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이방인』

슬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인이 된 사람

by motifnote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인간 존재의 부조리와 삶의 공허함을 다룬 소설이라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부조리보다 먼저 이런 질문이 남았다. 사람은 언제부터 감정을 증명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이 책을 처음 읽게 된 건 친구의 추천 때문이었다. 고전이니까,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하지 않겠냐는 말. 솔직히 말하면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소설은 나를 잡아끌었다. 슬픔도, 동요도, 애도의 흔적도 없는 이 문장.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불편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책을 덮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는 이제 땅 속에 묻혔으며
내일은 다시 출근할 것이다.
결국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울지 않는다. 무너지지도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햇빛이 눈부셨다고 말하고,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신다. 우리가 배워온 ‘슬픔의 예절’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는 은근히 이런 걸 믿고 산다. 부모가 죽으면 슬퍼해야 한다. 눈물을 흘려야 한다.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야 정상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슬픔이라는 게 그렇게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방식으로만 나타나는 감정일까. 뫼르소는 자신의 마음을 과장하지 않는다. 슬프지 않다고 말하지도 않지만 슬픈 척하지도 않는다. 그저 느끼는 만큼만 반응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 솔직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장례식 다음 날, 뫼르소는 여자와 데이트를 한다. 영화를 보고, 웃고, 잠자리를 가진다. 이 대목에서 많은 독자들이 불편함을 느낀다. 나 역시 그랬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 불편함은 그의 행동 때문이라기보다 내가 가진 기준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지만 소설은 묻는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정상인 건데? 우리는 남의 슬픔을 너무 쉽게 규격화한다. 이 정도면 충분히 슬퍼했다, 이 정도면 아직 덜 아프다, 이 타이밍에 웃는 건 이상하다.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사람은 금세 ‘이상한 인간’이 된다. 뫼르소는 그렇게 조금씩 사회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배심원 여러분,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날,
바로 저 남자는 해수욕을 갔고
불순한 관계를 맺었으며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킥킥댔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잔인한 지점은 재판 장면이다. 뫼르소는 살인을 저질렀다. 분명히 큰 죄다. 하지만 법정에서 그를 몰아붙이는 건 살인의 동기보다 그의 삶의 태도다. 검사와 배심원들은 묻는다. 왜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는지, 왜 바로 다음 날 데이트를 했는지, 왜 그렇게 무심해 보였는지. 그의 죄는 점점 바뀐다. 사람을 죽인 죄가 아니라 슬퍼하지 않은 죄, 사회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살지 않은 죄가 된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우리는 과연 다를까.


우리는 종종 겉으로는 멀쩡한 얼굴을 하고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며 산다. 슬픈데 울지 못한 날도 있고,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한 날도 있고,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데 뭔가 느껴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표정을 만든 순간도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를 다그친다. 왜 이렇게 냉정하냐고, 왜 이렇게 무감하냐고. 『이방인』은 말한다. 그게 꼭 잘못은 아니라고. 삶은 본래 명확한 의미를 주지 않고, 세상은 우리에게 설명서를 나눠주지 않는다. 그 안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방인』은 다정한 책이 아니다. 위로도 잘해주지 않는다. 읽고 나면 마음이 정리되기보다 오히려 더 흐트러진다. 그런데 그게 이 소설의 힘이다. 이 책은 “너는 왜 그렇게 느끼니?”가 아니라 “왜 꼭 그렇게 느껴야 한다고 믿고 있니?”라고 묻는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한 인간을 보며 우리는 결국 자기 자신을 보게 된다. 나는 이 책을 감정에 서툰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기보다 감정을 너무 잘 연기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이방인』은 우리를 위로해주진 않지만 적어도 이런 말은 해준다. “네가 이상한 게 아니라 세상이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말 하나만으로도 이 소설은 여전히 읽힐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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