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귀희 May 05. 2022

아이가 언어영재 판정을 받은 날

ADHD인줄 알았던 아이가 언어 상위 0.6% 영재로 판정받다.

요즘 JTBC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그린마더스클럽"이 같은 연령대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 상위동에 사는 같은 아파트 단지 같은 초등학교 엄마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드라마 배경이 되는 상위동은 현실의 대치동, 분당, 목동 등 소위 우리나라 학군 1번지로 꼽히는 가상의 동네다.


이 곳으로 이사오게된 거성대(서울대) 출신 은표는 학원을 돌리는 이곳의 엄마들과는 다르다.

아이 학원은 어디를 보내냐는 같은반 엄마의 질문에 "저는 그런쪽 엄마는 아니거든요" 하며 선을 그으며

다른 엄마들에게 빈축을 사기도 한다. 그리고 은표의 아들 동석이는 반에서 산만한 아이로 낙인찍혀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한다.  은표는 자유롭게 키우고 싶은 자신의 교육관이 이곳과 맞지 않다며,

상위동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나는 그 주인공의 아들 동석이를 보면서, 아이가 하는 행동이 우리 아이와 비슷한것 같다고 느꼈고

분명 저 아이가 영재로 판정을 받으며 드라마 스토리가 반전을 맞이할거라 생각했다. 예감은 적중했다.

알고보니 동석이는 상위 0.01%의 고도 영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동석이는 이 곳의 아이들과 팀으로 합류하여 중요한 대회의 최우수상을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아이가 영재 판정을 받던 날, 말수가 줄어든 나와 남편


우리 딸 아이도 최근 KAGE영재학술원에서 받은 지능검사결과, 영재판정을 받았다.

작년에 받았던 결과는 IQ 110의 중상 수준이었다. 그 이후 피아노를 배운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아니면 내가 꾸준히 집에서 다양한 자극과 상호작용을 한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올해는 결과가 더 좋았다.

웩슬러 아동검사 IQ 133, 상위 1%의 영재 판정을 받았다.

아기때부터 습득이 빠르고 언어도 빠른 편이어서 솔직히 좋은 결과를 기대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그리고 이내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 정도의 지능이라면 훨씬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텐데. 그러면 이 아이가 날개를 펴고 더 나은 미래를 훨훨 날 수 있을텐데. 마음도, 어깨도 무거워졌다.

이 아이가 갖고있는 잠재력을 제대로 키워주지못하면 어떡하지.

  

2022년 3월에 받은 한국 웩슬러 아동 지능검사 결과
KAGE 영재교육 학술원의 본원 및 연구실 교육을 추천한다는 결과지

우리나라에서는 20년 가까이 영재를 위한 전문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KAGE영재교육학술원에서

받은 검사 결과지다. 우리 아이는 15%이내의 아이들이 수업을 받을 수 있는 KAGE 영재교육 연구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도 있지만 3%이내의 영재들이 수업을 받을 수 있는 KAGE 영재교육 학술원 본원에서도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서울 또는 대전까지 갈 수 있는 수준의 결과가 나왔지만,

선뜻 일주일에 한번씩 그 먼곳을 이 어린 아이와 다닐 자신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울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학교도 보내주고 싶고, 서울에 있는 좋은 교육환경도 제공해주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 앞에 부딪힌 느낌이 들었다. 기쁘거나 들뜨지 않고 오히려 차분하고 생각이 많아졌다. 나와 남편은 이 주제로 서로 논의를 하기로 마주앉았지만 어느 순간 둘다 말수가 없어졌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KAGE영재 학술원을 일주일에 한번씩 다니기로 한 것이다. 2021년부터 해운대 KAGE가 학술원 본원으로 승격되어 3%이내의 아이들이 들을 수 있는 클래스가 생겨난 것이다. 울산에서 해운대까지 50분이면 갈 수 있으니 일주일에 한번쯤은 그렇게 다녀와보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아이도 선뜻 우리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였고, 수업 첫날부터 친구를 사귀며 마음껏 자기가 해 볼 수 있는 공부를 즐기게 되었다.

KAGE 영재학술원 본원 학술원반 수업 첫날

처음에는 이 소식을 주위에 알리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사방이 적이 될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고, 괜히 잘 지내고 있는 아이에게도 악영향이 될까봐 걱정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우리 아이를 아기때부터 봐왔던 조리원 동기,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들로부터 진심어린 축하도 받았다. 시부모님께서도, 친정부모님께서도 정말 기뻐하셨다. 어쨌든 좋은 일인 것은 분명했다. 


사용설명서 없이 도착한 선물, 영재성


내 아이가 영재라는 것을 알게 된 지인들은 언제부터 아이의 영재성이 나타났는지 궁금해 했다.

아이가 웩슬러 지능검사를 받는동안 부모가 작성하는 설문지

끊임없이 눈동자를 굴리며 세상을 탐색하려 했고, 물건을 만지거나 새로운 자극을 받았을 때는 그것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모습으로 되는건지 보려고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였다. 소리에 대한 자극을 강하게 받아들이는 아이여서 마이크를 통해 큰 소리가 울려퍼지면 귀를 막으며 무서워하는 아이였다.

생후 9개월, 블럭을 잡아서 분리하고 뒤로 던져보고는 소리를 따라 시선이 가는 중

(7살인 지금도 패딩점퍼를 입을 때 옷이 스치며 내는 슥슥 하는 소리도 싫어한다. 무서우면 귀부터 막는다)

생후 4개월 때 낯가림을 시작해서 7개월쯤 낯가림이 끝났고, 곤지곤지 잼잼 도리도리 등의 재롱은 생후 7개월쯤 했다. 말도 좀 빨랐던 것 같다. 생후 22개월에 "안녕 나는 토끼야"하고 처음 문장을 말했고 한글에 관심을 갖길래 3살때 신기한 한글나라를 시작해 4살초반에는 한글을 떼서 책을 혼자서 읽을 수도 있게 되었다. 아직 어린 애한테 벌써부터 한글 교육을 시킨다고 날 유난스럽게 보는 엄마들도 있었지만,  나는 아이가 관심을 가지면 그 타이밍에 맞게 확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태교부터 시작된 나의 열정


임신을 하면서 좋아하던 일을 그만두었기에, 나는 그 시간을 최대한 알차고 의미있게 보내고 싶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임신과 태교에 관한 책을 사러 교보문고에 간 일이었다.(일단 뭐든 책으로 시작하고 보는 나다운 행동이었다. 훗날 육아가 책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았을때 내가 느낀 멘붕이란 !!)

앞으로 나의 몸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지 예습하고 싶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가한테 많은 말을 해 주었고, 다양한 음악을 들었다. 머리가 좋은 아이가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산부인과 문화센터 태교 수업도 열심히 들었고,

특히 보드게임(우봉고), 스도쿠, 퍼즐 등을 매일매일 꾸준히 했다. 자연의 소리를 많이 찾아 들었다.

손을 사용하면 아이 두뇌에 좋다길래, 태교 바느질로 애착 인형도 만들고, 모빌도 만들었다.

더 나아가서 수학의 정석 책을 사서 풀어보기도 했다.


음식은 그냥 몸에 좋다는 건 찾아 먹었다. 친정 엄마가 끓여준 잉어곰을 겨우 먹어내고, 평소 즐겨먹지 않던 추어탕을 자주 먹었다. (우리딸은 5세부터 추어탕을 좋아했다!) 평소 오이를 참 좋아했는데, 임신하고나서는 오이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났다(지금도 우리딸은 오이를 극도로 싫어한다. 시금치 미나리는 잘먹으면서;)

참 신기하다. 아이가 뱃속에 찾아오면서 예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버전의 내가 탑재된것 같은 기분이었다. 임신기간 동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그렇게 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2016년 1월 7일 새벽 1시, 이건 진진통이다! 남편은 자고 있고, 나는 전장에 나가는 전사의 마음으로 쌀을 씻어 밥을 하고 그 밥을 곰탕에 말아 배부르게 먹었다. 그리고 당분간 씻지 못할것을 대비해 샤워를 하고 잠든 남편을 워 산부인과로 향했다.


아기의 위치가 한쪽으로 쏠려있어 자연분만이 어려울거라 했지만 난 어떻게든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고,

왼쪽으로 틀어 힘주고 오른쪽으로 틀어 힘줘가며 아기가 나오는 축을 중심으로 맞춰 있는 힘껏 아이를 세상으로 보냈다. 자연분만은 성공했고, 그때 그 개운함과 뿌듯함은, 잊을수가 없다. 세상 그 어떤일도 해낼수 있을것만 같은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시련이 닥치게 될 지는 1도 예상하지 못한 채.


순했던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잠을 안 잔다 


 아이가 영재라는 사실을 알고난 이후에 영재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교보문고에 갔다. (예나 지금이나 일단 책부터 시작.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프랑스 영재교육법] 저자 올리비에 르볼, 로베르타 풀랭, 도리스 페로댕

이 페이지를 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문장

"잠재우기가 힘들다"  진짜 이 문장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문득 주마등처럼 지난 날들이 떠올랐다.


남의 집 아기들은 100일의 기적을 맞아 통잠을 자는데 우리 아가는 낮밤을 바꾸는 이벤트를 보여줬다.

진짜... 서프라이즈 이벤트였다. 이건 경험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낮에는 쿨쿨 잠만 자는 아기가 새벽 1시부터 6시까지 안 자는 것이다. 아기가 자야 내가 자는데. 아기를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는 상황이라 고통은 고스란히 나와 내 남편의 몫이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잠을 못자 몰골이 말이 아닌채로 출근을 하고, 집에 혼자 남은 난 나대로 육아전쟁을 치르느라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아기가 낮에 잘 때 나도 자면 되는데, 자야만 한다는 생각이 나를 더 압박했고 그때부터 내 몸이 이상해졌다. 수면리듬이 완전히 깨지면서 불면증이 와서 이틀간 2시간 겨우 잠들수 있었다. 누워있으면 내 몸 위에 아기가 있는 묵직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기는 옆에서 자고 있었다. 속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어느날은 몸이 추워 덜덜덜덜 떨렸다. 어느날은 아기 주변이 흐릿해지면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끝없는 터널을 걷고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우울증 증상이라는것을 뒤늦게 알았다. 산후 우울증.


왜 그때 그렇게 힘들었을까. 엄마라면 대부분 겪고 지나가는 신생아시기를 나는 혹독하게 치룬 케이스였다. 난 무엇이든 계획하고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때 가장 큰 안정을 느끼는 성격이다. 그런데 아기는 통제불가한 존재다. 먹는것 자는것 아주 기본적인 인간의 생리욕구마저 뜻대로 할 수 없으니 내가 고장나버린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책에서 보니 이렇게 하면 아이가 잘 잔다던데, 책에서 보니 이렇게 하면 아이는 이런 반응을 보인다던데. 난 정말 육아를 글로 배웠고, 매 순간 기대를 했으며 언제나 우리 아이는 예상을 벗어났다.


신생아 시기가 지나고도 낮잠 재우는 일은 힘들었다. 눈이 감겨도 잠을 이겨내는 아이였다.

재우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일이 다반사였고, 3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낮잠시간이 곤욕이었다.

어느 날은 운 좋게 잘 잤고, 어느날은 안 자겠다고 난리난리.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엉엉 우는 탓에 다른 아이들 낮잠에 방해가 되어 점심만 먹고 하원하는 기간도 있었다. 시할머니댁에 가는 4시간짜리 여정에도 차에서 한 숨도 안 자는 우리 딸. 잠을 자야만 하는 3살 4살까지는 어떻게든 재우려고 애를 썼다.

5살이 되어 낮잠시간이 없는 유치원에 보냈을 때 얼마나 마음이 편하던지.


아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다


아이가 영재라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그 모든 순간들이 다 이해되었다. 아, 이 아이는 이렇게 태어났던 거구나.

그래서 재우는 게 힘이 들었구나. 그래서 다른 아이들보다 소리에 민감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까탈스러웠구나


사람은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에 화가 난다. 자신의 논리로는 분명히 A가 맞는데, 상대방은 B의 방식을 선택할 때, 그것이 어느지점에서는 A에게 중요한 상황일때, 자신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상대방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와 다르고, 그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면 화가 누그러진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첫 아이 육아가 어려운 이유는, 몸이 힘들어서보다 마음이 고단해서인지 모른다.

아이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고, 그래서 책이나 강연을 찾아서 방법을 적용해보면

어떤 것은 내 아이에게 맞고, 어떤 것은 내 아이에게 맞지 않는 방법이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화가 난다.

끊임없이 길을 찾아가면서도 이 길이 맞다는 확신조차 들지 않는다. 마음이 고단할 수 밖에 없다.


정재승 카이스트교수가 SBS 예능프로그램 집사부 일체에 연했을 때 멤버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살면서 가장 많이 화를 낸 대상이 누구인가" 순간 멤버들은 침묵했고, "누구인지 알 것 같아 슬프다" "엄마"라는 대답이 나왔다.

그 대답에 모두들 수긍하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재승교수가 그 이유를 말하길, 우리 뇌에서 "나"를 인지하는 영역과 "엄마"를 인지하는 영역이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엄마가 내 뜻대로 통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잔소리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것이란다.

나의 친정엄마와 전쟁같이 싸웠던것처럼, 우리 딸을 이해하지 못해 전쟁같이 지냈던 지난 몇 년.


이제 이 아이를 이해하기 시작했으니, 또 하나의 챕터(Chapter)가 시작되었다. 과연 이 스토리는 어떻게 흘러가고 어떤 사건들을 맞이하게 될지.





작가의 이전글 말 잘 하는 아이, 잘 말하는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