렸지만 이제부터 진짜 하루의 시작이었다.


고마운 사람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처음엔 포럼 강연을 실시간 영상으로 볼 수 있도록 따로 마련된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정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좁고 답답한 공간에서 더 떼를 부리기 시작해 결국 더 넓은 포럼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이곳은 공부하는 곳이니 조용히 해야 한다, 얌전히 있어야 한다'고 수십 번을 강조했다.


아이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포럼장에 들어서자마자 육아휴직 전 자주 미팅을 가졌던 파트너사 담당자를 만났다. 이날 연사로 무대에 오르는 이이기도 했다. 다행히 날 알아봤고 반갑게 인사했다. '잊히지 않았다'는 생각에 어깨가 조금 펴졌다. 아이를 보고 놀라워하긴 했지만 긍정적인 표정이었다. 덕분에 긴장이 많이 풀렸다.


자리를 잡고 30분을 앉아있던 아이에게 1차 고비가 왔다. 아이에게 쥐여줄 군것질거리가 없어서 난처해하던 중 마침 옆에서 누군가 젤리를 내밀었다. 이런 완벽한 타이밍에서 구원의 손길이라니!!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성이었다. 아이가 폐를 끼칠까 가장 신경 쓰던 사람이었는데 다행히 아이를 귀엽게 봐줘 정말 감사했다.


천사가 천사를 그려주셨네...ㅠㅠ (출처 : 마더티브)


아이와 그림을 그리며 놀아준 사람도 있었다. 젤리를 건넸던 옆자리 여성이 떠나고 새로 앉은 사람이었다. 집중해 들어야 하는 세션이었는데 지루해하는 아이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날 보고는 공책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며 아이의 이목을 끌고 갔다.


엄마는 강연 들어요, 내가 놀아줄게요.


눈과 귀를 의심한 순간이었다. 너무 죄송한 마음에 차마 아이를 그냥 두고 강연을 들을 순 없었지만 눈과 몸은 아이에게 귀와 머리는 강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 포럼이 끝나고 인사를 하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분도 6살 아이가 있는 엄마였다. 기자로 일하다 최근 퇴직을 했다고, 잠시 공부를 하러 왔다고 잠깐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이날의 나를 100% 이해한다는 눈빛이 느껴져 너무 감사했다. 아이 때문에 더 길게 얘기 나누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웠다.


마냥 앉아 있기 지루해하는 아이와 로비에서 놀며 강연을 귓등으로 듣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중요한 부분이 나오면 아이를 안고 입구에 서서 잠시 강연에 집중했다가 다시 로비에서 놀기를 반복했다.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분위기를 조금은 어수선하게 만들었을 테다. 하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참가자들과 구글 스태프들이 아이를 귀엽게 여기어 예쁘게 봐주었다. 마음씨 좋은 이모, 삼촌들과 돌아가면서 놀기도 하고 오며 가며 놀잇감이나 군것질거리를 얻기도 했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며 예뻐해 주는 이들이 많아 기분이 좋아진 아이는 고맙게도 내 말에 더 잘 따라주었다.


딱 한 번 아이를 매우 불쾌해하는 사람도 만났다. 점심시간에 강연장을 나가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입출구가 복잡해졌을 때 아이가 살짝 스치자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눈빛과 상황에 더 익숙한 난 자동적으로 연신 '죄송합니다'를 내뱉었다. 하지만 이날 내가 움츠러들었던 순간은 이때뿐이었다.


일도 아이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왜 굳이 여기까지 애를 데리고 와?'
'저러다 죽도 밥도 안될 텐데 하나라도 잘 하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날 보고 이런 생각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날 우리의 외출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내가 포럼에서 듣고 싶었던 강연도 모두 들었고 만나고 싶은 연사, 동료들과도 인사를 나누며 충분히 네트워킹 시간도 가졌다. (<더파크> 글 쓰는 정우성님과도 얘기했다! 얏호) 분명 포럼의 대부분은 포기해야 했지만 내가 포럼에서 목표로 했던 바는 모두 이룬 셈이다.


에디터 봉봉이 기록해준 체험 쩔쩔매기 현장 (출처 : 마더티브)


게다가 아이와 뜻깊은 새로운 추억도 만들었다. 달뜬 표정으로 "이모, 삼촌들이 한 명씩 위에 올라가서 엄마를 가르쳐주고 엄마가 공부했어"라고 가족들에게 설명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내가 괜한 고생을 시킨 것만은 아니구나' 싶어 안심이 됐다.


우리가 이날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나나 아이가 잘 해서가 아니다. 앞에서 길게 얘기했듯 낯선 모습이었지만 우리를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대해준 친절한 사람들 때문이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들의 선한 눈빛과 미소 하나하나가 아직도 잊히지 않고 내 마음을 따뜻이 일렁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들은 용기가 됐다. 아마도 난 아이와 새로운 도전에 또 나설 것 같다.


난 정말이지 일과 아이들, 어느 것에도 소홀하고 싶지 않다. 내가 대단한 욕심쟁이라서가 아니다. 그저 내가 해오던 일을 멈추지 않고도 아이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까지 잘 해내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아이 둘을 낳고 보니 참으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일과 육아의 양립이 가능할 것이라 믿지만, 개인의 노오오오오력만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임도 분명하다. 사회가 함께 해야 한다. 우선 제도적으로 뒷받침 돼야 할 것들도 많지만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서라도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용인해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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