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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운틴구구 Jan 11. 2021

파드득나물의 재발견

어제는 저녁 식사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보려고 오후 늦게 집 근처 마트에 들렀다. 필요한 식재료는 닭다리살과 파드득나물. 파드득나물은 이름도 들어본 적 없고 실제로 본 적도 없는데, 요리책에 나온 사진을 보니 참나물이랑 비슷해서 참나물로 대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트 채소 코너에서 참나물을 발견하고서, 순간 호기심에 스마트폰을 꺼내 참나물과 파드득나물을 검색해 보았다. 두 채소의 생김새를 사진으로 확인하고 둘을 구분하는 법을 찾아보느라 같은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검색한 정보대로라면 눈앞에 진열된 채소는 참나물이 아니라 파드득나물이었다. ‘참나물’이라고 적힌 비닐 포장 안에 파드득나물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당장은 미스터리를 푸는 일보다 식재료를 사는 일이 급해서, 일단 한 봉지를 품에 안고 육류 코너로 향했다. 소형 마트라 그런지 뼈를 발라낸 닭다리살은 없고 뼈 있는 닭다리만 다섯 개에 한 팩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요리하기 수월하게 안심 부위로 대신할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식감이 다를 것 같아 닭다리로 마음을 정하고 한 팩을 집어 들었다.


집에 와서 참나물과 파드득나물에 관한 정보를 더 찾아보았다. 참나물은 토종이고 파드득나물은 일본 수입종인데 참나물은 재배가 까다로운 반면 파드득나물은 번식력이 강해, 국내 농가와 마트에서 참나물 대신 파드득나물을 ‘참나물’이란 이름으로 유통한다고 했다. 얼핏 보면 둘은 구분하기 어려운데, 참나물은 이파리 톱니가 균일하고 뿌리 쪽 줄기가 불그스름하지만, 파드득나물은 이파리 톱니가 불규칙하며 줄기 전체가 연녹색을 띤다.


파드득나물은 일본어로 ‘미츠바(Mitsuba, 잎이 세 장이라는 뜻)’라고 하며, 이탈리아의 파슬리, 태국의 고수, 한국의 깻잎처럼 일본을 대표하는 허브로 ‘일본 파슬리’라 불리기도 한다. 한때 유튜브로 <쿠킹 위드 도그(Cooking with Dog)>라는 일본 요리 방송을 즐겨봤는데, 방송에서 식재료로 자주 등장하던 미츠바가 파드득나물이었단 걸 이제야 알았다. 일본 사람들이 요리에 고명으로 즐겨 쓰는 채소가 국내에서 참나물로 둔갑해 식탁에 오르다니.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마침 파드득나물을 찾던 나에게는 오히려 감사한 일이었다.


주말에 다시 만들어 본 닭고기 달걀덮밥


어제 저녁 메뉴는 닭고기 달걀덮밥과 홍백 생채였다(홍백 생채는 소금에 절인 무와 당근에 식초와 설탕, 유자껍질을 버무려 만든 일본식 반찬이다. 나는 유자껍질 대신 레몬껍질을 썼다). 덮밥을 완성한 다음 파드득나물 잎을 서너 장 뜯어 덮밥 중앙에 보기 좋게 올리고, 줄기는 잘게 다져 덮밥 위에 골고루 뿌렸다. 달달한 밥을 씹을 때마다 입안에서 산뜻한 향이 톡톡 터졌다. 덮밥의 단조로운 맛이 고명 하나로 풍부하게 살아났다고 할까. 미나리나 셀러리만큼 향이 강하진 않은데 특유의 향으로 요리 맛을 미묘하게 끌어올리는 걸 보니, 일본 사람들이 파드득나물을 왜 좋아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파드득나물 한 봉지를 1,690원에 샀는데 (인터넷 정보대로 재배가 쉬워서인지) 꽃다발처럼 풍성해서, 오늘 점심엔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올리브유에 마늘, 양파, 페페론치노를 볶고, 다른 재료 없이 면수와 파드득나물만 더해 파스타와 버무렸다. 향을 듬뿍 느끼려고 이번에도 연녹색 줄기를 총총 다지고 이파리도 한 주먹 집어 팬에 넣고 살짝 볶았다. 남편은 손사래를 치겠지만 채식주의자인 친구는 두 팔 벌려 환영할, 매콤 담백한 비건 파스타였다.                     


냉장고에는 아직도 파드득나물이 남아있다. 부케를 만들어도 될 만큼 많이. 글을 쓰면서 남은 채소로 또 무얼 만들어 볼까 머리를 굴려본다. 요리책에 나온 ‘참나물 생채'처럼 고춧가루 양념으로 버무려 볼까? 개인 블로그에 소개된 '참나물 두부무침'처럼 만들어 보면 어떨까? 된장국에 고명으로 푸른 이파리를 동동 띄워 볼까? 닭고기 달걀덮밥과 파드득나물 파스타를 한 번 더 만들어 볼까? 늘 익숙한 재료로 비슷비슷한 요리만 만들다 덜컥 낯선 재료와 새로운 요리에 도전했더니 마치 특별한 이벤트라도 벌이듯 부산을 떤다. 그래도 코로나19로 잃어버린 활기를 어떻게든 되찾은 것 같아서, 나는 그런 나를 더 부추기고 격려해 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이후로 밖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급격히 줄었다. 친구도 만나지 않고, 좋아하는 카페나 서점도 가지 않고, 남편이랑 맛집을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일상의 작은 휴식과 소박한 즐거움마저 통제받는 코로나 시대에,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라도 하나둘씩 늘려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이럴 때일수록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겠지. 취미라든지 ‘덕질’ 같은 거 말이야.” 전화로 우울함을 토로한 나에게 동생이 해준 말처럼, 요리든 글쓰기든 이번 기회에 제대로 ‘덕질’을 해볼까 하고. 천천히, 마음에 시동을 걸어본다.


친구에게 만들어 주고 싶은 파드득나물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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