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
비 오는 날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옷도 젖고, 습기가 가득 차서 찝찝한 하루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비 오는 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은 좋아한다. 옷이 젖는걸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신발이 비에 젖어 양말이 축축해지는 그 느낌까지 좋아한다. 온몸의 감각이 충실하게 느껴지는 그 기분이 좋다.
어떤 소설가는 스키니진을 입을 때마다 자신의 육체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기분이라 집에서도 하루 종일 청바지를 입고 있는다고 하던데, 그 정도는 아니라도 그게 어떤 기분인지는 공감이 간다.
마찬가지로 땀이 나는 것도 좋다. 지금부터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경우에 땀이 나는 것은 싫지만, 새벽이나 밤거리를 뛰어다니며 실컷 땀을 흘리고, 옷이 젖어서 몸에 달라붙으며 육체를 실감할 수 있는 그 감각이 좋다.
결국 육체의 실감, 그게 좋은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라는 그 실체감에 대한 집착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