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여행, 오악사카에서의 9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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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목판화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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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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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여행


오악사카 체류가 90일째다. 첫 달에는 도시의 정체성과 삶에 집중했고, 둘째 달에는 오악사카 주의 역사와 자연, 인근 원주민 마을과 공동체를 탐사했다. 지난달에는 이 도시의 예술과 문화, 과거 예술가들의 작품과 그들이 남긴 정신, 그리고 현재 예술가들의 삶과 꿈에 몰입했다.

한 사람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의 웃음과 눈물에 공감하게 된다. 폐허의 유적에서 긴 역사를 만나고, 연구 성과들을 공부하면서 그 역사가 오늘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깨닫는다.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업물을 접하면 그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알게 되고, 직접 대화할 때는 내가 이해한 작가의 세계가 단지 끝을 알 수 없는 동굴의 입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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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문화와 식민문화가 융합된 복합적 현실


우리의 발걸음을 더욱 느리게 만든 것은 사순절과 성주간의 행사였다. 식민지의 아픈 역사를 통해 이식된 종교가 어떻게 토착화되었고 현재에 이르렀는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부터 ‘성토요일(Holy Saturday)’의 40일과 ‘부활절(Easter Sunday)’까지 전 기간의 의례에 함께하면서 현재 그들의 사고와 삶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선대 예술가들의 성취와 그들이 남긴 유산과 죽음 후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그들의 정신과 실천을 통해 나의 삶과 죽음의 태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입장을 갖게 되었다.

소극장에서 연극을, 독립영화관과 도서관에서 영화를, 대극장에서 주립교향악단의 연주를 거의 무료로 참여하고 즐기면서 주나 시의 부족한 예산으로 도시의 경영이 빠듯하지만, 그럼에도 도시를 예술과 문화로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

토착문화와 식민문화가 융합된 복합적 현실은 동양의 방문자인 나에게 때로는 불가해했고, 때로는 참으로 풍요로웠다. 저임금과 가난의 굴레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와 예술적 환경은 역사적 뿌리와 선대의 투쟁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어떤 것도 뿌리지 않고 거둘 수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지금도 그 갈등과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폭력적 저항과 문화재가 훼손되는 일이 동반되기도 한다. 그 현장을 목도하는 것은 참 마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의 긴 원주민 역사와 다양성, 식민지의 고통 속에 남겨진 문화유산, 그리고 미국에 많은 땅을 내어주고도 여전히 방대한 국토와 각기 다른 지역적 특성은 멕시코를 매혹적인 가능성의 나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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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예술 작가들의 작업실


이곳의 매혹적인, 그러나 파괴적이기도 한 현상들에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나는 거리예술 작가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작가들을 만나기 위한 방법으로 그들의 거점이 되는 여러 판화작업실을 방문했다.

그중 한 작업실에서 거리에서 자주 보아온, 뛰어난 풍자와 은유로 권력의 모순을 비판하는 시각적 표현을 하고 있는 작품들을 마주했다. 그 작업실에서 마침내 그 작가와 대면하고 이름을 알아낼 수 있었다.

프리에토스 타예르(Prietos Taller) 작업실의 마요 카리요(Mayo Carrillo) 작가였다. 그녀는 기꺼이 나의 질문에 응했다. 긴 시간 대화를 마친 뒤, 그가 영어로 판화 워크숍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내는 직접 판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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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화 도전


며칠 뒤, 우리는 그가 알려준 워크숍 시간에 맞추어 다시 공방을 찾았다.

작품과 작가를 더 깊이 이해하고 작품의 탄생 과정에 담긴 고충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해보는 것이 옳았다.

아내는 한국을 떠나기 전 민화 작업에 빠져지냈던 만큼 드로잉 정도는 문제없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판화를 위한 드로잉은 또 다른 문제였다. 판화는 잉크로 찍어서 최종 결과물을 내는 것인 만큼 표현이 반대로 되어야 했다.

그것은 국민학교 미술시간에 고무 판화 작업에서 조각도를 잡아본 후 부엌칼 외에는 잡아본 적 없는 시간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작가는 아내의 구상과 드로잉을 보고 목판화 초보가 소화하기에는 벅찰 것이라고 했다. 선을 줄이는 것은 더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작가의 충고대로 최대한 선을 줄인 드로잉을 나무판에 조각도로 표현했야 했다.

칼을 잡기 전, 작가는 멕시코 역사 속 판화가 거리예술의 무기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오악사카에서 여전히 사회적, 정치적 발언의 도구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조각도를 쥔 뒤에는 연습용 나무판에 선 긋기부터 시작했다. 젓가락을 처음 쥔 사람처럼 어색했다. 가로·세로선 새기는 연습을 하고 다시 면 파기를 연습했다. 깊게 파지 않으면 잉크가 묻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의 밀도로 회색을 표현하는 법, 곡선을 다루는 법, 결을 살리는 법까지 익히고 드로잉에 칼을 댔다.

검은 면과 흰 면을 구분하는 것조차 혼란스러웠지만, 작가는 그때마다 조언과 시범을 보여주었다. 두 시간 넘게 칼을 다루자 힘을 주고 빼는 감각이 조금씩 손에 익었다. 쉼 없이 이어진 네 시간의 작업은 초보에게는 벅찼다. 결국 디테일에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잉크를 먹이고 프레스기를 통해서 나온 이미지에 환호하는 것으로 다섯 시간에 걸친 아내의 도전이 끝났다. 이미지에는 동지애를 가지고 함께 나라밖 순례를 이어가자는 우리 부부의 결심이 담겼다.


●사진설명

-마요 카리요(Mayo Carrillo) 작가의 작업실, 프리에토스 타예르(Prietos Taller).

-판화는 멕시코 역사에서 비판, 풍자로 사회운동과 민중예술의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허리 숙이고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것이 있고 그 속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있으며 직접 해보아야 깨닫는 것이 있다.

-권력의 부조리를 유쾌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여전히 오악사카에서는 판화가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마요 카리요 작가와의 워크숍. 멕시코에서 판화가 어떻게 민중의 의사를 대변하고 현재 오악사카에서 여전히 예술적 어법으로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계속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역사적 설명을 함께 들었다. 멕시코의 판화운동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사회적 저항과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낸 예술 운동이었다. 벽화운동이 국가적 정체성과 혁명 이념을 대규모 공공 공간에 새긴 ‘국가 프로젝트’였다면 판화운동은 민중의 저항과 교육을 위한 ‘저렴하고 배포 가능한 매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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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화 #거리예술 #공방 #오악사카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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