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외면해 온 작은 진실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어젯밤, 불을 끄기 전에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다시 펼쳤다. 사실 처음부터 읽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몇 페이지만 넘겨보려 했는데, 결국 책을 덮은 건 새벽이었다. 방 안은 조용했고, 창밖에는 겨울 특유의 차가운 공기가 흐르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마음만은 더 무거워졌다. 슬프다기보다는, 가라앉은 느낌에 가까웠다. 마치 내가 직접 무언가를 외면해 버린 사람처럼, 가슴 한구석이 서늘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분명 짧은 소설인데, 읽는 내내 내 안에 계속 남아 있었다. 특별히 극적인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을 붙잡았다. 아일랜드 소설이라는 배경 때문인지, 아니면 이야기의 결 때문인지, 자꾸만 내가 살아온 순간들과 겹쳐 보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나 자신을 떠올렸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멈출 수가 없었다.
소설의 주인공 빌 펄롱은 석탄 상인이다.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가장, 겉으로 보면 그저 조용히 자기 삶을 지키는 사람.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며 가족을 부양하고, 마을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수녀원에서 믿기 힘든 장면을 보게 된다. 그 순간, 소설은 아무것도 크게 말하지 않는다. 비명도, 분노도, 격렬한 대립도 없다. 대신 길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 침묵이 너무 낯설지 않아서 나는 더 아팠다. 마치 현실에서 우리가 종종 마주하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불편함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내 삶에서도 비슷한 침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나서지 않았던 순간들. “괜히 나만 이상한 사람 되는 거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던 순간들. 빌의 망설임은 나의 망설임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를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가 너무 현실적인 인간처럼 느껴져서, 더 마음이 아렸다.
읽으면서 자꾸 마음이 멈췄다. 빌이 보고도 모른 척할 수도 있었던 순간, 그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장면들. 그때마다 나는 숨을 고르게 쉬지 못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이 소설이 주는 긴장은 화려하지 않다. 조용하지만 집요하다. 마치 “너라면?” 하고 계속 묻는 느낌이었다. 특히 빌의 과거가 드러나는 부분이 오래 남았다. 그는 누군가의 선의 덕분에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버려질 수도 있었던 아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했던 존재. 그 기억이 현재의 빌을 움직이게 만든다. 누군가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장면이 너무 아팠다. 한 인간이 누군가의 선택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무겁게 다가올 줄 몰랐다. 그 장면을 읽으며 나는 문득 나 역시 누군가의 배려와 선택 속에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자꾸만 생각했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용감했을까? 아니면 나 역시 침묵했을까?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해봤지만,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영웅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사람이 마주한 윤리적 순간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 무섭고, 더 현실적이다. 이건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언제든지 빌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외면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제목이 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인지 곱씹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빌의 선택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뉴스에 나오지도, 역사에 남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 그 한 사람에게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 부분에서 나는 울컥했다. 우리는 흔히 큰일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거창한 용기, 드러나는 선행, 눈에 보이는 변화. 그런데 이 소설은 말한다. 정말 중요한 건 어쩌면 그런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아주 작은 선택, 아주 조용한 용기, 누군가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 그런 것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꿀지도 모른다고. 책을 덮고 나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감동이라는 말로는 부족했고, 슬픔이라고 하기엔 또 다른 감정이었다. 죄책감 같기도 했고, 다짐 같기도 했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내 삶에서 사소하다고 여겼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불편함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던 순간, 괜히 엮이기 싫어서 침묵했던 순간들. 그 모든 장면들이 이 책과 겹쳐졌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필요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불편함을 피하려고만 하는 건 아닐까. 이 소설은 그 불편함 속에서만 보이는 진실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머릿속에 남은 장면들이 계속 나를 붙잡았다. 아일랜드 문학, 현대 소설, 그리고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좋아한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지만, 읽고 나면 오래 마음에 남는 책이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이 책을 몇 번 더 펼쳐볼 것 같다.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솔직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젠가는 빌처럼, 혹은 그보다 더 용기 있게 선택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안고, 나는 조용히 불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